[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이문세 5집 '광화문 연가' (1988년 킹레코드)'팝 발라드' 새장르 개척, 팝송프로그램 시대 종식

어느 분야나 성공신화를 일궈내는 환상의 파트너가 있게 마련이다.

대중가요에도 히트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황금 콤비는 무수하다. 그 중 이문세와 고 이영훈의 조합은 적어도 80년대의 무적함대였다.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적 개척은 물론이고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히트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발표는 곧 히트'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거침없는 하이킥을 이어갔다.

150만 장이 팔린 3집이 황금 콤비의 밀리언 셀러 시대를 연 신호탄이었다면 무려 285만 장의 판매기록을 수립한 4집은 그때까지의 사상 최다 음반판매 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88년 5집은 선주문만 수십 만 장에 달했다.

이에 킹레코드는 당시 3,300원이던 음반 값을 일방적으로 4,000원으로 인상해 소매상들의 불매 운동이 펼쳐졌다. 소용없었다. 대중은 음반의 가격보다 음악의 질을 중시했고 그 결과는 258만 장의 판매고로 이어졌다. 또한 외국 팝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낮은 가격이 책정되었던 가요 음반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결국 1986, 1987, 1988년 3년 연속 골든디스크상 수상에 이어 1988, 1989년 MBC 10대가수상까지 거머쥐며 이문세는 정상의 인기가수로 떠올랐고 작곡가 이영훈은 모든 가수가 곡을 받고 싶은 최고 작곡가로 떠올랐다. 이들이 제시한 고품격의 팝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며 그때까지 라디오를 점령했던 팝송프로그램들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가요 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되는 혁명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문세 명반 3부작의 완결판인 5집을 통해 발표된 <광화문 연가>는 두 사람이 빚어낸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옛사랑>과 쌍벽을 이루는 명곡이다. 2008년 대장암으로 아쉽게도 세상을 떠난 고 이영훈의 대표작인 이 노래는 광화문 정동 근처에 소재한 고풍스런 분위기의 정동교회와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고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래다.

노래에 대한 공감대가 컸기에 이영훈이 세상을 뜬 지 1년 만에 <광화문연가>는 서울 정동 길에 서울의 6번째 노래비로 탄생되었다. 근사한 아날로그 마이크와 이영훈의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 노래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회자된 뛰어난 조형미를 뽐낸다. 또한 광화문과 정동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의 추억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는 최고의 서울 송으로 인증서를 획득했다.

시적인 가사와 탁월한 멜로디를 직조해 격조 깊은 사랑노래를 제시한 이영훈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창법으로 청자의 마음을 움직인 탁월한 소리꾼 이문세를 통해 빛을 발했다. 5집에는 <광화문 연가>외에도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붉은 노을>등 실로 주옥 같은 명곡들이 대거 포진된 명반이다.

이는 이영훈이 감성적으로 최정점에 올랐음을 확인시킨다. 어느 불쌍한 소녀의 소녀를 위해 쓴 <시를 위한 시>의 가사는 이영훈 스스로 만족감을 표했던 노래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은 무명시절인 1983년 어느 가을날, 대학로 근처의 혜화동 작업실에서 밤새 작곡을 한 후 새벽에 가로수 길을 산책하며 영감을 획득한 노래다.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복고문화 열풍은 과거의 명곡을 대거 리메이크하는 뜨거운 트렌드를 형성시켰다. 과거에는 앨범에 한두 곡정도 리메이크곡이 실리는 정도였지만 앨범 전체가 리메이크 곡들로만 채워진 앨범들이 범람하게 되었다.

정훈희의 '사랑이 지나가면', 이수영의 '광화문 연가', SG워너비와 성시경의 '소녀', 신해성의 '시를 위한 시', 서영은, 박선주의 '가을이 오면'과 윤도현의 '이별이야기', 이승철과 임재범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클래지콰이의 '애수', 버블시스터즈, 신화,·빅뱅까지 부른 '붉은 노을' 등 이문세 이영훈 콤비의 수많은 노래들에 대한 리메이크 작업은 이들의 음악이 후대에 얼마나 음악적으로 정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명징한 증거일 것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