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한상일 '웨딩드레스' (1970년 힛트레코드)다양한 버전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영화 흥행실패 불구 주제가 빅히트… 봄이면 어김없이 부활

봄을 재촉하는 봄비의 느낌이 촉촉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예나 지금이나 결혼적령기가 된 청춘남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웨딩 시즌이다.

결혼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무수하지만 그 중 한상일의 '웨딩드레스'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에 제격인 대표적인 웨딩송이다.

정인엽 감독의 영화 '먼데서 온 여자'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는 대중가요 사상 유례가 없는 다양한 버전의 노래가 혼재하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그러니까 가수와 노래 제목, 가사는 동일한데 당대의 인기 작곡가인 길옥윤와 정풍송 2명의 작곡가에 의해 완벽하게 다른 멜로디의 버전이 거의 동시에 발표된 특이한 노래다. 또한 영화 '먼데서 온 여자'의 제목도 원 제목은 '웨딩드레스'였지만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작사에 의해 제목이 변경된 복잡한 사연이 있다.

아마도 평범하고 건전한 느낌이 강한 원 제목보다 다소 야릇하고 원색적인 느낌으로 흥행에 이득을 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신성일, 윤정희가 남녀주연으로 출연했음에도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유사한 영화가 너무 많은 평범한 통속물 영화였기 때문.

영화주제가로 주문제작된 '웨딩드레스'는 1970년 2월 영화개봉 이후에 음반으로 발표되었지만 정인엽 감독의 증언으로는 1969년에 제작 완료된 영화에 이미 노래가 수록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주제가 '웨딩드레스'는 개봉 이후 예상치 못한 빅히트를 터뜨리며 지금껏 사랑받는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실제로 50년대 이후 영화와 대중가요의 동거가 필수적이었던 시절에 이 같은 사례는 꽤나 많았다.

영화 개봉 이후 한상일은 동명의 영화제목으로 노래 제목을 또다시 변경해 한 차례 발표했다. 아마도 같은 노래에 이처럼 복잡한 사연을 지닌 대중가요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여하튼 모든 대중이 기억하는 버전은 이희우가 작사하고 정풍송이 작곡한 멜로디로 보면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가지 버전이 발표되면서 여러 가지 해프닝은 필연적이었다.

방송국에 노래신청이 들어오면 진행자가 두 버전 중 어느 곡을 틀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가수 한상일도 각기 다른 버전의 노래를 무대의 성격에 따라 교차적으로 불렀다고 한다. 왜 이처럼 동시에 두 가지 버전의 곡이 발표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영화주제가로 채택된 정풍송 버전이 워낙 익숙한지라 멜로디가 전혀 다른 길옥윤 버전을 듣노라면 웃음이 절로 머금어진다.

1942년 개성에서 태어난 한상일(본명 한제상)은 서울대 건축과 출신의 엘리트 가수다. 그는 한국전쟁 때 인천으로 피난 와 대학시절 4중창단을 결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내 미8군 장교클럽의 전속가수로 변신해 음악공력을 닦은 후 KBS 전속가수로 일반무대에 진출했다. 처음엔 본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67년 데뷔곡 '내 마음의 왈츠'를 발표하면서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번안곡이 대세였던 1970년 발표된 한상일 애창곡집에는 '웨딩드레스'와 더불어 '애모의 노래'라는 귀에 익은 노래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는 뮤지컬 '카니발의 수첩'의 주제가다.

클래식 분위기가 느껴지는 품위 있는 창법을 구사한 한상일은 고영남 감독의 영화 '사랑은 파도를 타고'와 TV 드라마 '수사반장' 등에도 출연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수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그는 1978년 자신의 전공분야인 건설, 건축 분야로 리턴하며 대중음악계와 멀어졌다.

20여년간 가요계를 떠나있던 그는 전성기 때 이봉조,·백영호 같은 훌륭한 작곡가들의 취입 제의에 소극적이었던 자신의 태도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현재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최근 7080 공중파 음악프로와 '손석우 노래 55주년 헌정음반'을 통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노래한 그의 노래 '웨딩드레스'는 발표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화사한 봄이 오면 어김없이 부활되는 최고의 시즌송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