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고도 충분히 교훈적인 진짜배기 교육 영화

바뀌는 것이라곤 표지의 출판년도뿐인 케케묵은 참고서처럼, 교육을 소재로 한 극영화에도 변치 않는 매뉴얼이 있다.

우선 반항기 가득한 문제아 반에 열혈 선생이 부임한다. 그들은 처음엔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갈등하고 반목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미션이 떨어진다.

결국 위대한 스승은 아이들을 감화시키고, 존경을 이끌어내며, 미션에 성공한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아이들이 환한 웃음을 짓는 가운데 한 학기가 끝나는 훈훈한 결말.

이런 교육 영화들은 태생적으로 '선생님'을 자처한다. "이것이 교육의 위대한 힘이다"라는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다.

이처럼 확고한 교육목표를 가진 영화들은 마치 장학사 참관 수업 같다. 매끄럽고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이고 단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반대의 경우, 보통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현장의 가장 폭압적인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는 영화들도 단면만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마침내 훌륭해지거나, 결국 끔찍하거나. 영화 속 교실들은 빛 혹은 그림자의 한쪽 얼굴만을 관객 앞에 내민다.

하지만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영화의 제목처럼 어떤 교실 그 자체다. 그곳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가진 스물다섯 명의 학생이 있고, 5년차 프랑스어 교사가 있다. <클래스>는 그 교실 속으로 들어가 앉는다. 영화가 원하는 것은 그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 한 학기를 보내는 것이다.

학교가 개학했다. 교사들은 교무실에 모여 한 학기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새로 온 교사와 오래된 교사들 사이에 간단한 인사가 오가는 사이 10년차 교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한 학기가 지났을 때 용기를 잃지 않길 바랍니다."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관객은 이 당부의 의미를 직감할 수 있다. 파리의 변두리 20구역에 위치한 중학교는 그야말로 '전쟁통'이다.

아프리카계, 아랍계, 유대계, 동양계 이민자 2세들이 주를 이루는 교실에서 국어교사 프랑수아 마랭(프랑수아 베고도)이 수업을 진행하는 건, 분필 한 자루 달랑 들고 전쟁 통으로 뛰어드는 짓이다. 문법 수업 도중에 손을 들고 "우리는 잰체하는 부르주아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항의하는 학생들을 앞에 놓고, 프랑수아는 한 글자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프랑수아는 놀려먹기 좋은 만만한 상대일 뿐이다. 단 1분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시종일관 딴 짓을 하고, 시비를 걸고, 부아를 돋운다. 신참 젊은 교사가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저것들은 다 미쳤어. 다 짐승이야!"라고 폭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나마 평탄했던 프랑수아의 반에도 큰 폭풍이 몰아친다.

수업태도가 불량한 학생에 대한 징계회의 내용이 교실에 퍼지자, 아이들은 프랑수아에게 격하게 반발하고 그 과정에서 그도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폭언을 내뱉는다. 사고는 일파만파 퍼져 결국 해당 학생의 퇴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학생과 교사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앞서 말했듯 <클래스>는 이 갈등의 상황을 영화적으로 구성하거나, 영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저 교실 안에서 그들과 함께 갈등을 겪을 뿐이다.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현실의 교실에는 고매한 스승도, 천사 같은 학생도 없다." 대신 그 곳엔 평범한 아이들과 평범한 어른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평범한 교실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인물에 비전문배우를 캐스팅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비전문배우의 활용은 양날의 칼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생함이 장점이라면 자칫 거친 연기가 어색해질 수 있다. 하지만 로랑 캉테 감독은 오랜 오디션과 워크숍을 통해 실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포착하고, 그 리얼리티를 시끌벅적한 교실 속에 이물감 없이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잘 짜인 스토리와 매끈한 연기를 포기하자, 리얼리티의 활력이 찾아온다. 활력은 흡인력으로 이어진다. <클래스>의 교실은 분명 한국 관객에게 낯선 모습이지만, 어느 순간 프랑수아와 아이들과 함께 그 교실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의 교실이 프랑스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표출하는 장으로 기능하길 원한다. 다인종 사회의 문화적 마찰과 이민자 가정의 소외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바탕으로 10대 청소년들의 소소한 성장통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과정에서 영화는 이렇다 할 조언을 심어놓지 않는다.

이 영화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 갈등 당사자들의 곁에서 서서 그들이 각자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하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영화는 이제껏 많은 교육영화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현대 교육의 실체에 한 발 다가선다. 지역적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적인 공감대. 이것이 <클래스>가 2007년 칸영화제에서 쟁쟁한 경쟁작을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리얼리티'의 힘이다.

시쳇말로 "부러우면 지는"것이라지만, 한국의 관객들에게 <클래스>의 현실은 어쩔 수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끊임없는 질문과 답, 토론이 이어지는 그들의 '현실'이다. 인종과 문화, 계급이 다르고, 거기에 10대 특유의 반항심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끊임없이 짓궂은 질문으로 교사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단 한 번도 그 질문을 윽박지름으로 차단하지 않는다. 프랑수아를 비롯한 교사들에게 학생들은 '작은 악마'일지언정, 반드시 소통해야 하는 동등한 존재다. <클래스>는 교육이란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일방향의 수직구조가 아님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영화가 '교실'이라는 공간을 내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교육은 '교실'의 구성원인 교사와 학생이 쌍방향의 교류를 통해 함께 '자라는 과정'이라는 평범한 진리. 타닥타닥 판서소리만 요란한, 가르치는 교사는 있지만 질문하는 학생은 없는 침묵의 교실을 12년간 버틴 한국의 관객들이라면 쉴 새 없이 질문과 답이 오가는 <클래스>의 폭풍 같은 교실이 부러워 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문제를 포착하고, 그 문제를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로랑 캉테 감독의 싸늘한 스타일은 <클래스>에서도 여전하다. 학기가 끝나는 날, 프랑수와는 한 학생의 고백들 듣는다. "저는 이번 학기 동안 배운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저는 수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 영화가, 혹은 제도권 교육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방학과 함께 텅 비어버린 교실처럼, 교육 시스템 그 자체는 아무 것도 '가르치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교실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방학이 찾아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실은 또 교사와 학생으로 시끌벅적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갈등을 겪고, 해소하며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경험 자체가 교육이라고, <클래스>는 이야기한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