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배두나의 대담하고 섬세한 캐릭터 소화 인상적

"그리하여 공주님과 왕자님은 평생토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소녀들이 동화를 읽는 까닭은 마침내 이 '해피엔딩의 확언'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운명적 사랑으로 연결된 '그'가 불을 뿜는 용의 방해와 사악한 마녀의 농간을 헤치고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평생의 행복이 보장받을 거라는 천진한 욕망. 하지만 소녀들이 나이가 들면 동화를 읽지 않는 까닭도 바로 저 문장 때문이다.

사랑은 어제와 완벽히 다른, 사방에서 단내가 풍기는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지만 어떤 사랑도 해피엔딩을 확언해주지 않는다.

소녀들에게 이 아픈 현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만드는 첫 동화는 아마도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일 듯하다.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허망하고 쓰라린 환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은 사랑에 굶주린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형시킨 '인어공주'다.

영화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퇴근하는 한 중년 남자 히데오(이타오 이츠지)로부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온 히데오를 맞아주는 이는 아내도 애인도 아닌 '섹스돌' 노조미다.

비록 5만 9천 엔짜리 싸구려 공산품이지만, 히데오에게 노조미는 어떤 인간도 줄 수 없는 위안을 선사한다. 고만고만한 일상에 관한 긴 넋두리도, 애처로운 성욕도 조용히 받아주는 그녀에게 히데오는 지극정성을 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노조미(배두나)가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을 얻은 인형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해 보이는 세상 밖으로 주저 없이 나선다. 아이처럼 이곳저곳을 헤매던 노조미는 우연히 비디오 대여점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일하는 준이치(아라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얼떨결에 대여점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한 그녀는 첫 사랑과 함께 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노조미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 가지게 된 '마음'이란,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성장의 첫 단계는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새롭게 존재의 의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히데오의 성적 대용품, 즉 '누군가의 그 무엇'으로서만 존재가치를 가졌던 노조미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지금까지의 나를 거부한다. 히데오의 취향대로 입혀주는 옷 대신 스스로 옷장에서 옷을 고르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화장을 하는 것은 새로운 나를 향한 욕구의 발현이다.

이 욕구를 발화시킨 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특별한 환각이다. 인간 왕자에게 사랑을 느낀 인어공주가 원래 속한 세계의 정체성인 '꼬리'를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준이치에게 사랑을 느낀 노조미는 텅 빈 공기인형임을 부끄러워하고, 생명줄 같은 공기 펌프를 버린다.

그녀의 모험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노조미가 비디오 가게에서 사고를 당해 몸의 공기가 모두 빠졌을 때, 준이치는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그녀를 살려낸다. 그의 숨결로 다시 태어난 노조미는 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희열을 맛본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준이치의 한 마디. "나도 너랑 같아." 사랑은 나의 공허가 상대로 인해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공고히하는 악의 없는 거짓말에서 출발하는 환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가져버린 섹스돌을 '인어공주'와 등치시킴으로써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사랑이라는 꿈"에 관한 쓸쓸한 동화를 다시 써내려 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공기인형>은 익숙한 듯 새로운 좌표에 놓인 영화다. 일상사와 초연하게 맞물려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영화 곳곳에 녹아 있는 사회적인 시선, 지독한 소외 속에서 실낱 같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자세 등은 전작과 이어져 있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전작에 비해 적극적이다. <공기인형>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노조미와 준이치가 만나는 비디오 대여점이다. 영화의 원작이 된 단편 만화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공기인형>의 영화적 설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인간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성적 대용품 노조미는 판타지를 대여하는 비디오 대여점을 보는 순간 빨려들 듯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섹스돌과 비디오'로 상징되는 판타지의 대용품은 '진짜 사랑과 극장'이란 실재의 대칭점으로 기능한다. 이 같은 영화적 설정은 '영화적 이야기'를 향한 감독의 새로운 욕구처럼 보인다.

또한 감독의 개입도 적극적이다. 그의 대표작인 <아무도 모른다>에선 '버려진 아이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대사나 내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몇 년 새 훌쩍 짧고 낡아진 바짓단을 비추는 무심한 카메라만이 아이들의 상황을 짐작케 할 뿐이다. <공기인형>에선 화면의 속삭임이 줄어든 대신, 직접적인 대사가 자주 들린다. "생명은 혼자서는 채울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생명은 모두 빈 공간을 가지고, 다른 생명이 그 공간을 채운다"는 식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변화는 노조미를 연기한 배두나와 연관된 것 같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이후 배두나의 팬이 됐다. 과장된 표현 없이 일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연기가 놀라웠다. 배두나와 꼭 작업하고 싶어서 그녀에게 맞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든" 것이 <공기인형>이다.

감독의 말처럼 <공기인형>은 대담하면서도 세밀한 배두나 연기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다. 영화 초반부 갓 생명을 얻은 노조미를 연기한 부분에서는 "실제 인형이 살아난다면 저런 걸음걸이와 저런 표정일 것 같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구체관절인형의 스톱모션 같기도, 세 살배기 아기 같기도 한 배두나의 연기가 영화의 톤을 동화적으로 만든다.

영화 초반 히데오가 공기를 펌프질할 때와 영화 중반 준이치가 숨결을 불어넣을 때는 부풀어 오름의 뉘앙스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준이치의 숨결 이후 비로소 인간처럼 생기를 얻은 노조미는 눈의 깜박임과 미소 짓는 얼굴의 근육 움직임까지도 미묘하게 다르다. 배두나의 열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치밀한 화면 속에서 더욱 황홀하게 각인된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