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in Cinema] (6) <아이즈 와이드 셧> 속 리게티의 <무지카 리체르카타>주인공 길거리 배회 장면 배경음악, 성적 강박증 메시지 담아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산다. 그런데 실현시키지 못한 욕망과 실현시킨 욕망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성적 환상은 때론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때론 원초적 본능과 자아, 초자아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인간을 괴롭힌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이런 현대인의 성적인 강박관념을 다룬 영화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그렸다.

주인공 빌(톰 크루즈)은 이른바 잘 나가는 의사이다. 그럴듯한 직업에 호화스러운 아파트, 미모를 자랑하는 아내(니콜 키드먼)와 예쁜 딸.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행복의 조건을 갖춘 남자이다.

영화는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흥청거리는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빌과 그의 아내 앨리스는 환자가 주선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다. 파티에서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이성으로부터 강한 성적 유혹을 받는다. 앨리스는 은밀한 속삭임으로 접근해오는 한 유럽 남자와 춤을 추고, 빌은 늘씬한 모델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다.

다음 날, 앨리스는 빌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한다. 여름휴가 때 우연히 마주친 한 해군 장교에게서 강한 성적 충동을 느꼈고, 그와 하룻밤만 잘 수 있다면 가족 모두를 포기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아내의 고백을 들은 빌은 크게 충격을 받고, 아내가 그 해군장교와 정사를 나누는 환영에 시달린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던 그는 우연히 대학 동창 닉을 만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상류층의 비밀스러운 섹스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은 비밀리에 집단 섹스를 벌이는 파티장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곳에서 그는 옷을 모두 벗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집단 섹스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빌이 위장 침입한 것이 곧 밝혀지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다행히 어떤 여자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무사히 파티장을 빠져 나온다. 그를 구해준 여자의 정체는 누구일까. 큐브릭은 속 시원하게 그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다. 의문은 계속해서 풀리지 않고, 그러는 사이 빌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가면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위선과, 물밑에서 전개되는 비밀스러운 음모의 전모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흘러간다.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큐브릭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던 앨리스의 입을 통해 결론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결론이 큐브릭답지 않게 너무 단순무식하다. '질끈 감은 눈'이라는 제목처럼 그렇게 성적인 욕망에 대해, 혹은 그 욕망의 실현에 대한 죄책감에 대해 눈을 질끈 감고 살아가라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헝가리 작곡가 리게티의 <무지카 리체르카타>라는 피아노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는 오리무중 포착하기 힘들지만 여기에 음악이 던져주는 메시지만큼은 확실하다. 그것은 성적인 강박증이다.

<무지카 리체르카타>는 모두 열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번에서는 오로지 한 음만을 사용하고, 2번에서는 세 음, 3번에서는 네 음, 이렇게 점점 구성음의 수를 늘려나가 마지막 11번에서는 열두 개의 음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으로 작곡되었다. 영화에 나온 제2번은 세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한 곡이다. 여러 장면에서 이 곡이 배경으로 깔리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상류층의 집단 섹스파티를 목격한 주인공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에서의 쓰임새가 인상적이다.

이때 거리를 배회하는 주인공을 멀리서 미행하는 한 남자의 존재는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일까 아니면 그것을 통제하는 초자아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욕망을 다스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리게티의 음악은 단 세 개의 음에 갇힌 채 답답하게 진행된다. 끝내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아니, 끝내 욕망을 억제해야 하는 인간의 존재가 못내 답답하다.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