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여성 대변하고 극중 캐릭터 암시, 시청자 판타지 자극

KBS '신데렐라 언니'
드라마 제목들이 심상치 않다. 현재 지상파 3사 방송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20편 중 절반인 10편이 여성을 직역하거나 의인화한 제목들이다.

KBS는 <신데렐라 언니>, <거상 김만덕>, <엄마도 예쁘다>이며, MBC는 <동이>, <개인의 취향>, <분홍립스틱>, SBS는 <검사 프린세스>, <오! 마이레이디>, <아내가 돌아왔다>, <당돌한 여자> 등이다.

이들 드라마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그리고 여자들의 어떤 점을 얘기하는 걸까. 제목들로 본 드라마와 현실 속 여성들을 들여다봤다.

현실, 제목이 대변하다

봉달희, 오달자, 나금순, 봉순영, 김삼순. 그 옛날 부모님 세대에나 있을 법한 이름들이 아니다. 불과 3~6년 전 TV 드라마에서 불리던 이름들이다. KBS 드라마 <달자의 봄>, <오! 필승 봉순영>과 MBC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내 이름은 김삼순>, SBS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등은 촌스럽지만 친근한 이름으로 시청자들을 이목을 사로잡았다.

SBS '검사 프린세스'
이들 드라마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면서 높은 시청률로 특히 여성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한 작품들이다.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이들 작품은 어렵고 힘든 현실에 놓인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봉달희는 심장병력이 있는 외과의사로, 오달자와 김삼순은 30대를 살아가는 노처녀로, 나금순과 봉순영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이다. 촌스러운 복고풍의 주인공 이름들로 지어진 드라마 제목이다.

MBC드라마국의 한 PD는 "드라마는 사회, 문화적인 현상을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다. 당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촌스럽고 어딘가 결점이 있어 보이는 여자들의 성공 스토리가 많이 그려졌다. 그들이 성공이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굳세어라 금순아>, <오!필승 봉순영>은 미혼모로 미용사 보조 일을 하는 금순이(한혜진)와 대형할인 매장 매니저 순영(채림)이 현실에 도전적인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스스로 현실과 타협해가는 여자의 성장기를 다뤘다.

여자들의 촌스러운 이름과 함께 직설적인 수식어가 돋보이는 제목도 등장했다. MBC <발칙한 여자들>, SBS <나쁜 여자들>, KBS <소문난 칠공주> 등은 '발칙한', '나쁜', '소문난'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들이 더해져 주체적으로 독립하려는 여자를 대변했다.

MBC '굳세어라 금순아'
<발칙한 여자들>은 숨죽이며 살아왔던 조강지처들의 반란을, <나쁜 여자들>은 남자들에 의해 버림받고 좌절한 여자들이 성공을 쟁취하는 모습을, <소문난 칠공주>는 세 자매가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각자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하지만 최근 여성을 지칭하는 드라마 제목들은 훨씬 부드럽고 세련되게 변했다. SBS <검사 프린세스>와 <오! 마이레이디>, MBC <분홍립스틱>, KBS <아가씨를 부탁해> 등으로 변해 제3자에게 대접받는 여성, 즉 권위 있는 여성으로 거듭난 느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극중 여성의 직업도 검사, 매니저, 디자이너다. 뚜렷한 직업관을 가진 여성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SBS드라마국의 김영섭 CP는 "<오! 마이레이디>는 극중 캐릭터에 구체적인 직업을 부여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이라며 "여성 즉 주부가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현실에 맞게 최대한 리얼하게 그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목소리가 높아진 주체적인 존재의 여자들도 등장했다. MBC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개인의 취향>, <동이>, KBS <신데렐라 언니>, SBS <당돌한 여자>다.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제목들은 더 강해지고 독립적인 캐릭터를 대변한다.

김CP는 "'여성상위시대'나 '골드미스' 등의 단어가 생겨 여성들의 권위가 상승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게 드라마도 변하고 있다. 극중 캐릭터의 변화가 고스란히 드라마 제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답했다.

MBC '동이'
판타지, 제목의 중요성

KBS <공주가 돌아왔다>와 MBC <내조의 여왕>, SBS <돌아와요 순애씨>와 <아내의 유혹> 등은 중년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제목만으로 중년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주)와이쥬크리에이티브의 윤주 대표는 "드라마의 제목은 그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사극이 <동이>, <대장금>, <대왕세종> 등 역사적 인물을 직접적으로 내세워 시청자들에게 신뢰감과 특성을 잠정적으로 드러낸다면, 중년 여성들의 로망을 담은 드라마 제목은 판타지를 자극해 TV 앞으로 모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공주가 돌아왔다>는 배우 황신혜가 등장하는데다 발레리나였다는 설정으로 중년 여성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내조의 여왕>과 <돌아와요 순애씨>, <아내의 유혹>은 배우 김남주, 심혜진, 장서희 등 톱스타들이 출연해 연하남과의 로맨스로 설레게 한다.

특히 여성들을 내세운 드라마에서는 20대부터 50대 여성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제목이기 때문에 그들의 구미에 맞춰야한다.

올 하반기에도 새롭게 방영될 드라마들의 제목이 여성들의 위세를 한층 끌어올렸다. 바로 여자들을 위한 드라마들이 준비 중이다. <대물>과 <나는 전설이다>, <아테나:전쟁의 여신>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다. <대물>은 배우 고현정이 변호사에서 대통령이 되는 한 여인을 연기한다.

<나는 전설이다>는 배우 김선아가 '전설이'로 등장해 문제아에서 로펌 회사의 며느리로 등장하는 드라마다. <아테나:전쟁의 여신>은 배우 수애와 이지아가 강단 있는 여전사의 모습을 그릴 예정이다. 이들 드라마 제목은 극중 캐릭터와 부합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관계자는 "드라마의 시청률을 보면 여전히 여성들에게 채널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의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방송사에 수요도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현대의 여성을 대변하고, 현실을 제대로 비추는 드라마들이 성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