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론 레이몬, 에레즈 타드모르 감독의 <사이즈의 문제>체중 때문에 '루저'로 몰린 네 중년 남자의 스모 도전기

날씬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소파에 반쯤 누워 TV 리모컨을 돌리다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강요에 가까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환한 미소를 띤 사람들이 함께 운동 기구 위에서 땀을 흘리자고 부추기고, 마시기만 해도 '배둘레햄'이 사라진다는 건강음료를 권한다.

TV 광고 속 그들은 식스팩이 선명하게 장착된 복근을 드러내며, 나의 탄력 없는 지방덩어리 육체가 얼마나 흉한지 깨닫게 한다.

바야흐로, '다이어트 권하는 사회'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한국의 일만이 아닌 듯하다. 다이어트가 만국 공동의 관심사이자 스트레스로 자리 잡은 요즘이다.

이스라엘 영화 <사이즈의 문제>는 모두들 '덜 먹고 더 뛰며' 살빼기에 여념이 없는 세상에, 당당하게 반기를 든 용감무쌍한 '빅 브라더스'의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요리사 헤르젤(이지크 코헨)도 '다이어트의 지옥'에서 허덕이는 소시민 중 하나다. 어린 시절, 헤르젤은 아버지는 몸무게 때문에 집 베란다에서 비명횡사하는 '웃지 못 할 비극'을 목격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버지의 묵직한 유전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스스로는 "남들보다 조금 통통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150킬로그램의 몸무게는 자꾸 그의 인생에 태클을 건다. 직장 상사는 대놓고 "도통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으니 주방에 숨어 있어라"며 수모를 주고, 어머니 역시 아들을 바라보며 "그 덩치에 여자친구 하나 사귈 수 있겠느냐"며 혀를 끌끌 차댄다. 굳은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 모임에 나가지만, "입은 말 할 때만 써야 한다"며 독설을 일삼는 다이어트 코치 때문에 마음의 상처만 깊어진다.

헤르젤에게 위안을 주는 건, 다이어트 모임에서 만난 푸근한 마음의 소유자인 여자친구 제하라(이리트 카플란) 뿐이다. 마음만큼이나 푸근한 외모의 소유자인 그녀 역시 몸무게 때문에 가슴앓이하기 일쑤. "절대 뚱뚱한 며느리는 반대"라고 못 박은 헤르젤의 어머니 때문에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해보지만, 살들이 쉽게 떠나주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홧김에 예전 직장을 때려치우고 동네 작은 일식집에서 그릇을 닦던 헤르젤의 눈앞에 신천지가 펼쳐진다. 거구의 선수들이 모래판 위에서 괴력을 뽐내는, 일본의 전통 스포츠 스모를 보게 된 것이다. 언제나 "뚱뚱하다"고 무시당했던 헤르젤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일본인 친구들과 스모 시합을 하면서 "멋지다"는 칭찬을 듣는다.

처음 발견한 '뚱뚱한 몸의 쓸모'. 헤르젤은 과거 일본에서 스모 코치로 이름을 날렸다는, 비밀스런 식당 주인 키타노(도고 이가와)에게 스모를 가르쳐달라고 매달린다. 키타노는 "뚱뚱하다고 누구나 스모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그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헤르젤의 스모를 향한 묵직한 진심이 결국 키타노의 마음을 움직인다.

헤르젤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아름답고 날씬한 아내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아론(드비르 베네덱), 몸무게 때문에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게이 기디(아론 다한), 특종 욕심으로 팀에 합류한 삼미(스믈릭 코헨)는 헤르젤과 함께 손바닥만한 붉은 마와시(스모용 샅바)로 무장하고, '헤르젤과 곰 세 마리' 스모팀으로 다시 태어난다.

과체중 때문에 '루저'로 몰린 네 중년 남자의 '스모 도전기' <사이즈의 문제>는 <풀몬티>와 <으라차차 스모부>를 연상시킨다. 주인공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낯설고 이질적인, 그리고 결코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공통의 미션을 통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야기의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비슷한 건, 유쾌한 웃음 속에 사회에 대한 쓴 소리를 담은 이야기의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사이즈의 문제>가 말하고 싶은 진짜 문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다이어트 콜라를 주는" 좁은 시야의 편견 투성이 세상이다. '비만'을 '게으름 병'으로 등치시키는 싸늘한 시선에 대한 제하라의 대사는 충분히 곱씹어 볼만 하다. "수많은 거절과 상처로 나는 코끼리 가죽처럼 크고 두꺼워져 버리고 말았어."

이스라엘의 촉망받는 두 젊은 감독 세론 레이몬과 에레즈 타드모르는 '이스라엘의 스모팀'이라는 소재를 통해 두 이질적인 문화를 충돌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상대적인 기준'에 눈뜨게 한다. 과연 평균치를 웃도는 '몸무게'만으로 인성과 건강, 심지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같은 신체적 특질이지만, 키의 경우는 정반대다. 평균을 웃도는 키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발단이 된 웃지 못 할 '루저' 파동만 봐도 우리 사회가 외모에 관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지 알 수 있다. 소위 몸무게와 키 등 신체적 특징에 대해서도 이토록 편협한 사회가 장애에 대해선 더 얼마나 편협할 지, 상상만 해도 조금 끔찍해진다.

<사이즈의 문제>의 네 남자에게 스모는 뚱뚱해도 대접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다. '스모'는 철벽처럼 느껴졌던 '기준'이란 잣대가 실은 유연하고 상대적임을 일깨워주는 도구일 뿐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스모 스타'의 별난 지위를 내려 '위로의 이벤트'를 펼치지 않는다.

대신 내심 조금은 부끄러워했던 자신의 육체가 '내 것'임을 받아들이는 진짜 용기를 선사한다. <사이즈의 문제>가 스모만큼이나 공들여 찍은 멜로 라인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배우 이지크 코헨은 이 영화를 찍으며 자신의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실제로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는 배우임에도 타인 앞에선 절대 옷을 갈아입지 않을 정도였고, 이 영화 또한 노출에 대한 거부감으로 끝까지 고사하다가 감독의 삼고초려 끝에 합류한 이지크 코헨은 "감독에게 출연료를 받는 대신 심리치료비를 내야 할 것 같다"는 말로 <사이즈의 문제>의 치유력을 표현했다.

내 의지와 삶의 행복지수와 상관없이 등 떠밀려 '다이어트 지옥' 속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이즈의 문제>는 아주 저렴하고 효과 좋은 심리 상담이 될 듯하다. '다이어트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은 미국에도 <사이즈의 문제>의 훈훈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여겼는지, 할리우드 큰 손 제작자 밥 웨인스타인이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했다. 밥 웨인스타인에 의해 리메이크 될 예정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