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 로커>기어이 관객의 심장을 쥐어 터트리고 말, 고요한 살기의 밀도

한국 극장가엔 더 이상 '아카데미 특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트 로커>의 한국 개봉은 아카데미에 '배꼽인사'라도 해야 할 만큼, 고마운 일이다.

만약 올해 아카데미가 과하다 싶을 만큼 몰표를 던져주지 않았다면, 이 걸작은 불법 P2P 사이트를 헤매다 조용히 산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두 가지 이유에서 확신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허트 로커>가 한물 간 '이라크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한국 관객들이 관심을 둘만한 어떤 '스타 배우'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 덕분에 <허트 로커>는 걸작으로서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구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흘러간 '전쟁'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 모를 배우'에 의해 리얼리티를 가진다.

아마도 이 시나리오에 눈독을 들였을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그저 '액션'으로만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3월7일(미국 현지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로스앤젤러스 코닥 극장에 쏠린 전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사는 "과연 '전처의 역습'이 성공할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3D 신세계의 지평을 연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이자 <폭풍 속으로>를 비롯해 서 굵은 남성적 액션 영화를 만들어 온 여장부 캐서린 비글로우는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놓고 피할 수 없는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전처의 완벽한 승리'였다. 폭발물 제거 전문 군인의 이라크 참전기를 그린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싹쓸이 했다.

한편,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다 노미네이트'로 기선을 제압했던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는 촬영, 미술 부문의 수상으로 겨우 체면치레 하고 단상에서 물러났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상 수상작,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갈아 치운 <아바타>를 무릎 꿇게 한 '리얼 액션' 등의 수식어는 <허트 로커>에 관한 지극히 사소한 호들갑일 뿐이다. 진짜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영화 자체다.

<허트 로커>는 다짜고짜 폭염이 내리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폭발물 제거 전담반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팀이 폭발물 해체 작업 중이다. 팀장(가이 피어스)은 느긋하게 농담을 던져가며 해체작업을 하고, 두 팀원 샌본(앤서니 마키)과 앨드리지(브라이언 개러티)는 주변을 감시하며 혹시 모를 위협에 대응한다.

하필이면 제거 로봇이 끌고 가던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팀장은 두께가 30센티미터는 넘을 것 같은 든든한 보호장비를 갖춰 입고 뒤뚱뒤뚱 폭탄 쪽으로 향한다. 그 어기적거리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다고 느끼는 찰나, 상황은 급변한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평범한(?) 한 남자가 핸드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샌본과 앨드리지가 그를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결국 폭탄은 터지고 팀장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웃으며 농담한지 불과 몇 분이 흘렀을 뿐이다. 한 사람은 두꺼운 방어복 속에서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되고, 두 사람은 살았다.

이 초반 10분만으로도 관객은 직감한다. 그들이(그리고 내가) 서 있는 여기는 고요한 지옥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샌본과 앨드리지의 실제 시선과 거의 동일한 카메라를 통해 긴장의 밀도를 높인다. 느긋한 듯 보이지만, 잔뜩 긴장한 듯 쉴 새 없이 줌-인 아웃을 반복하고, 뿌연 먼지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 하나라도 발견하면 두려움으로 잠시 흔들리는 시선.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폭발의 진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가공할 위력의 폭탄이 터지는 순간, 주변의 공기는 멈추고 쇳덩이와 돌멩이가 폭발의 압력을 머금고 튀어 오르는 끔찍한 에너지. 그 앞에서 인간의 여린 육체는 속수무책으로 짓뭉개진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다. 이젠 두꺼운 방어복 따윈 우습다. 폭탄의 위력 앞에 방어복은 손만 대도 죽 찢어지는 종잇장만도 못하다.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공포'를 각인시킨 영화는 그제야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EOD 팀의 새로운 팀장 제임스(제레미 레너)가 임명된다. 그는 소위 '폭탄'이다. 첫 임무에서 제임스는 모든 규정을 무시하고 유유자적 폭탄 앞으로 걸어 나가고, 샌본과 앨드리지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제임스가 두 번째 폭탄을 제거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처음엔 샌본의 심정이 된다. "왜 저 인간은 남까지 죽이려고 드는 거지?" 하지만 제임스가 폭탄 뭉치의 전선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진다. 제임스가 옳다. 매뉴얼 따위를 조심스레 지켜봐야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살기 위해선 눈앞에 보이는 모든 폭탄을 제거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건 광화문 한 복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을 수거하라는 것과 같은 미션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 샌본과 앨드리지는 아직 모르고, 제임스는 안다. 샌본과 앨드리지는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있고, 제임스는 '잘 하면 살 수도 있다'는 체념에 잠식되어 있다.

엄청난 폭탄을 제거하고 돌아온 제임스에게 상사가 묻는다. "지금까지 몇 개의 폭탄을 제거했나?" 잘 모르겠다고 눙치던 제임스는 내심 자랑스럽다는 듯 털어놓는다. "827개입니다." 그는 827번의 죽음과 마주했고, 살아 돌아왔다. 관객은 이제 제임스의 행동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단 몇 십분 간 <허트 로커>를 본 것만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폭탄의 뇌관을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그 자신 안의 어떤 정상적인 회로도 하나씩 끊겨나갔을 것이다. 제임스는 전장에 널려 있는 망가진 폭탄이다. 끝내 터지지 않을 수도, 지금 당장 터져버릴 수도 있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놀랍게도, 단 몇 십분 만으로 많은 전쟁영화들이 목청 터져라 외쳤던 경고와 비명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허트 로커>는 주절주절 '전쟁의 비인간성' 따위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이 전하고 싶은 건, 지옥의 실재 그 자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사막의 공기와 보이진 않지만 그들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을 게 분명한 살수(殺手),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소리 없이 턱 밑으로 파고드는 알싸한 죽음의 냄새. 이라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건 일상이다. 미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미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이기지 못할 공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즐긴다.

어느 순간, 제임스가 폭발물을 해체했을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을 객석에서 느낀다. "제발 죽지 않기만을" 바랐던 기도가 우스우리만치 허망하게 좌절된 지, 불과 몇 십분 만에 나는 제임스의 목숨 건 도박을 '스릴'이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있었다.

<허트 로커>의 액션을 '쾌감'으로 즐기고 있는 스스로가 두렵고, 슬프고, 비참하다. 아마 감독이 <허트 로커>를 만든 이유는 이런 '깨달음'이었으리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파병 군인에게 아카데미 트로피를 바치며, 그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란다"는 캐서린 비글로우의 수상소감이 그제야 뭉클해졌다. 훌륭한 액션영화이자 훌륭한 반전영화가 탄생했다. 걸작이라 칭하기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