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힘들 때마다 불러내고 싶은 '디바'들 가득한 영혼의 안식처

'엄마가 뿔났다'
"나는 드라마홀릭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였다.

"어머, 나도!" 아니면, "그렇게 시간이 많니?" 나는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이 한가함의 상징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왜 드라마 시청이라는 취향은 수많은 다른 '개인의 취향들'과 동급에 올라서지 못할까) 두 번째 반응이 좀 놀라웠다.

몇 번 당하고 나니 그 반응(어머, 너 시간이 그렇게 많니?)에 담긴 미묘한 경멸의 뉘앙스가 느껴졌다. 요컨대 그 반응은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노는 걸 좋아해서야 쓰겠냐는 질책의 의미이기도 했고, '드라마 좀 작작 보고 본업에 충실해라'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질책은 진정한 드라마홀릭인 내게 잘 먹히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난 그냥 드라마가 좋았다. "너도 드라마 좋아하니? 어머, 나도! 난 축구 때문에 드라마 결방되면 아주 돌겠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밤새도록 드라마에 대해 떠들 수 있다.

드라마가 좋은 이유를 대라면 몇 날 며칠을 떠들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드라마는 가장 만만한 오락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결코 만만치 않다.

'파스타'
진정한 독자반응비평이 '실제로' 가능한 건 아직 드라마뿐인 것 같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제작진 전체가 일희일비하며 창작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 진정한 '독자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장르다. 그래서 드라마가 욕을 먹기도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드라마의 강력한 문화적 파장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에게 아주 사적인 의미에서 드라마는 무료 클리닉 같은 마음의 장소다. 나는 드라마로 내 감성의 환부를 진단하고 드라마라는 '인체에 무해한' 신경안정제를 매일 복용하며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자기 치유하기는 여성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해법이다. 드라마는 보고 싶은 친구가 곁에 없을 때 대신 수다를 떨어주는 영혼의 룸메이트다. 드라마는 교통비도 진료비도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든 무한리필되고 무한반복재생까지 가능할 뿐 아니라, 리모컨으로 셀프서비스까지 가능한, 내 마음의 무료 진료소다.

내 마음 속 드라마 클리닉에서는 힘들 때마다 불러내 리플레이하고 싶은 '디바'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영감을 제공하기도 하고, 골칫거리가 생길 때마다 '네 고민은 내 것에 비하면 사소한 거야'라고 핀잔을 하기도 하고, 인생의 좌표를 찾을 수 없어 헤맬 때마다 '원래 그런 거야, 인생이란 원래 좌표 따윈 찾을 수 없는 거야'라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드라마 클리닉을 애용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캐릭터'를 실제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예를 들어 나에게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와 <전원일기>의 김혜자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여성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김선아와 <시티홀>의 김선아에게는 행복한 상호텍스트성이 존재한다.

<거짓말>의 배종옥과 <굿바이 솔로>의 배종옥 또한 전혀 다른 매력으로 빛나는 캐릭터다. <모래시계>의 고현정과 <선덕여왕>의 고현정은 각각 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드라마틱한 캐릭터였다. 혜린은 386 세대의 잃어버린 낭만을 대변하는 존재였으며 미실은 마키아벨리적 여성 리더십의 백과사전 같은 존재로 기억된다. <네 멋대로 해라>의 공효진과 <파스타>의 공효진 또한 전혀 다른 캐릭터로 같은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선덕여왕'
수십 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떻게 될지 조바심이 날 때는, 불현듯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삼총사 할머니들을 생각한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도 있다. 20대라는, 영원히 닫히지 않는 열린 시간을 생각할 때, 그럴 땐 <네 멋대로 해라>가 제격이다. 남들에게 숨기기 힘든 내 마음 속 허영을 발견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덫에 스스로 걸려 넘어질 때에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어울린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잡는 날, 고독이야말로 인생의 배경음악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노희경 작가의 <거짓말>을 생각한다. 영원히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 꿈을 위해 평생 달려가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생각한다.

아직 마음 속의 영원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날 때에는 드라마 <대장금>이나 <황진이>가 떠오른다. 한상궁과 장금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완벽한 유대라는 것이 가능할까. 내게 황진이보다 백무(김영애)가 더욱 매혹적이었던 이유는 내가 꿈꿔 온 어떤 스승의 이상향을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내 마음 속의 드라마 왕국 초대 손님 리스트에 새로 오른 드라마 중에서는 <파스타>가 있다. 평생 첫사랑의 설렘을, 평생 신참 새내기의 설렘을 잊고 싶지 않을 때 이제는 <파스타>를 기억해야만 할 것 같다. 이 드라마에는 '왕후의 자리'나 '재벌가의 맏며느리 자리' 같은 탐스런 먹잇감도 없고, 고부갈등이나 불륜 같은 엄청난 갈등도 없다.

그런데 매 순간 '첫마음'을 자극하는 어떤 수줍음과 설렘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완전히 준수하기 어려운 '기본'에만 충실한 두 남녀. 그들이 온갖 사술과 속물적 욕망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첫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파스타>는 정말 아름답게 증명해주었다.

'대장금'
문득 거울 앞의 내가 너무 낯설어 화들짝 놀랄 때, 적지 않은 내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싶은 요즈음.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드라마 캐릭터가 한 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수다를 떤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들, 나의 상상 속에서 영원히 방영되는 '자매님들'의 산전수전은, 감성의 위기가 올 때마다 따뜻한 위로의 마사지나 절박한 구원의 동아줄을 아낌없이 내려준다. 내 마음 속 드라마 클리닉에는 별다른 부작용이나 의료 사고도 없다. 나는 여전히 '건강한' 드라마 중독자다.


'굿바이 솔로'
'네 멋대로 해라'
'경성스캔들'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