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먹고·보고·듣고·즐기는 '자발적 외톨이' 글루미 제너레이션익명성에 숨어 일방적이고 가볍고 무책임한 '그들만의 소통' 원해

제이슨 플랜의 '뉴요커 초상화'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만남은 괴롭다. 여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 하지현은 그의 저서 <도시 심리학>을 통해 대면 접촉과 문자 메시지 보내기에 각각 소요되는 에너지가 현격하게 차이 난다고 말한다.

대면 접촉은 전화 통화와 함께 동시적(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즉각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날리는 공을 쉬지 않고 받아 쳐야 하고 온 몸의 촉수를 곤두세워 목소리 톤이나 속도, 표정, 몸짓이 던지는 정보를 집약적으로 해석해 반응을 보여야 하는 고난이도 게임이다.

반면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메신저, 그리고 편지까지를 포함하는 비동시적(a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상대방이 보낸 정보를 일단 접수한 후 잠시나마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나름대로 최선의 답변을 선택해 보내면 되는 것이다. 소통의 정확도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숨막히는 핑퐁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월등하다. 행동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점점 더 후자를 추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0 트렌드 웨이브>에서는 자발적 외톨이,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을 우리 사회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집단에서 분리돼 독자적 행동을 즐기는 사람에 대해 이전에는 사회병리학적 접근이 주효했다면 이제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신(新)인류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외톨이지만 외톨이를 자처하는, 고독하지만 그 고독을 즐기는 그들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어느 날 집밖으로 뛰쳐나가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먹고, 보고, 듣고, 즐기는 일련의 생존 및 문화 활동을 '나 혼자' 하길 원할 뿐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는 단순하고 상큼한 일정에 동반자라는 개념이 추가될 때 얼마나 많은 변수가 생겨나며 때로는 험악한 일정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감안한다면, '혼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노동량 대비 만족도가 가장 높은 최선의 선택이 된다. 그들에게 소통은 짐이요, 노동이다.

그러나 효율성 운운하는 그들도 속이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서로 만나서 듣고 보고 만지는 데에서 생성되는 2배, 3배의 에너지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쿨한 척하지만 실은 다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래서 그들도 소통을 한다. 자신을 완벽하게 가린 채, 일방적이고 가볍고 무책임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인의 소통법은, '소통을 원치 않는다, 또는 그래도 원한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가 만들어낸 가여운 불구들이다.

'라이프 드레스'
원치 않는다 – "전부 로그아웃 해주세요"

몇 년 전 벨기에의 한 디자이너가 만든 획기적인 드레스가 뉴스에 오른 적이 있다. 라이프 드레스, 일명 변신 드레스로 스커트처럼 입고 있다가 머리 위로 들어올려 지퍼를 잠그면 자동으로 공기가 주입되면서 마치 거대한 풍선처럼 변신해 하반신 위를 완벽하게 바깥과 차단시켜 주는 옷이다.

이 스커트가 필요한 때는 주위가 시끄러울 때, 눈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아니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간절히 혼자이고 싶을 때 등이다. 당시에는 엽기 상품 중 하나로 꼽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데 그쳤지만 요즘에는 재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정도로 사회가 달라졌다. 혼자 있기 원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취향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하나하나 구비되고 있는 것이다.

신촌에는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 바'가 있다. 혼자 밥 먹으려면 패스트 푸드의 바에 앉아 넋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 보며 햄버거를 씹거나, 분식집에 들어가 게눈 감추듯 때우는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1인용 바에 앉아 앞에 놓인 대형 TV를 보며 자기만의 화로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게 해 놓았다.

1인용 라면집도 있다. 독서실 칸막이처럼 만들어진 식탁에 머리를 박고 라면을 먹는 시뮬레이션 사진은 보는 이를 다소 안타깝게 만들지만 그러면 어떠랴. 어차피 칸막이에 가려서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다. 현명하게도 주문과 배식 시스템까지 모두 자판기 형식으로 만들어 놓아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낼 수 있다.

커플 좌석에 이어 싱글 좌석도 늘었다. 영화보다는 뮤지컬과 연극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관람료가 비싸서 의견 조율이 더 어려운 분야일수록 혼자서라도 보고 말겠다는 외톨이 족들의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최고 흥행작이었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2월 한달 동안 1인 관람석을 30% 할인 판매했다. 2인, 4인 등 짝수 좌석으로 판매된 좌석들 사이에 남은 낱석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 것으로, 규모의 경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거나 가장 나중에 배려되던 싱글족을 사회가 활용하기 시작한 증거다.

새롭게 부상하는 SNS 트위터는 그 폭발적인 전달력이나 편리성 외에도 답변이 필요 없는 비동기 메신저라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만나서 대화하는 수고는 물론이고 문자로 주고받는 것도 번거로운 사람들에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트위터의 소통 방식은 쿨하고 편리하다. 상대방을 지정하고 메시지를 교환할 경우 일일이 답변하는 시늉이라도 해줘야 삐치지 않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중얼거림 내지는 지저귐'에는 답변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일방적인 통보와 일방적인 접수, 차갑고 편리하고 고독한 소통이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의 일부를 잠식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혼자서 떠나는 여행 상품의 증가, 책을 잔뜩 구비해 놓은 카페, 싱글 손님 여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6~8인용의 거대한 테이블에는 '굳이 만나서 부비적거리는 진득한 소통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용이 있는가'에 대한 자발적 외톨이들의 의문이 묻어 있다.

그래도 원한다 – "날 알아줘요, 누구라도"

몇 년 전 TV에서 택시 방명록이 한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택시 기사가 고안한 아이디어로 택시 안에 방명록을 놓아 두어 승객들로 하여금 그 안에 아무 글이나 쓰도록 한 것이다. 방명록에는 시, 격언, 힘을 주는 한 마디, 일기, 심지어 공개 구혼글과 함께 연락처 등이 무작위로 쓰여졌고 방송에서는 '도심의 사랑방'이니 '아직 온정이 남아 있는 세상'이니 하며 훈훈한 분위기로 포장되었다.

물병편지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익명을 보장받고 나서야 겨우 마음 한 켠을 내려 놓는 도시인들의 두려움이 보인다. 속을 쏟아 놓을 곳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동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속을 읽은 그 누군가와 만나는 것은 사양한다. 잽싸게 내지르고 도망가기, 1회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이다.

지난 해 김군(kimgooni)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네티즌이 발명한 물병 편지가 온라인 상에서 조용한 화제를 모았다. 지극히 간단한 형태의 이 플래시 프로그램은 실행시키기만 하면 모래 사장 모양의 창이 뜨고 잠시 기다리면 '디리링' 소리와 함께 파도에 밀려 물병이 하나 도착한다. 클릭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가 나온다.

'샤이니 내꺼' 같은 의미 없는 담벼락 낙서가 쓰여 있을 때도 있지만 '전 애인의 결혼으로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요' 같은 진지한 고민이 떠밀려 오기도 한다. 그렇게 전해진 편지에는 답장을 써서 다시 떠내려 보낼 수 있지만 원래 발신인에게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너무 무거워서 또는 너무 가벼워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은 그렇게 수신자도 발신자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온라인의 바다를 유영한다. 기본적으로 이름을 써야 전송되지만 로그인이나 신원 인증이 전혀 필요 없는 프로그램이므로 완벽한 익명이나 다름 없다. 택시 방명록의 온라인 버전이되 무대는 훨씬 더 넓어졌다. 택시 방명록이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들에 한정된다면 물병 편지는 전국의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다.

운이 좋아 자신이 보낸 편지가 여러 명의 답장을 달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물병 편지의 참 맛은 그 희박한 확률에 당첨되는 것이 아니다. 낯 모르는, 그러나 실체는 확실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내는 것, 애초부터 주고받기를 고려하지 않은 소통이다. 닿지 않을 것을 알고 나서야 손을 뻗은 것이다.

컴퓨터가 상대방을 이어주는 랜덤 채팅 역시 익명성을 담보로 한 절름발이 소통법이다. 로그인이나 회원 가입 없이 완전히 스스로를 가린 채 클릭 한 번으로 상대방을 바꿔 가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랜덤 채팅은, 그러나 익명성이 마음을 터놓게 하는 것보다는 공격성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씁쓸한 사실만을 알려준다.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2만~3만 여명이 동시 접속하지만 대화는 5초 이상 이어지지 않고 음담패설과 의미 없는 폭언이 거의 전부다. 인간이 되어 보려고 접속했다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나오는 셈이다.

뉴욕의 일러스트레이터 제이슨 폴랜은 830만 뉴요커의 얼굴을 전부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을 포착해 단 2분 만에 한 사람의 초상을 완성하는 그는 현재 약 1만여 명의 얼굴을 그려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폴랜은 자신이 2분 이상 머무르는 장소와 시간대를 미리 알려주면 모델이 될 확률이 더 높다고 귀띔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에서 일하는 그가 생업과 관련 없는, 그것도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다음 아닌 소통 때문이다. 뉴요커 한 사람 한 사람의 초상을 그림으로써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익명으로 파묻혀 있는 개개인에게 존재감을 부여하겠다는 것.

화려한 도시의 배경이 되어 버린 사람을 하나의 인간으로 발견하려는 그의 노력은 가상하나, 물병 편지와 익명의 노트 뒤로 숨어 버린 그들을 끌어 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폴랜이 2분에 한 사람을 그려내는 발군의 실력으로 1만 여명의 얼굴을 그리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