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불꽃 튀는 칼의 부딪힘 풀샷 액션이 백미

2010년 충무로는 여전한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한 해 한국영화 개봉작이 100편이 훌쩍 넘었지만, 이제는 한국영화 극장 개봉작이 한 달에 2~3편에 불과한 상황.

하지만 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천만 감독' 빅 3의 신작이 꽁꽁 얼어붙은 충무로를 해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실미도> 강우석 감독의 <이끼>(7월 개봉 예정), <해운대> 윤제균 감독의 <제7광구>(연말 개봉 예정)와 함께 2010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졌다.

때는 임진왜란이 코앞에 닥친 선조 25년.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당파 싸움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왜구들의 침탈에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허약한 군대의 '의무태만'을 두고 볼 수만 없었던 무인 정여립(임재윤)을 필두로 서자 출신의 왕족 이몽학(차승원)과 전설적인 칼솜씨의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은 "하나된 세상"을 꿈꾸며 민병세력 '대동계'를 결성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왜구와 맞선 그들에게 돌아온 건 '역적'이라는 모함 뿐이다.

대동계가 민초들의 신임을 얻자, 조정에서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것. 역적으로 몰린 정여립이 목숨을 끊자, 더 이상 썩어빠진 벼슬아치에게 국운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몽학은 대동계의 힘을 업고 독단적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무인의 정치세력화에 반대하는 황정학은 "칼잡이는 칼 뒤에 숨어야 한다"며 이몽학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만, 이미 판세는 이몽학 쪽으로 기울고 만다.

한편, 이몽학의 벼슬아치 숙청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죽을 뻔한 서자 견자(백성현)는 우연히 맹인 검객 황정학을 만나 목숨을 부지하고, 그에게 검술을 배우며 이몽학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운다. 견자와 함께 이몽학의 그릇된 욕망을 막아서려는 황정학의 여정에 이몽학을 사랑하는 기생 백지(한지혜)가 끼어들고, 견자는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다. 그 사이 이몽학의 대동계는 무기와 군사력을 키워 한양으로 진군하고, 이몽학과 황정학, 견자는 서로를 향해 거둘 수 없는 칼날을 겨눈다.

박흥룡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은 이준익 감독에 의해 전면 재구성됐다. 조선시대에서 천민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서자'로서의 비애를 가진 이몽학, 황정학, 견자의 과거사를 과감하게 압축한 대신, 그들의 다층적인 감정을 오로지 칼에 실어 보여주려는 듯 액션 신에 방점을 찍었다.

이몽학과 황정학, 황정학과 견자, 이몽학과 견자의 관계는 칼의 부딪힘을 통해 묘사된다. 한때 같은 꿈을 꾼 동지에서 서로의 목숨을 거둬야 하는 적이 된 이몽학과 황정학의 칼에는 죽이고자하는 '살기'보다는 살리고 싶은 '애증'이 묻어난다.

스승 황정학과 풋내기 제자 견자의 칼 사이엔 따뜻한 배려와 웃음이 담긴다. 마지막으로 원수지간인 이몽학과 견자의 칼 겨룸은 비애에 잠겨있다. 이 결투에서 이긴다한들, 이몽학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없고, 견자의 삶이 나아질 리 없다. 이미 '패배한' 자들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싸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이들의 이야기를 칼끝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실제 배우들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최대한 자세히 보여주려는 듯, 때때로 속도를 늦추는 슬로우 액션 신에선 "대사보다 칼로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가 십분 드러난다.

아마도 한 신을 완성하기 위해, 수 십 아니 수 백 번 쯤 합을 맞췄을 '풀샷' 액션 신은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불꽃 튀는 칼의 부딪힘이 그대로 드러나며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칼을 쓰는 습관과 캐릭터의 특징을 연관시킨 디테일도 훌륭하다. 눈 대신 귀로 세상을 보는 황정학은 보폭을 줄이고 원을 그리는 듯한 방어적인 검술을, 욕망을 뿜어내는 이몽학은 달려 나가며 직선으로 상대를 베거나 찌르는 공격적인 검술을 쓴다.

황정학과 이몽학의 클라이맥스 결투신은 단순한 액션 신의 완성도를 넘어 캐릭터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낸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배우와 캐릭터의 조화도 합격점이다. 차승원의 카리스마는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이루지 못한 꿈' 속을 헤매는 비운의 영웅과 잘 들어맞는다.

이몽학의 '동물성'을 강조하기 위해 착용했다는 송곳니는 조금 과한 감이 있지만, 클로즈업 신에서 강렬한 눈빛과 그 뒤의 미세한 떨림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차승원의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또한 황정민의 섬세한 캐릭터 소화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원작 만화에서 웃는 듯 찡그린 둥근 얼굴로 '허허실실'거리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고수의 '포스'를 풍기는 황정학은 배우 황정민에 의해 좀 더 매력적으로 발전했다. 일본의 유명한 맹인 검객 '자토이치'와 꼭 한 번 결투를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그간 해사한 소년으로만 여겼던 백성현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액션 신만큼 강렬한 부분은 정치 풍자다. 오랜만에 "고향 같은" 사극 현장으로 돌아간 이준익 감독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통해 또 한 번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서 현실의 아이러니를 건져 올렸다. 확실히 사극 정치풍자는 이준익 감독의 독보적인 장기다.

제 몸의 안위 말고는 중요한 게 없는 무능력한 왕 선조를 중심에 놓고, 동인과 서인이 당파 싸움을 벌일 때, 헛헛하고 뒷맛이 쓴 웃음이 절로 난다. 상대가 '콩으로 메주'를 쑤자고 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팥으로 쒀야한다'고 우기는 영화 속 정치가들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무력한 정치인들은 꿈이 사라진 세상을 열었지만,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목숨을 걸고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 꿈은 부서진다. 제 아무리 '영화'라고 한 들, 이미 역사책을 통해 결말이 알려진 '현실'을 뒤바꾸진 못한다. 꿈이 사라진 세상에서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대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왕이 도망간 텅 빈 궁궐에서 '꿈의 실체'를 목격한 자들의 허망함은 꽤 긴 여운을 남긴다. 그들의 꿈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슬펐다. 우리는 과연 구름을 벗어난 달을 볼 수 있을까. 이준익 감독의 세계관은 점점 더 짙은 비극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