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우리 의사 선생님>진짜보다 위대한 가짜 통해 현대의 무성의한 편의주의를 조용히 질타

어린 시절, 손자가 배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할머니들은 고목나무 껍질 같은 거칠고 두툼한 손으로 배를 쓸어주며 주문처럼 노래를 흥얼거렸다.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손은 약손." 배에 서서히 퍼지는 온기를 느끼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면, 배는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명문 의대를 나온 유명한 의사의 차가운 손 따윈 꾸벅꾸벅 졸면서도 손자 걱정에 배에서 손을 떼지 못하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이길 수 없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우리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할머니 약손'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다.

작은 시골마을에 소동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보다 예수님보다 의지했던" 진료소 의사 이노 선생(쇼후쿠테이 츠루베)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형사들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마을 사람들 각각이 기억하고 있는 이노 선생에 대한 '기억'이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체 그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이고, 왜 사라진 것일까.

<우리 의사 선생님>은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결과를 공개하길 잠시 미뤄두고 과거로 돌아간다. 큰 병원이 있는 도시까지 꼬박 2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가야하는 외진 시골, 전체 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인 작은 마을에서 이노 선생은 없어서는 안 될 '소금'같은 존재.

항상 '부처의 미소'를 잃지 않는 이노 선생의 진료소엔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몸의 병 뿐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진단하는 현명한 눈과 그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따뜻한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의 에피소드를 보면 관객도 이노 선생의 능력을 알아챌 수 있다. 오랜 병치레 끝에 임종을 앞둔 노인을 진찰하기 위해 왕진을 간 이노 선생의 눈엔 환자 뿐 아니라 가족의 마음이 보인다. 숨을 멈춘 노인에게 삽관을 하려하자, 의사 뒤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며느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오랜 병치레에 지쳐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불경하지만 현실적인 마음을 읽은 이노 선생은 삽관하는 대신 숨이 끊어진 노인을 안고 등을 토닥인다. "그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그의 토닥임으로 노인은 목에 걸린 초밥 조각을 뱉어내고 막혔던 숨길을 튼다.

마을 사람들은 이노의 치료가 죽었던 노인마저 살려냈다고 환호하지만,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명의 이노 선생에 대한 또 다른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은 그렇게 어이없는 실소가 뒤따른다. 과연 이노의 진심어린 '치료'가 죽었던 노인마저 살린 것인가? 적어도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마을 노인들만이 그렇게 믿는 건 아니다. 내기에 져서 어쩔 수없이 작은 시골마을로 오게 된 젊은 인턴 의사 소마(에이타) 역시 "환자 수를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 도시 의사"들은 꿈도 못 꿀 이노 선생의 따뜻한 진료에 감화받기 시작한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사라진 이노를 찾아 나선 형사들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과 이노 선생이 마을 사람들에게 '신이 내린 명의'로 불리게 된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예상했던 대로 형사들이 추적한 진실과 이노 선생의 현실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한 몸이다.

스포일러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자명한 '진실'을 들려주자면, 이노는 의사 아버지를 둔 제약회사 외판원, 즉 가짜 의사지만 동시에 그는 죽은 사람마저 살려내는 명의다. 이노가 명의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체해서 배가 아픈 환자에겐 멀리 있는 불로초보다 가까이 있는 소화제가 명약인 법이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외딴 시골에서 소소한 병치레에 시달리던 마을 주민들에겐 의료보험을 따지고 며칠 전에 예약해야만 겨우 몇 분 시간을 내주는 '진짜 의사'보다 몸이 찌뿌둥하면 언제고 찾아가 시시콜콜한 상담을 할 수 있는 '가짜 의사'가 '명의'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인간에 대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두드러진 매력적인 영화다. 전작이자 데뷔작인 <유레루>에서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질투와 욕망을 끄집어냈던 그녀는 4년 만에 내 놓은 <우리 의사 선생님>을 통해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의 성의 없는 '편의주의'를 나직하게 비판한다.

자격증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풋내기 의사 소마와 어머니의 위암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의사 딸이 '진짜'이고, 자격증 없이도 소외받은 노인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그들을 치유시키는 이노는 '가짜'라면, 과연 진짜가 가짜보다 훌륭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진짜와 가짜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건 관객의 몫이지만, 니시카와 감독은 엔딩 장면을 통해 "나는 이노의 편"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만큼 암이 진행된 환자를 병원에 가둬놓고 독한 약으로 괴롭히는 대신, "암이 아니다"라고 오진을 선택한 이노는 범죄자가 되지만, 끝내 자신의 환자 곁을 지킨다. 비록 그것이 또 다른 거짓일지라도, 이노에겐 세상의 잣대보다 자신의 환자가 더욱 중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서정적인 영상 속에 은근히 묻어 놓는 그녀만의 장기와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끌고나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야 마는 특유의 뚝심도 여전하다. 현자의 빛과 범죄자의 어둠을 오가는 쇼후쿠테이 츠루베의 표정 연기는 필견할 만하다.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노 선생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우리 의사 선생님>의 엔딩이 던지는 질문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