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가수 유주용에 의해 첫 발표어버이날이면 어김없이 불리며 세대초월 사랑받아[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우주용'부모' (1969년 신세기 레코드)

과거 화창한 봄이나 사색의 계절 가을이면 학교나 교회에서는 '문학의 밤' 같은 낭만적인 행사들이 참 많이 열렸다.

그때 시 낭송회, 시화전은 남녀학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남녀공학이 없던 시절인지라 문학의 밤 축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던 학생들의 마음을 울렁울렁하게 만든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낭만이 넘쳐났던 그 시절, 시는 가장 사랑받았던 문학 장르였다. 언제부턴가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귀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를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한 집 건너 시집을 낸 아줌마들이 포진하고 있을 정도로 시집 발행과 시인은 오히려 늘어난 점이다.

시가 읽히기 않는 디지털 세상에 대안적으로 생겨난 장르가 있다. 시 노래다. 대중가요에는 시와 음악의 결합을 통해 대중의 영혼을 어루만졌던 시 노래가 실로 무수하다.

사실 예전에는 시와 대중가요에 대한 장르적 편견은 선명했다. 클래식과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간극만큼이나 시는 상위 장르이고 대중가요는 하위 장르라는 전 근대적인 시각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대중가요 가사로 이용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대중가요 시상식에서 작사 부문 수상자로 지명되어도 수상 거부를 했을 정도다. 지금은 시가 읽히지 않다 보니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시를 대중가요 가사로 사용되어 널리 불리어 지길 원한다. 전세가 역전된 셈이다.

시와 노래. 이 둘은 각각으로 보이지만 대중가요로 한 몸이 되었을 땐 새로운 생명력을 발휘한다. 시집을 발표한 가수들은 몇 명이나 될까? 의외로 엄청나다. 최초로 시집을 발표한 가수는 혼성듀엣 뚜아에무아의 리더 이필원이다. 그는 1976년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시집 '바람꽃'을 발표했다.

중학생 때의 습작부터 인기가수로 활동할 때까지 쓴 65편의 시와 노랫말 가사를 모은 시집이었다. 그 후 박인희, 조동진,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김현식, 백창우, 김현성, 이선희, 강인원, 조성모, 임지훈, 정태춘, 길은정, 이상은, 정태춘 등 수많은 가수들이 시집을 내며 시인가수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어떤 시인의 시가 가장 많이 대중가요 가사로 사용되었을지도 궁금해진다. 누굴까? 7·5조의 정형률로 우리의 전통적인 한을 절절하게 노래한 한국 서정시의 대표작 '진달래 꽃'으로 대변되는 국민시인 김소월이 주인공이다. 소월 시는 대중가요는 물론 가곡으로도 무수하게 만들어졌다.

그를 생각하면 노랫가락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가 노래를 즐겨 들으며 시로 썼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많은 노래로 불렸기 때문이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마야가 부른 '진달래 꽃', 정미조의 '개여울', 유주용의 '부모', 송민도의 '산유화', 서유석의 '먼 후일', 라스트 포인트의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장은숙의 '못잊어', 희자매의 '실버들', 이은하의 '초혼'은 모두 소월의 시를 가사로 사용해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들이다.

1968년 소월 시가 대중가요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2장짜리 프로젝트 음반을 시작으로 수많은 소월 시 노래와 낭송 음반이 70년대까지 절찬리에 발매되었다. 그중 1969년 코미디언 서영춘의 친형 서영은이 작곡하고 혼혈가수 유주용에 의해 최초로 발표된 '부모'는 소월 시 노래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이다.

'부모'의 오리지널 곡이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에는 총 7명의 가수가 취입한 12곡이 수록되어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음반에 수록된 소월의 시 노래만 무려 4곡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유주용은 '부모'외에도 '님과 벗'을 한 곡 더 노래했고 당대의 인기가수 최정자 또한 '진달래꽃', '님에게' 2곡을 불렀다.

스스로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님의 애틋한 마음을 알게 된다는 애절한 노래 '부모'는 지금도 5월 어버이날이 되면 어김없이 불리어지며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양희은, 홍민, 김세환, 이미자, 은방울자매, 나훈아, 문주란, 조미미, 이수미, 남궁옥분 등에 의해 수없이 리메이크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