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임상수 감독의 <하녀>농도는 짙지만, '치정'이라 부를 감정의 밀도는 낮아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전체가 시무룩한 분위기에서도, 칸의 해변엔 여보란 듯 레드카펫이 깔렸다. 5월12일부터 23일(현지시간)까지 열리는 63회 칸국제영화제를 찾아 올 전 세계 영화인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이제 '한국영화가 칸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이 그리 호들갑 떨만한 뉴스가 아닐 정도로, 한국영화에 대한 칸의 사랑은 꾸준하다. 올해에도 이창동 감독의 <시>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경쟁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공식 주간은 아니지만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까지 기분 좋게 포함하면, 4편의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를 찾는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전도연의 호연으로 여자배우상을 받았고, 2009년 다시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심사위원 상을 받으면서, 많은 언론들이 "올해도 혹시나"하는 기대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여러모로 아주 허황된 기대라고 일축할 순 없다.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은 이미 칸의 사랑을 '인증'받았고, 오랜 공백을 깨고 깊어진 주름만큼 짙어진 연기를 선보인 배우 윤정희는 칸이 호감을 가질 만한 '이슈'다. 비록 칸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임상수 감독은 이미 <눈물>과 <바람난 가족>으로 해외영화제에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 특히나 심사위원장의 성향이 수상작과 연관이 깊다는 선례를 떠올릴 때, 팀 버튼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올해 칸영화제는 <시>의 묵직함 보다는 <하녀>의 파격을 더 반길 것이란 추측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파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하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많이 알려진 대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 <하녀>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이야기는 웬만한 아침드라마 혹은 옐로우 페이퍼의 가십란에서 질리도록 들었을 법한 내용이다.

순진하고 마음씨 좋은 30대 여인 은이(전도연)가 그냥 부잣집이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수준의 부잣집에 '입주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부잣집의 구성원은 예의바른데다 훤칠하고, 취미로 피아노 연주와 와인 시음을 즐기는 주인 남자 훈(이정재)와 젊고 아름다운데다 뱃속에 훈의 떡두꺼비 같은 쌍둥이 아들을 잉태하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 해라(서우), 훈과 해라의 여섯 살 난 딸 나미다.

은이는 오랜 시간 이 집의 '하녀'로 살아 온 병식(윤여정)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하녀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이는 주인 남자의 유혹을 받고, 자의로 넘어가고, 저도 모르는 새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늙은 여우' 병식의 레이더에 포착되고, 그녀는 해라의 어머니(박지영)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친다. 문제의 싹을 자르기 위해 해라와 해라 어머니의 협공이 은밀히 진행되고, 은이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1억 원이 든 봉투와 함께 그 집에서 내쳐진다. 착한 여자 은이는 병식에게 울부짖는다. "너무 갑갑해서 끽소리 한 번은 내야겠다"고.

임상수 감독은 왜 이토록 진부하리만치 익숙한 이야기를, 2010년에 새롭게 내놓아야 한다고 마음먹었을까. 모든 리메이크에는 필연의 이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후대의 누군가가 '다시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원작에 누를 끼치는 해프닝으로 그칠 뿐이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60년대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파격적인 걸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본전치기'일 뿐인 위험도 크다. 임상수 감독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리메이크의 대의적인 명분은 '고 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의 50주기'. 하지만 이보다 임상수 감독은 <하녀>가 사회를 고발한 방식에 더 마음이 동했을 듯싶다.

평등하게 가난하던 50년대를 넘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빈민과 중산층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60년대. <하녀>는 '착취'를 '성장'으로 오독하는 사회가 가진 균열 사이로 욕망이 이글거리는 한 여자의 육체를 꽂아 넣었다. 사회 비판과 풍자, 그리고 섹슈얼리티. 임상수 감독이 항상 원하던 것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 안에 다 있다. 욕심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상수 감독은 2010년 판 <하녀>를 통해 한 가지 목표는 이뤘다. 신분상승의 욕구조차 거세된, 자기 파괴적인 반항밖에는 허용되지 않는 완벽히 닫힌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재해석의 여지가 많은 리메이크 자세도 흥미롭다.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각색한 점, 빼앗으려는 자의 패악에 집중한 원작과 달리 인물 사이의 관계도를 새롭게 조명한 점 등도 높이 평가받을 지점이다. 하지만 칭찬은 여기까지다. 많은 <하녀> 리뷰 들이 내놓은 사회 비판과 풍자, 섹슈얼리티의 파격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설령 영화가 담으려 했던 많은 '의미들'에 동의한다 해도, 치정극으로서의 <하녀>는 영 김이 빠진다.

더 이상 연기력을 운운할 필요 없을 전도연과 윤여정의 협연, 앳된 소녀의 얼굴로 여인의 표독을 문득 드러내는 서우의 서브, 신사의 매너와 동물적 야만을 오락가락하는 이정재의 리시브, 편안하고 능청맞게 속물의 내장 끝을 보여주는 박지영의 양념까지. 배우들의 '칼'이 빛나는 몇몇 장면은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하지만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녀>는 농도는 짙지만, 밀도는 낮은 치정극이다. 몇 차례의 수위 높은 정사신도, 제작비의 대부분을 쏟아 부었다는 럭셔리한 세트도, 영화의 긴장감을 살리는 데 큰 공을 세우진 못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치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체에 대한 타는 갈망이든, 신분상승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망이든, 은이와 훈과 해라 사이에는 얽히고설킨 뜨거운 감정이 없다. 훈과 해라가 '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잠자리는 화대로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고, 뱃속의 아기는 죽이면 그만이다. 동시에 은이도 '쿨'하긴 마찬가지다. 이 맹추처럼 보이는 여인도 그리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가질 수 없으니 먼저 버린다는 식이다. 물론 함의 차원에서 설명하자면, '뜨거움'이 사라진 사회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설명일 뿐이다. 비장의 마지막 시퀀스조차 영화를 끓는점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 하긴 치정극의 재미는 관객의 창자 끝마저도 후끈후끈 달구는 열기인데, 치정이 '쿨'하니 심심할 밖에.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