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뮤지컬 등 '원소스 멀티유즈' 매력적 콘텐츠로 각광

MBC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이제 만화를 빼놓고는 대중문화를 논할 수 없는 세상이 온 듯하다. 만화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등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 대중문화의 매력적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제작자들에게도 '장사가 되는' 장르로 사랑받고 있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만화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의 무한변신

과히 만화 속 세상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열혈장사꾼>,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탐나는 도다>, <2009 외인구단>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에 이어 올해도 KBS 드라마 <공부의 신>과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를 시작으로 하반기에 <버디버디>, <대물>, <장난스런 키스>, <핑크레이디> 등이 제작될 예정이다.

영화계도 유명감독들이 저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준익 감독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선보였고, 강우석 감독은 동명웹툰인 영화 <이끼>를 택했다.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SF 만화 <설국열차>로 <괴물>에 버금가는 또 한 번의 성공 신화를 이루려고 한다.

KBS '공부의 신'
뮤지컬계도 얼마전 박광수의 만화 <광수생각>이 2006년 초연 이후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9차 앙코르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되었다. 김진의 만화 <바람의 나라>도 5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이다.

연극계는 웹툰의 인기 만화가 강풀의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며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만화, 일본만화 할 것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대중문화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중이다.

만화에 대중문화가 러브콜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라는 점과 줄거리의 콘셉트와 캐릭터가 분명하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여기에다 전문성까지 가미돼 격조 있는 만화들이 배출되고 있다.

<궁>, <탐나는도다>, <꽃보다 남자>, <버디버디>의 제작사인 그룹에이트의 배종병 기획PD는 "만화는 영상화하기에 최적의 콘텐츠다. 만화의 그림과 프레임은 영상에 가깝고 구체화되어 있어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됐다"며 "이야기의 구성이나 캐릭터가 분명해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재창조하는 데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성공을 거두었을 만큼 요리의 전문화를 내세운 작품이다. 일본의 만화 <신의 물방울>도 와인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전문적 지식을 앞세운 만화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신의 물방울>은 이 때문에 한류스타 배용준이 드라마 제작에 눈독을 들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만화가 전문성이 짙은 완제품으로 시중에 나오다 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시간적인 변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제작비의 규모까지도 별도로 계획할 수 있어 큰 장점으로 각광받고 있다.

방송가도 만화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수용자(시청자)들이 만화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배종병 기획PD는 "수용자들이 만화 속의 선정성, 폭력성조차 리얼리티의 잣대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화라는 인식 때문인지 드라마로 제작됐을 때에도 수용자들이 더 너그럽게 수긍해주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도 기획만화 창작 지원사업으로 만화에 대한 원소스 멀티 유즈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만화를 게임, 캐릭터, 영상물 사업 등 전천후 분야에 확대해 글로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2억 원의 사업지원을 펼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이제 만화 콘텐츠는 무궁무진한 사업성을 지닌 문화콘텐츠로 발전했다. 일본과 같이 만화 하나로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에 접목시킬 수 있는 멀티 유즈를 고려한 콘텐츠발굴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타지 속 현실

영화 '식객'
최근 만화원작을 모티브로 한 연극과 뮤지컬이 늘어나면서 공연계는 상반된 두 가지 고민에 빠져 있다. 만화 덕분에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들였다는 것과, 순수창작물에 대한 무관심이 그것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연들은 일단 제작자와 투자자들에게 순수창작물보다 몇 곱절의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어느 정도 히트를 한 만화원작의 작품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손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특별한 홍보 없이도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또한 제작자들에게는 라이선스도 거의 지불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만화원작의 주가가 더욱 치솟고 있다.

이에 대해 공연계에서는 "원작이 있는 작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순수창작물들에 대한 무관심의 골이 깊어질수록 공연계의 자발적인 발전이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염려에서다. 또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것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없다는 문제를 안게 된다.

공연기획자 이기현 씨는 "창작물의 경우 100개가 올려지면 100개 모두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무대로 올려지기까지는 힘든 과정"이라며 "처음부터 잘 되어서 인기 뮤지컬로 자리를 잡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때문에 순수창작물은 투자에서 외면당하기 쉽고, 무대에 올려지더라도 반응이 없으면 단기간에 내려와야 하는 수모도 당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나 영화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성공이 검증된 만화원작의 작품일수록 투자나 방송사 편성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배종병 기획PD는 "제작자들은 재미 있고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기 마련이다. 그중 만화의 성공 사례가 있다 보니 또 다른 창작물보다는 더 좋은 만화를 찾게 된다"며 "하지만 이런 자세는 제작자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제작자들이 창작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안고도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도 종종 나오면서 또 다른 고민을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첫 회에서 16%대의 시청률로 높은 기대를 받았지만, 이에 못 미치는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시작 전부터 원작만화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배우들의 비주얼로 관심을 끌긴 했다. 하지만 원작의 긴장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만화라는 공간의 예술을 드라마라는 시간적 예술로 풀어내야 하는 작업은 말처럼 쉽지 않다. 연출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며 "제작자들의 안정적인 마인드가 오히려 작품의 독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스토리 보드(만화)를 가지고도 콘셉트와 캐릭터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