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딘 데블로이스, 크리스 샌더스 감독의 <드래곤 길들이기>3D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 비행신의 아찔한 쾌감과 <E.T>의 감동

2010년 여름 극장가에 초대형 애니메이션들이 떴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CG 애니메이션계의 명가로 군림하고 있는 픽사의 <토이스토리 3>과 2인자 드림웍스의 <슈렉 포에버>를 들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어른들이 열광하는 애니메이션'의 원조. 애니메이션을 '동화의 명가' 디즈니가 꽉 잡고 있던 시절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만화 영화"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픽사가 놀랄 만한 CG 기술로 완성한 <토이스토리>를 내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의 모험에 아동관객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따라온 어른 관객들이 넋을 잃었다.

전세계적으로 대박을 터뜨린 <토이스토리> 이후 픽사의 승승장구를 곁눈질하던 드림웍스 역시 <개미>를 시작으로 어른 관객에 타깃을 맞춘 애니메이션을 내놓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블랙유머와 패러디의 결정체 <슈렉>을 내놓으면서 드림웍스는 목표를 달성했다. 소위 '어른 애니메이션'의 두 절대 강자 <토이스토리>와 <슈렉>이 2010년 3D 완결편으로 맞불을 놓는다는 소식에 관객의 기대가 솟을 대로 솟아있는 상황.

이 팽팽한 대결구도에서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는 월드컵을 앞둔 평가전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게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최후의 승자는 이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드림웍스는 번번이 픽사에 비해 작품성 면에서는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던 차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를 통해 드림웍스는 지긋지긋하던 2인자의 오명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근한 이야기를 등에 업고 경천동지할 3D 신세계를 황홀하게 비행한다.

용과의 전쟁이 숙명인 바이킹 마을, 용맹한 족장의 아들이지만 근육보다는 두뇌가 발달한 약골 히컵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처지다. 어느 날, 히컵은 자신의 발명품 돌팔매 기계를 시험하다가 우연히 용을 추락시킨다. 히컵이 잡은 용은 가장 사납다고 소문난 '나이트 퓨어리'. 날지 못하는 용을 죽이려던 히컵은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돌팔매에 맞아 다친 꼬리날개를 고쳐주며 점점 가까워진다. 결국 히컵의 진심을 받아들인 용도 마음을 열고, 히컵은 용에게 투슬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우정을 쌓는다.

투슬리스와 친구가 된 히컵은 마을의 어린 전사들의 시험장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한다. 무조건 힘을 쓰는 대신, 투슬리스를 통해 알게 된 용의 습성을 이용해 난폭한 용을 일순간 순한 양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동시에 히컵은 "용을 죽여야만 바이킹 족이 살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주장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용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마을 사람들에 맞서 히컵은 용을 이해함으로써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다. 히컵은 투슬리스와 함께 인간을 괴롭히는 악당 용을 처치함으로써 친구와 가족을 모두 지키고자 한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를 비롯해 말이 통하지 않는 이종의 친구와 우정을 쌓고, 결국 견고한 편견을 깨는 '감동 우정 영화'들의 공식을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이런 종류의 영화가 관객에게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이종의 친구에 대한 감정이입이 최우선 과제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용 투슬리스는 얼핏 보기엔 양서류와 파충류를 섞어 놓은 듯한, 쉽게 친근해지지 않을 인상이다. 하지만 금세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이 녀석에게 무한한 애정이 솟아오른다. 이미 많은 리뷰에서 강조한 것처럼,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애묘인들은 투슬리스를 집에 두고 온 고양이와 즉각적으로 동일시할 만하다.

다가오라고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본 척도 안 하던 녀석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갸르릉대며 품속으로 파고들 때의 말할 수 없는 기쁨. 히컵과 투슬리스가 서로에게 곁을 내주는 과정은 애묘인들이 수도 없이 겪었을 애증의 시간과 유사하다.

도무지 정이 안 가게 생긴, 말도 잘 안 듣는 이종의 친구를 끝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게 만드는 재주는 <드래곤 길들이기>의 두 감독의 전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디즈니의 파격으로 기억되는 <릴로 & 스티치>의 두 감독이 오랜 준비 끝에 <드래곤 길들이기>로 돌아온 것.

두 사람은 투슬리스의 외형을 흑표범의 매끈하고 고상한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움직임은 고양이과와 비슷하고, 얼굴은 한 때 애완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멕시코 도롱뇽 '우파루파'를 닮은 투슬리스는 다소 평범한 스타일의 히컵을 비롯한 인간 캐릭터의 밋밋함을 상쇄하기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강점은 3D 스펙터클이다. 특히 3D의 백미로 꼽히는 비행신의 완성도는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히컵과 투슬리스가 스크린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 관객들은 그들의 비행에 동참하는 짜릿한 경험을 공유한다.

지금까지의 3D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와 비교하자면, 이전 작품들의 비행신 혹은 추락신은 예고편 수준이다. 비행하던 히컵과 투슬리스가 땅에 내려올라치면, 나도 모르게 "5분만 더!"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만약 이것만으로 <드래곤 길들이기>가 끝을 맺었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타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여운이 긴 엔딩을 통해, 3D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롤러코스터의 대용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기술은 반드시 이야기를 업고 비상해야 한다는 교과서 같은 원칙을 드림웍스는 훌륭히 지켜냈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