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마이클 패트릭 킹 감독의 <섹스 앤 더 시티 2>새로운 볼거리를 위해 '시티' 버리자 정체성 사라져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 언니들이 돌아왔다. 2년 만의 귀환이다. 1998년 HBO에서 방영을 시작한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는 그야말로 '뜨거운 물건'이었다.

지금은 조금 촌스러운 감이 있지만, 칼럼니스트, 변호사, 큐레이터, PR 전문가 등 당시 가장 '핫'한 직업을 가진 네 명의 여성이, 세상에서 가장 '핫'한 도시 뉴욕에서, 귀가 데일 정도로 '핫'한 섹스에 대해 논한다.

시작은 섹스코미디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리즈는 스스로 진화했다. 어떻게 해야 멋진 남자 만나 화끈한 연애를 할지 골머리를 싸매던 주인공들은 여성의 자아에 대해, 일에 대해, 여성의 우정에 대해, 삶의 가치에 대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패션에 대한 가치 판단도 새로웠다.

물론 여전히 '된장녀 놀음'이라는 불명예를 완전히 씻어내진 못했지만, 구두와 가방을 '아가'들처럼 돌보고, 옷장 가득 값비싼 디자이너 드레스를 빽빽이 채우는 것이 '골빈 짓거리'가 아니라 '정당한 욕망의 충족'일 수 있다고 항변했다.

"내가 뼈 빠지게 벌어서 나를 꾸미기 위해 예쁜 구두 한 벌 산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 이 도도한 태도에 "열심히 벌어서 곱게 시집갈 준비나 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전 세계 싱글여성들은 "언니들, 믿씁니다!"를 외쳤다.

그렇게 2004년 6번째 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즌 7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고,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유야무야 사라졌다. (나를 비롯한) SATC 팬들은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케이블 TV의 랜덤 재방송과 DVD 무한반복재생으로 간간히 갈증을 달랬다.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책상 밑에 붙여놨다가, 생각날 때마다 떼어서 씹는 단물 빠진 껌조차도 감지덕지하는 아이의 마음이었다. 그런 시절에 2008년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이 '블링블링'하게 모습을 드러냈으니, 팬들의 열광이야 오죽했을까.

과연 50줄을 바라보는 '늙은 언니'들의 시리즈 후일담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라는 세간의 우려는 기우임이 밝혀졌다. 이 시리즈에 대한 팬(대부분 여성인)들의 우정은 네 주인공의 그것만큼이나 끈끈했다.

짧은 요약을 하자면, 극장판 1편에서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는 드디어 '천생연분'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과 결혼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눈부신 웨딩드레스 대신 편안한 빈티지 화이트 투피스를 입고,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마놀로 블라닉의 파란색 펌프를 받고, 시청에서 조용한 결혼식을 치른 지 2년이 흘렀다.

뉴욕의 싱글녀들은 이제 모두 '아줌마'가 됐다. 캐리는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 늘어져 TV 리모콘을 놓지 않는 '아저씨' 미스터 빅이 조금씩 불만스럽다.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은 꿈에 그리던 아기를 낳았지만, 그 아기 때문에 죽을 맛이다. 말도 안 듣고 24시간 울어 제끼는 '미운 두 살' 딸은 샬롯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행복'인 셈.

또한 20대의 건강하고 신선한 육체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아이들을 돌보는 '섹시한 보모'도 샬롯의 신경을 긁는다. "보모를 조심해, 주드 로도 넘어갔잖아." 친구들의 농담이 샬롯에겐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일찌감치 워킹맘이 된 미란다(신시아 닉슨)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새로운 보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스의 눈에 들기 위해 하루 24시간 '블랙베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무시 뿐이다. 세 명의 유부녀와 달리 1편에서 '조각복근 연하미남' 스미스(제이슨 루이드)의 청혼을 거절하고 다시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온 사만다(킴 캐트럴)는 요즘 '노화'라는 강적과 전투중이다. 벌써 폐경기에 접어들었지만, 온갖 자연추출 호르몬 약을 하루에 40알 씩 복용하며 떠나가는 젊음을 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녀들의 고민거리는 같은 처지 같은 또래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다. 판타지 속의 인물들이 현실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데서 오는, 동질감. SATC 시리즈가 가진 장점은 이것이다. 완벽주의자 샬롯이 결국 딸들에게 화를 내고 벽장 안에 들어가 펑펑 울어버릴 때, 같은 처지의 관객들은 "저게 내 모습"이라며 함께 울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원하는 남편, 원하는 아기, 원하던 직업, 원하던 싱글생활을 손에 넣었지만, 기대했던 것처럼 행복하지가 않다. 이번 영화의 주제를 캐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분명 원하는 걸 가졌는데, 다시 보니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잘못 본 걸까, 아니면 내가 가져서 변한 걸까?" 쯤 되겠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무리 없이 호감 충만한 상태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정말 문제라고 밖엔 표현이 안 된다) 그녀들이 '아부다비 공짜 럭셔리 관광'을 떠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호텔, 그림엽서를 똑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사막 절경, 대담하고 화려한 패션 등 볼거리가 많긴 한데, 보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아부다비로 떠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이 시리즈가 왜 '섹스 앤 더 시티'였는지 깨닫게 됐다. 그저 '홍보문구'가 아니라 시티 즉 뉴욕은 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었다. 아부다비가 뉴욕보다 트랜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연이 없다는 뜻이다.

'전원일기'가 양촌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듯,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을 벗어나자 관광엽서와 럭셔리호텔가이드 사이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방황과 고민 끝에 얻는 촌철살인은 사라지고, 어쭙잖은 훈계를 늘어놓는 꼴이 되어버렸다. 중동을 그저 '떠오르는 럭셔리 관광지'로만 취급하다보니, 그들의 문화마저도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코미디의 소재로 가공했다고는 하지만, 몇몇 신에선 문화에 대한 상대적인 존중이 사라진 오만불손한 태도가 튀어나온다. 특히 이해와 동정을 혼동하는 철없는 깨달음, 훈훈한 결론을 위해 성급히 화합을 논하는 게으른 엔딩이 심히 거슬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에이단(존 코벳)이다. 그가 누구던가. 전 세계 SATC 팬들의 '가장 옳은 남자(The Right Man)' 아니던가!

캐리의 얌체짓이야 천성이라 쳐도, 권태에 찌든 얼굴로 출장지에서 만난 옛 애인을 어찌 한 번 해보겠다고 느끼한 수작을 부리는 에이단이라니! 제작진은 단체로 개념을 도둑맞은 건가? 아무리 캐리와 빅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에이단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길 강력히 촉구한다.

여전히 'Fabulous'한 순간도 있고, 블링블링 사만다 언니도 건재하지만, 아부다비 에피소드 때문에 도저히 누군가에게 추천할 엄두가 안 난다. 이 사려깊고 유머러스하고 섹시한, 내 인생의 시리즈가 제발 길티플레저로 전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3편을 두고 보겠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