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의 진정성과 부성애의 부각,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KBS '1박2일'
TV 속 남자들이 '마음 놓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사내가 눈물을 보이면 쓰나!"라는 말을 듣고 자랐을 법한 40, 50대 남성들에게 눈물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적어도 TV 프로그램 속 남자들은 그 굴레에 자유롭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한다. 시청자들은 남자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보며 감동을 느낀다.

남자의 눈물, 진정성으로 해석되다

눈물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눈물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내포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지상파 방송의 각 프로그램들은 눈물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했다. 특히 남자들이 꾸려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속에는 눈물 코드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코너는 멤버인 김C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내용을 담으면서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3년을 같이 하면서 그만 둔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느냐"며 아쉬움의 눈물을 뚝뚝 떨구던 이수근을 시작으로 7명의 멤버들은 하염없이 울어댔다. '1박2일'은 이들의 눈물을 생략하는 대신 시청자들에게도 아쉬움의 이별을 경험하게 하며 공감대를 만들었다.

KBS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은 남자의 눈물을 본격화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아예 '남자의 눈물'편을 방송하면서 이경규 등 6명의 멤버들이 부모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에 지리산 등정, 마라톤 완주, 자격증 도전 등을 통해 6명의 남자들은 기쁨과 인내, 아쉬움의 눈물을 동시에 보여줬다.

'남자의 자격'은 남자들이 흘리는 눈물에 조금 더 깊이 있게 다가간 셈이다. MBC <무한도전>도 얼마 전 200회 특집 방송을 하면서 최고의 특집편으로 '봅슬레이 도전'을 꼽으며 도전에 성공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봅슬레이 경기 이후 7명 전원이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영상은 감동을 넘어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줬다.

<해피선데이>의 김영식 책임프로듀서(CP)는 "일부러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리얼버라이어티의 진정성이 보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각본에 짜여진 눈물이 아닌 리얼한 생활 속에서 나오는 진심 어린 눈물이라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가 발전하면서 남자들의 눈물이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해석되며 또다른 감동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김 CP는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감정적인 속내를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프로그램들은 계속 감정의 솔직한 표현들을 꾸밈없이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드라마도 이제 남자의 눈물이 흔한 소재가 됐다. 2003년 KBS <겨울연가>가 배용준의 눈물로 일본 여성들에게 대대적으로 어필했다면, 이제 그와 같은 눈물은 흔하디 흔한 볼거리가 됐다. KBS <수상한 삼형제>에서 온갖 시련을 겪었던 삼형제도 눈물이 뒤범벅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에 빠진 두 남자도 자주 울고 있다.

MBC '무한도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남자들의 우는 모습이 부각되는 건 그간 보이지 않았던 사회적 잣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본다. 대중문화는 사회의 트렌드 등을 반영하는데 TV가 먼저 그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한 눈물, 부성애를 그리다

남자들의 눈물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년들의 우는 모습이 여과 없이 TV에 등장하면서부터다. '남자의 자격'이 주목받은 이유도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등 40~50대 중년 연예인들의 솔직한 눈물 때문이었다. 이들의 눈물은 예능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 층인 10~20대 젊은 층에게 감동으로 다가갔으며, 30~50대 중장년층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해 친근하게 보여졌다. 즉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갖는 인생의 굴곡과 고민들이 고스란히 눈물이라는 코드에 담겨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김영철 분)는 큰 아들(송창의 분)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하자 함께 울었다.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눈물로 대신해 표현했다. <수상한 삼형제>에서도 강하기만 하던 아버지(박인환 분)의 눈물이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경찰에서 퇴직한 후 사업을 벌이려다 사기를 당하고, 가족들 몰래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전했다. MBC <민들레 가족>에서도 아버지의 눈물은 애잔하다. 드라마 속 아버지(유동근 분)는 눈물에 있어 인색하지 않다. 회사에서 진급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눈물을 지었고, 자식들에게 소홀했던 것에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KBS '수상한 삼형제'
정덕현 씨는 이를 두고 "부성애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그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그런 아버지들이 자식의 일에 꺼이꺼이 눈물을 짓자 더 찡한 감동이 느껴진다"며 "이젠 이런 달라진 모습들이 이상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도 남자들의 눈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들의 감성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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