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환도하는 피난민 애환 절절히 담아[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3년 유니버셜)대중문화에 이산과 고향 화두로 등장… 70년대 말까지 대유행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발표된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부산에서 환도하는 피난민들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아낸 불후의 명곡이다.

60년의 세월과 함께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되었듯 전쟁의 상흔이 진하게 밴 이 노래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문성재의 '부산갈매기'에게 권좌를 내어주었지만 한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노래로 군림했다.

호동아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는 당시 서정가요의 제왕이라 불렸던 남인수가 유니버셜 레코드를 통해 유성기음반으로 처음 발표했다.

전후 어수선한 분위기와 피폐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이 노래는 놀랍게도 10만장 넘는 판매기록을 세우며 남인수에게 제2기 전성기를 안겼다. 또한 80년대까지 이미자, 나훈아, 조영남, 심수봉, 김연자, 은방울자매, 윤수일, 들고양이들, 박일남, 손인호 등 무수한 가수들에 의해 무수하게 리메이크된 사실은 이 노래가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지난 명곡임을 증명한다.

사실 한국전쟁 시기에 발표된 노래들은 일종의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현인의 '전우여 잘자라'나 심연옥의 '아내의 노래'처럼 좌절과 절망보다는 전쟁의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역설적 카타르시스 말이다. 환도 열차를 타고 떠날 때 이별을 아쉬워하고 기적마저 슬퍼 운다는 슬픈 가사 내용과는 달리 이 노래는 경쾌하게 편곡된 멜로디로 오히려 희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정치성을 띤 트렌드에서 한 치 오차도 없는 이 노래는 당대 대중의 절대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70년대 말까지 이 노래는 기성세대를 넘어 학생층에서도 콩글리쉬 버전으로 노래가사를 바꿔 부를 정도로 대유행했다. 극에 달했던 당대 대중의 미국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이제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드러난 피난민들의 애절한 정서를 이해할 젊은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거장에서 헤어지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까지 칠 정도로 애절한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머나먼 외국으로 떠나는 국제공항에서도 이 노래에서 그리고 있는 애틋한 이별 모습은 구경조차 힘든 세상이 되었다.

당시 그리 멀게 느껴졌던 부산역도 KTX만 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왕복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닌가. 하지만 한국전쟁 시절엔 피란을 내려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부산역 주변에 몰리면서 무수한 생이별을 유발시켰다.

피난지 부산에서의 삶은 피폐하고 고달팠지만 그 시공간도 사람이 부대끼고 살았기에 사연 많은 로맨스는 어김없이 피어났다. 그러니 또다시 이별을 해야 되는 부산정거장이 애틋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고 다시는 못 보게 될까 걱정되는 마음에 기차의 기적소리도 목이 메어 우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피란민의 애환을 상징하는 부산 40계단을 배경으로 노래한 박재홍의 '경상도 아가씨'도 피란지의 로맨스가 실제로 상당했음을 증명해주는 노래다. 사실 전쟁 이전만해도 북쪽 끝 함경도와 남쪽 끝 경상도 남녀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해 일가를 이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거리상으로 이들이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민족상잔의 비극과 더불어 불가능해 보였던 한민족의 삶을 비빔밥처럼 섞어 놓았다.

영도다리 난간에서 흥남부두를 떠나온 금순이를 그리워하던 국제시장의 피난민 장사치가 경상도 아가씨와 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 부산 40계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의 고단함은 모두 고향을 떠나 올 수밖에 없었던 이산의 산물들이다. 대중문화에 이산과 고향을 커다란 화두로 등장시킨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전쟁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된 당대 대중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노래를 작곡한 박시춘은 최근 친일행적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등 숱한 명곡을 남겼다. 국민들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보릿고개의 고통 속에서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르며 울고 웃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