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나잇 & 데이> 톰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의 캐릭터 소화력이 돋보이는 액션 로맨스

모함에 빠진 최고 요원과 우연히 사건에 연루된 말괄량이 아가씨가 전 세계를 돌며 사건을 해결한다. <나잇 & 데이>의 얼개는 익숙하고 평이하다. 하지만 두 주연 배우의 이름을 겹쳐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혼자서도 블록버스터 한 편을 뚝딱 만들 수 있는 그들이 한 화면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비슷한 컨셉의 액션 로맨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역시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합성어) 커플 마케팅 덕을 톡톡히 봤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두 배우 사이에 피어난 현실의 로맨스(당시엔 불륜이었지만)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반면 <나잇 & 데이>에 대한 관심은 좀 더 영화적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조직에 쫓기는 스파이 '로이 밀러'가 톰 크루즈와 만나는 순간, 관객들은 단박에 <미션 임파서블>의 완벽한 스파이 '이단 헌트'를 떠올린다.

이미 <미녀 삼총사> 시리즈와 (비록 목소리 출연이지만) <슈렉> 시리즈를 통해 액션 히로인을 연기해 온 카메론 디아즈 역시 총알이 빗발치는 액션 현장을 질주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한 마디로,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100%인 상황에서 관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가 제공하는 화끈한 볼거리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캔자스 위치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준(카메론 디아즈)은 운명처럼 근사한 남자 로이(톰 크루즈)와 만나게 된다. 가뜩이나 여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한 준은 이 우연한 만남이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로 이어지길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준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악몽 같은 현실이다. 사실 로이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FBI 특수요원이었고, 준은 불행히도 그의 싸움에 말려들게 된 것. 로이와 공범으로 오해받은 준은 어쩔 수없이 로이의 위험천만한 세계일주에 동행하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두 남녀 사이엔 스파크가 튄다.

표면상으로는 가공할 만한 에너지원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 사이먼(폴 다노)를 지키는 로이의 활약이 줄거리지만, <나잇 & 데이>는 <본>시리즈의 코미디 버전이라기보다, <비포 선라이즈>와 한 핏줄 영화에 가깝다. 낯선 장소에서 만난 두 남녀가 첫 눈에 호감을 느끼고, 환상적인(?) 관광지를 돌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핵심이다.

다만 <비포 선라이즈>에선 대화로 가까워졌다면, <나잇 & 데이>는 총질로 소통한다는 게 차이일 뿐. 때문에 <본> 시리즈의 치밀한 머리싸움과 리얼한 액션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나잇 & 데이>는 영리하게도, 관객의 이런 기대를 비틀어 웃음을 유발한다.

로이와 칵테일을 마시며 실컷 수다를 떨던 준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로이가 비행기 안의 요원들을 상대하는 첫 액션 신에서 자신만만하게 "이 영화는 <본> 시리즈가 아님"을 천명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로이가 준에게 초강력 수면제를 먹이거나, 기절시키는 방식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것은 그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잇 & 데이>는 최근 '리얼 액션'에 목 맨 할리우드 스파이 영화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주인공들은 털 끝 하나 안 다치는 '고전적인 허풍 액션'을 통해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만약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아니었다면, 익숙한 'B급 액션'으로 전락했겠지만 두 배우가 전작을 통해 쌓아놓은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영화적 재미가 두 배로 증폭된다. 예를 들어 FBI에게 잡혀가는 준을 로이가 구출하는 카 체이싱 액션 신은 '액션'이라기보다는 '코미디'에 아깝다.

질주하는 차 지붕에 매달려 묘기대행진을 벌이는 로이의 모습에서 <미션 임파서블>의 'TGV 지붕 액션' 신이 슬며시 겹쳐지기 때문이다. 킬러에게 대뜸 주먹을 날리고, 처음 만져본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준에게 로이가 "아무래도 타고 난 것 같다"며 감탄하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이유도 카메론 디아즈의 <미녀 삼총사> 전력 덕이다.

두 배우가 그간 다져놓은 액션 경험 역시 <나잇 & 데이>의 중요한 밑천이다. <미션 임파서블> 출연 당시 절벽에 매달리는 신을 대역 없이 찍는 바람에 제작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톰 크루즈는 <나잇 & 데이>에서도 대역 없는 액션으로 화끈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궁지에 몰린 로이가 건물 옥상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장면(<본 얼티메이텀>의 엔딩 신을 대놓고 패러디한 것 같은)에서 톰 크루즈는 30미터 높이의 건물에서 안전장비 없이 점프를 감행했고, 스페인 황소 떼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장면 역시 대역 없이 직접 촬영했다. 카메론 디아즈도 질세라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전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워낙 컴퓨터 그래픽이 만연해 있어서, 관객들이 두 배우의 실제 액션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믿을까봐 걱정"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하듯 <나잇 & 데이>도 다소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무책임한 결론이라고 핀잔 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로이의 숨겨진 성은 '나잇-기사(Knight)'다. 영화의 제목 '나잇 & 데이'는 이 영화가 말괄량이 공주와 매력적인 기사가 주인공인 '액션 동화'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영화의 목표가 관객들이 팝콘을 산 사실을 잊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 비운 팝콘 통을 흔들며 웃으며 극장 문을 나서는 것이라면,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더불어 21세기 들어 과묵한 인상파 요원과 덩달아 심각해진 여인들만 보다 보니, 말 많고, 잘 웃고, 뻥도 센 '낭만 히어로'의 등장이 반갑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