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나잇 & 데이> 톰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의 캐릭터 소화력이 돋보이는 액션 로맨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혼자서도 블록버스터 한 편을 뚝딱 만들 수 있는 그들이 한 화면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비슷한 컨셉의 액션 로맨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역시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합성어) 커플 마케팅 덕을 톡톡히 봤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두 배우 사이에 피어난 현실의 로맨스(당시엔 불륜이었지만)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반면 <나잇 & 데이>에 대한 관심은 좀 더 영화적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조직에 쫓기는 스파이 '로이 밀러'가 톰 크루즈와 만나는 순간, 관객들은 단박에 <미션 임파서블>의 완벽한 스파이 '이단 헌트'를 떠올린다.
이미 <미녀 삼총사> 시리즈와 (비록 목소리 출연이지만) <슈렉> 시리즈를 통해 액션 히로인을 연기해 온 카메론 디아즈 역시 총알이 빗발치는 액션 현장을 질주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한 마디로,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100%인 상황에서 관객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가 제공하는 화끈한 볼거리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준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악몽 같은 현실이다. 사실 로이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FBI 특수요원이었고, 준은 불행히도 그의 싸움에 말려들게 된 것. 로이와 공범으로 오해받은 준은 어쩔 수없이 로이의 위험천만한 세계일주에 동행하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두 남녀 사이엔 스파크가 튄다.
표면상으로는 가공할 만한 에너지원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 사이먼(폴 다노)를 지키는 로이의 활약이 줄거리지만, <나잇 & 데이>는 <본>시리즈의 코미디 버전이라기보다, <비포 선라이즈>와 한 핏줄 영화에 가깝다. 낯선 장소에서 만난 두 남녀가 첫 눈에 호감을 느끼고, 환상적인(?) 관광지를 돌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핵심이다.
다만 <비포 선라이즈>에선 대화로 가까워졌다면, <나잇 & 데이>는 총질로 소통한다는 게 차이일 뿐. 때문에 <본> 시리즈의 치밀한 머리싸움과 리얼한 액션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나잇 & 데이>는 영리하게도, 관객의 이런 기대를 비틀어 웃음을 유발한다.
로이와 칵테일을 마시며 실컷 수다를 떨던 준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로이가 비행기 안의 요원들을 상대하는 첫 액션 신에서 자신만만하게 "이 영화는 <본> 시리즈가 아님"을 천명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로이가 준에게 초강력 수면제를 먹이거나, 기절시키는 방식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것은 그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아니었다면, 익숙한 'B급 액션'으로 전락했겠지만 두 배우가 전작을 통해 쌓아놓은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영화적 재미가 두 배로 증폭된다. 예를 들어 FBI에게 잡혀가는 준을 로이가 구출하는 카 체이싱 액션 신은 '액션'이라기보다는 '코미디'에 아깝다.
질주하는 차 지붕에 매달려 묘기대행진을 벌이는 로이의 모습에서 <미션 임파서블>의 'TGV 지붕 액션' 신이 슬며시 겹쳐지기 때문이다. 킬러에게 대뜸 주먹을 날리고, 처음 만져본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준에게 로이가 "아무래도 타고 난 것 같다"며 감탄하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이유도 카메론 디아즈의 <미녀 삼총사> 전력 덕이다.
두 배우가 그간 다져놓은 액션 경험 역시 <나잇 & 데이>의 중요한 밑천이다. <미션 임파서블> 출연 당시 절벽에 매달리는 신을 대역 없이 찍는 바람에 제작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톰 크루즈는 <나잇 & 데이>에서도 대역 없는 액션으로 화끈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궁지에 몰린 로이가 건물 옥상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장면(<본 얼티메이텀>의 엔딩 신을 대놓고 패러디한 것 같은)에서 톰 크루즈는 30미터 높이의 건물에서 안전장비 없이 점프를 감행했고, 스페인 황소 떼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장면 역시 대역 없이 직접 촬영했다. 카메론 디아즈도 질세라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전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워낙 컴퓨터 그래픽이 만연해 있어서, 관객들이 두 배우의 실제 액션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믿을까봐 걱정"이라고 한탄할 정도다.
이 영화의 목표가 관객들이 팝콘을 산 사실을 잊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 비운 팝콘 통을 흔들며 웃으며 극장 문을 나서는 것이라면,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더불어 21세기 들어 과묵한 인상파 요원과 덩달아 심각해진 여인들만 보다 보니, 말 많고, 잘 웃고, 뻥도 센 '낭만 히어로'의 등장이 반갑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