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주현미·박미경 등 스타탄생[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제 11회 MBC강변가요제 (1979년 지구레코드) 下프로가수 지망생들의 각축장 변질… 90년대 들어 내리막길

당시 대학가요제의 양대 산맥이었던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예선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뛰어난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더 클래식의 리더 김광진은 양대 가요제에서 1차 예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을 고배를 들었을 정도다.

1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강변가요제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1980년 5월 온 나라를 소용돌이로 몰고 간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생성된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2회 대회가 무산되었던 것.

매일 도심을 강타하는 시위와 검문검색이 계속된 우울한 정국에 마음이 답답했던 대중은 뭔가 시원한 청량제 같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1981년에 열린 2회 대회의 대상은 '별이여 사랑이여'를 부른 안양공전 남성트리오 사랑의 하모니가 차지했다. 이 노래는 1회 대회 대상 곡 '기도'에 이어 기성 가요계를 연속해 강타했다.

대한민국 대표 여름 음악축제로 떠오른 강변가요제는 이후 무수한 히트곡을 양산해 냈다. 3회 때는 강릉대와 강원대가 주축이 된 5인조 록밴드 천국의 이방인이 대상 곡 '태양의 예언'으로, 4회는 중앙대 불문과 손현희가 '이름 없는 새'로 여름 시즌을 강타하며 강변가요제 대상은 곧 히트곡이란 등식을 형성시켰다. 5회 때는 인천전문대 혼성듀엣 4막5장의 이선희가 'J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국민가수로 떠오르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강변가요제는 가요계의 확실한 신인가수 등용문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를 입증하듯 1985년 6회 대회는 대상을 수상한 건국대 혼성듀엣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 뿐만 아니라 금상을 수상한 동의대 혼성보컬그룹 어우라기의 '밤에 피는 장미', 은상을 받은 외국어대 권진원의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와 장려상을 수상한 서울예전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까지 총 4곡이 가요차트에 등극하는 절정기를 구가했다. 박미경은 90년대에 '이브의 경고'로 정상에 올랐던 바로 그 댄싱 퀸이다.

7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상을 받은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금상과 가창상을 수상한 도시의 그림자의 '이 어둠의 이 슬픔', 동상을 수상한 바다새의 '바다새'가 동시에 등장했다. 87년 8회 대회는 헤비메탈 록밴드 티삼스가 탁월한 연주력과 가창력을 뽐낸 '매일 매일 기다려'로 동상을 수상했다.

88년 9회 대회도 막강한 가수들을 배출했다. 꺽다리가수 이상은은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고 이상우도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수상하며 인기가수로 도약했다. 89년 대회 때 은상을 받은 '귀로'의 박선주 또한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탁월한 뮤지션이다.

강변가요제 출신인 유명 가수들을 더 소개하겠다. 트로트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주현미는 1981년 2회 대회 때 장려상을 받은 중앙대 약대 록밴드 인삼뿌리 2기의 리드싱어 출신이다. 그녀가 여성 로커 출신이란 점은 흥미롭다. 99년 20회 대회 때 '내 안에 넌'으로 대상을 받은 가수는 신세대 트로트가수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장윤정이다. 그리고 영화배우 한석규는 84년 대회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보컬그룹 덧마루의 멤버로 본선에 올랐고, 개그맨 송은이는 91년, 이수근도 96년 강변가요제 출신이다.

당시에는 '대학가요제에서 나가려고 대학에 갔다'고 말하는 학생이 무수했다. 노래깨나 한다고 생각하면 대학가요제에 한 번 나가볼 '음모'를 꾸미는 것은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있을까. 22년간 수많은 히트가요를 양산시키며 대표적인 여름 음악축제로 각광받았던 강변가요제는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때 가수 등용문으로 각광받았던 강변가요제는 순수했던 대학가요제 본연의 모습을 잃고 프로가수 지망생들의 각축장으로 변질되었던 것. 그래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9년부터 대학생에게만 주어지던 참가 자격을 학력과 나이 제한을 없애고 만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혔지만 연예기획사 중심으로 음악 패러다임이 변화된 가요계 추세에 밀려 2년 후 막을 내렸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