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즐겨라' 등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웃음과 감동 숙성

MBC <무한도전>
TV 예능 프로그램들이 더 과감해졌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하나의 미션 수행에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전 출연진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동안 지켜보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지상파 방송에서 전파를 타는 대표 예능 프로그램은 인내의 쓴 맛을 다시며 달콤한 결과를 내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간 커지고 용감해진 예능 프로그램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겁게 사는 비결을 담는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기존 코너였던 '단비'의 후속으로 '오늘을 즐겨라'를 시작한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모습을 1년 동안 담아내는 코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코너 '오늘을 즐겨라'
1년을 목표로 <오늘을 즐겨라!>라는 책을 완성하면 된다. 예능 프로그램 사상 1년이라는 기간을 대놓고 유예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예능계에서 1년의 장기 계획을 두고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것부터가 파격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피드백이 가장 빠른 장르로, 개편 때마다 쓸모 없는 부분들이 잘려나가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오늘을 즐겨라'는 1년간 보장기간을 먼저 가졌다는 것에서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첫 선을 보이는 프로그램이 장기 프로젝트로 겁 없는 도전을 했다.

MBC <무한도전>은 지난 2006년부터 무려 4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한도전 달력 만들기', '벼농사 특집', '봅슬레이 도전', '듀엣 가요제' 등 1년을 내다보는 장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 '벼농사 특집' 편은 예능계에 충격을 가져다 줄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벼를 심을 논을 만들고, 모를 심고, 벼를 베기까지 전 과정을 매주 한 번씩 한 달 동안 방영했다. 장기 프로젝트는 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번 방영하기 때문에 고정 시청자가 있는 <무한도전>조차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벼농사 특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의 장기 프로젝트가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고 방송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오늘을 즐겨라'는 1년이라는 기간을 미리 예약해 두고 리얼 버라이어티를 펼친다는 점에 위험요소도 있지만,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1년 후 책이 출판된 이후에는 그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한다는 목표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과연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1년의 장기간 코너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
지난 1년간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오빠밴드',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 '우리 아버지', '단비' 등 많은 코너들을 시도했지만 단명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아예 1년 장기 프로젝트를 내놓고 변화보다는 '인내'로서 웃음을 끌어내겠다는 데 도전하기로 한 셈이다. 신현준, 정준호, 공형진, 김현철, 정형돈, 서지석, 승리 등 7명의 MC들이 무더기로 출연해 1년간 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다.

'오늘을 즐겨라'의 권석PD는 "제목처럼 오늘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출연자들과 같이 찾아보려고 한다. 드라마처럼 매주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하겠다"며 "거기에 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보인다면 더 흡인력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청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체험식 리얼'의 절정

마라톤, 지리산 등반, 자격증 도전, 밴드 결성, 합창단 모집. 지난 1년 반 동안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이 도전한 아이템들이다. 그 중 자격증 도전과 직장인 아마추어 밴드, 합창대회 출전 등은 오래 전부터 기획해 온 장기 프로젝트. 최근 방영된 방송 분량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직장인 밴드와 합창단 모집 등이 한꺼번에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밴드결성은 지난해 중순부터 이뤄온 프로젝트다. 지난 7월 11일 '남자의 자격' 팀은 '제1회 컴퍼니 밴드 페스티벌'에서 동상을 받으며 1년간 이어왔던 밴드 연습에 행복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밴드 연습과 함께 합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합창단을 모집하는 과정도 동시에 진행됐다.

'남자의 자격'은 9월 거제도에서 열리는 합창대회 일정에 맞춰 연습의 전 과정을 담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결국 제작진은 밴드 경연대회와 합창대회 참가에 대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과부하가 걸릴 정도다.

'남자의 자격'뿐만이 아니다. <무한도전>도 최근 '프로레슬링 도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기에 방송에선 '아이돌 특집' 편을 방영하며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MC들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19일에는 프로레슬링 동호회 'WM7'과 경기를 치른다.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이 주말 예능에서 큰 인기를 얻는 프로그램인 만큼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의 판도를 가늠케 한다. 즉 장기 프로젝트가 리얼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생존 방식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들은 장기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이는 것일까?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장기 프로젝트는 힘든 부분이 많다. 촬영의 분량도 어마어마해서 편집할 때 고생을 많이 한다"며 "하지만 '체험식 리얼'이 주는, 특히 40~50대 남자들이 펼치는 체험은 시청자와의 공감대를 무한하게 해준다. 드라마의 스토리와 다큐의 분석이 동시에 그려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감동이라는 코드가 스며 나온다"고 설명했다.

진정성의 강도가 단기 미션을 수행했을 때보다 장기적 미션이었을 때 더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 차별적 아이템의 발상은 극적인 재미를 배가한다. 현재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재에 있어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보인 우려먹기식 아이템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잃게 하는 요인이다.

'1박2일'이 남극행 프로젝트를 감행하려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박2일'은 그간 국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그러나 항상 비슷한 콘셉트의 내용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부족했다.

한 방송관계자는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출력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고 있다"며 "체험식 리얼 버라이어티들은 현재 절정의 순간에 올라와 있다.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