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은 설움 달래준 민족가요[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백난아 '찔레꽃' (1942년 태평레코드)제주 출신 14살 때 태평 레코드 전속 가수로 본격 활동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의 항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날이다. 우리가 그날을 광복절이라 명하고 국경일로 정한 것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3년 후 독립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광복절은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광명을 되찾은 의미심장한 날이다. 국권을 되찾은 대한민국은 65년의 장구한 세월이 지난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일제 강점기 동안 설움과 압박에 시달린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광복의 벅찬 기쁨을 노래한 대중가요들은 무수하다. 그 중 해방을 3년 앞둔 1942년 제주 출신가수 백난아가 노래한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은 단순한 히트곡을 넘어 온 국민의 가슴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준 민족가요로 그 역할을 다한 불후의 명곡이다.

특히나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사는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세월을 초월해 삶이 고단해 마음이 아플 때나 고향 생각에 서러움이 북받칠 때마다 복잡한 심사를 어루만져준 어머니의 다정한 약손 같은 만병치유의 노래였다.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찔레꽃은 좀찔레, 털찔레, 제주찔레, 국경찔레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니까 매년 5월이면 산기슭이나 볕 잘 드는 냇가 주변의 골짜기를 하얗고 연붉은 빛깔로 물들이는 정겨운 우리나라 토종 봄꽃이다. 꽃잎이 거꾸로 된 달걀모양인 이 꽃은 대부분 흰색이지만 불그레한 종도 있다. 흔히 찔레나무라 불리는 국경찔레다.

예나 지금이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실향민들에게 '고향'이라는 단어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탄이다. 누구에게나 삶이 팍팍할수록 어린 시절 천둥강아지처럼 뛰어놀던 고향의 모든 것들은 온통 그리운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찔레꽃은 과거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고향의 개념이 희박해진 대도시에 집중된 생활환경 탓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란 격변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40~50년대 대중에게 주변에 널려있던 찔레꽃의 이미지는 각별했다.

그래서 늘 가난과 서러움, 눈물과 시련으로 가득했던 공간으로 봉인된 고향의 기억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찔레꽃은 1957년 동명의 영화제작으로 이어질 만큼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시킨 정겨운 소재였다.

백난아가 노래한 '찔레꽃'은 어렴풋한 기억의 저편에서 못 견디게 그리운 고향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끄집어내 준 애틋한 가사와 멜로디로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그녀는 1927년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에서 방어를 낚는 어부 오남보씨의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인 3살 때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 그녀는 9살 때 함경북도 청진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백난아는 1940년 보통학교 6학년 때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태평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가요콩쿠르에 나가 당당히 2위에 입상했다. 노래에 재능을 보인 백난아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노래 콩쿠르에 나가 1위에 오르며 14살의 어린 나이에 태평양레코드 전속가수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백난아의 본명은 오금숙이다. 예명은 같은 소속사인 태평레코드사의 선배 백년설이 자신의 예명에서 성을 따 지어준 것으로 전해진다. 백난아는 처녀림 작사, 무적인 작곡의 '오동동 극단'과 '갈매기 쌍쌍' 두 곡을 발표하면 정식데뷔를 했다.

해방 전에 발표한 그녀의 노래는 '아리랑 랑랑', '황하다방', '망향초 사랑', '무명초 항구', '북청 물장수', '간도선' '직녀성' 등 무수하다. 그중 그동안 데뷔곡으로 알려졌던 1940년 12월에 발표한 '망향초 사랑'은 '찔레꽃'과 더불어 백난아 특유의 애수 어린 절창이 담겨진 대표곡이다.

본격 활동을 시작한 백난아는 중국, 일본 가수들과 함께 6개월 동안 일본 순회공연을 다녔을 정도로 조선의 인기가수로 주목받았다. 그녀가 소속된 태평레코드는 백년설, 진방남, 박단마 등이 전속가수로 활동하면서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