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조용남' '한국의 티나 터너'로 부활[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임희숙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1984년 신세계레코드)영혼 담긴 목소리 삶의 향기 솔솔 빅히트… 70~80년대 전성기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1순위 미덕은 가창력이라는 건 불변의 진리다.

아이돌과 걸 그룹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요즘 대중가요계는 가창력보다 섹시한 몸과 춤 그리고 파격적인 의상이 가창력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다.

그 결과, 히트곡은 넘쳐나지만 하루 만에 인기차트에서 사라지는 곡이 생겨날 정도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공감하는 명곡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임희숙의 전성기 시절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감싸 안는 가창력이 무엇인지를 입증해준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짙은 영혼의 울림을 담아냈던 그녀의 노래들은 솔, 재즈, 가스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절절한 호소력을 담아내 70~80년대 대중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짙은 허스키에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흑인 재즈 가수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압권이었다. 솔의 대부 박인수도 훌륭했지만 '솔(soul)'이라는 음악장르는 짙고 감미로운 흑인의 목소리에만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담겨있는 그녀의 목소리와도 찰떡궁합 같았고 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여가수의 인생치곤 힘겨운 고난이 많았던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러 차례 활동을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더욱 절절한 필이 담긴 그녀의 노래에는 귀와 눈을 자극하기보다는 가슴을 파고드는 삶의 절절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대중이 기억하는 그녀의 히트곡으로는 김희갑곡 '진정 난 몰랐네', '모래 위를 맨발로', 박춘석곡 '기다려야 할 사람', 이장희곡 '믿어도 되나요' 그리고 백창우곡 '나 하나의 사랑의 가고' 등이 있다. 하나같이 지금도 중장년층들의 사랑을 받는 불멸의 히트 넘버이다.

그녀는 독특한 소울 창법과 남자 같은 화통한 성격 때문에 같은 해에 데뷔한 조영남과 곧잘 비교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별명이 '여자 조영남'. 외모를 비하했던 별명이었던지라 그녀로서는 달갑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증폭되었던 증거이기도 했다.

그녀는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야기된 가요정화운동의 일환으로 펼쳐진 대마초 파동에도 휘말렸었다. 활동금지, 이혼, 음독자살 시도 등 고난이 한꺼번에 밀려든 당시는 가혹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알게 된 것은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음악적으로도 사랑이 아닌 삶을 노래하도록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해금이 되자 재기곡 '돌아와 주오'를 발표했지만 예전과 같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리하게 출연한 1981년 10월의 TV 공개 방송 '명랑 운동회'는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었다. 과격한 게임으로 허리를 다치는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던 것.

척추 디스크는 이후 3년 4개월 동안 활동중단이라는 좌절의 시간을 또 다시 안겨 주었다. 1984년 5월, 몸을 추스르고 재기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발표했다. 처음 작사자 지명길을 통해 노래가사를 읽어 본 임희숙은 '삶의 무게여'라는 부분에 그만 반해버렸다.

작곡가는 시인이자 노래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고 80년대에는 '제2의 김민기'라고도 불렸던 백창우다. 이 노래는 27살의 청년 백창우가 서적 외판원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에 만든 노래다. 사실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쓰레기통에 버려진 악보를 지명길이 찾아내 명곡으로 부활시킨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시인의 고단한 삶과 그녀의 아픈 과거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에 그 어느 때보다 호소력을 더한 가창력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많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다. 또한 임희숙에게는 길고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부활의 노래가 되었다. 강렬하면서도 정적인 목소리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삶의 향내가 솔솔 배여 나왔다.

빅히트가 터진 이 노래는 그녀를 '한국의 티나 터너'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고 지난 2003년 12월, 시전문 문예계간지 '시인세계'가 국내 유명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한 애창곡 여론조사에서 8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