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부자 향한 <자이언트>의 질주성공신화의 허구성, "부자되세요" 부추기는 한국의 현재성 비춰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살아가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덕담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이 말은 여기저기서 손쉽게 들을 수는 있지만 아직도 차마 내 입밖으로는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는 덕담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며 사람 좋게 웃는 이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 말은 마치 '부자 되지 않으면 대접받기 힘든 세상이니 우리 모두 열심히 벌고 또 벌자' 혹은 '인생의 최고 행복은 곧 부자 되기니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하든 그저 돈이나 많이 벌라'라는 뉘앙스를 깔고 있는 듯했다.

'부자 되세요'는 '건강하세요'나 '안녕하세요' 같은 관습적인 인사말과 달리 너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소망을 담고 있다. 그 지나친 솔직함이 듣는 이의 폐부를 찌른다. '부자 되세요'는 부자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마음 놓고 행복해지기 힘든 현실을, 우리는 지금 현재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환기시킨다.

드라마 <자이언트>는 이 무시무시한 한국적 덕담의 문화적 기원을 밝혀주는 것이 아닐까. <자이언트>를 보는 내내 시청자의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부자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가 아니라 '가난하면 얼마나 불행한가'를 보여주는 데서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는 어떤 고전의 영웅 신화보다도 위력적인, '강남 불패 신화'다.

<자이언트>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이강모(이범수)의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가 겨냥하고 있는 타깃을 정확히 보여준다. "강남. 한강의 남쪽. 실개천이 흐르고 송아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이 강남 땅에서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개발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불과 40년 만에 강남의 땅값은 수십만 배나 올랐다. 이 황금의 땅을 둘러싼 싸움은 그 어떠한 전쟁보다도 비정하고 처절했다."

드라마 <자이언트>는 가난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한 가족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그리며 우리 사회가 왜 이토록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보여준다. 이강모는 부모를 잃고 형제자매까지 행방불명된 상태에서 간난신고 끝에 자수성가하여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까지 받는 CEO로 성장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다. "튼튼하고 좋은 건물을 지으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진심은 더할 나위 없이 진실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런 '비결'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떨쳐내기 어렵다. 정말 그렇게 착한 영웅은 가능한 걸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으면서 '부자 되는 길'이 정말 가능한 걸까.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꽤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의사, 변호사는 물론 간호사, 교사, 과학자, 소방수, 건축가, 영화감독, 작가, 피아니스트, 군인, 가수, 탤런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다양한 직업이 주는 가상의 만족감을 상상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꿈을 바꿔치기하며 좋아했다. 하지만 요새 아이들의 대답은 훨씬 천편일률적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대답이 워낙 급증하긴 했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대답의 폭발적인 증가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이들의 보편적인 꿈이 될 만큼, 그러니까 어떤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라 '돈이 많은 상태' 자체가 아이들의 가장 확실한 비전이 될 만큼, 우리 사회는 어렸을 적부터 돈의 가치를 뼛속 깊이 세뇌시키는 것인가.

그럼 '돈은 벌어서 뭘 할 거니?'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한참 후에 터져 나오는 대답은 결국 이런 것들이다. 약해 보이기 싫어서. 서러운 꼴 당하기 싫어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눈치보고 주눅 들기 싫어서. 그러니까 아이들은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비전은 없는 채로 '일단 돈은 있고 봐야 한다'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욕망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은 돈의 중요성을 일찍 배우지만 정작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은 '설움 당하지 않기', '만만해 보이지 않기'의 달인이 되어가지만, 어떤 순간에 돈이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지, 돈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지를 배울 기회는 없다.

어른들은 그런 '쓸데없는 것'은 좀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우리 어린 시절에는 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돈 없으면 어딜 가도 무시 당한단다'는 이야기, 즉 '돈이 없다는 것은 곧 사회적 죽음'이라는 식의 생존 이데올로기만 학습시킨다.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가장 '리얼'하게 다가오는 것은 부정부패에 연루되어야만 손쉽게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이 사회의 추악함을 해부하는 장면들이었다.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이강모가 멋있지만 이강모 가족을 평생 괴롭히는 조필연(정보석)의 탐욕과 야망이야말로 더욱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투기나 사기가 아니라 그저 성실한 노동만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이 땅의 수많은 가장들의 어깨를 쓰러뜨리는 사람들의 야욕이야말로 '가감 없는' 현실의 묘사처럼 보이는 것이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이 되어버린 이유는 부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사람 대접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속물적 덕담 뒤에는 '부자가 아니기에 무시당한' 사람들의 뼈 아픈 회한이 서려 있는 것이다. 드라마 <자이언트>의 숨은 재미는'강남 불패 신화'의 해부가 아니라 이강모의 어린 시절 고생담에 얽힌'가난했던 옛 시절'의 향수다. 참 이상하다.

'부자의 추억'보다는 '빈자의 추억'이 훨씬 아름답고 레퍼토리도 무궁무진하다.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가난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가난이 만들어낸 풍부한 이야깃거리에 비하면 부자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호소력이 없는 것 같다. 우리를 감동시킨 가난한 이들은 많았지만 우리를 감동시킨 부자들의 이야기는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자이언트>는 제목처럼 '돈' 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개인의 슬픔을 이야기의 밑바닥에 깔고 있다. 자수성가의 신화, 강남불패의 신화에 목 매는 한국인들은 '자기계발'이라는 또 다른 신화적 허구 속에서 저마다의 성공신화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10대에는 '성적'을 위해, 20대에는 '스펙'을 위해, 30대에는 '재테크'를 위해, 40대 이후에는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관리 및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의 종착역은 결국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이지만 부자 되기 위해 오늘도 뛰고 또 뛰는 한국인들의 '현재'는 얼마나 행복해진 것일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