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진 새바람 기대… 시청률, 제작환경 과제

KBS <드라마스페셜 노희경-빨강사탕>
"넌 내 손에 죽었어!" 늘어질 대로 늘어진 러닝셔츠를 입고 손에 권총을 든 노인이 한 밤의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도망치는 젊은 범인을 쫓는 노인 덕수(양택조 분). 2층 높이의 베란다도 단숨에 뛰어내렸다.

연쇄살인범과 마주하자 덕수의 뒤 쪽에서 트럭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평달(김진태 분)이 트럭을 몰고 오고 있다. 그는 동네 건달들과 옥신각신하다 칼로 배를 찔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연쇄살인범을 향해 돌진한다.

KBS <드라마스페셜>에서 방영된 '양택조와 김진태의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의 한 장면이다. 다소 엉성한 스토리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두 배우의 노익장이 과시된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 어떤 드라마에서 60~70세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겠는가. 두 사람은 30년 만에 부활한 연쇄살인범을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중책을 맡았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 노인들이 주인공을 활약하는 작품이 있을까? 없다면 왜 없는 걸까?

단막극의 이유 있는 부활과 과제

KBS <드라마스페셜-아리봉 라스트 카우보이>
KBS는 올 5월부터 <드라마스페셜>을 방영하며 단막극의 부활을 알렸다. 지난 2008년 <드라마시티>라는 이름으로 전파를 탔던 단막극은 시청률의 부진, 예산의 부족 등의 이유로 6년간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타다 사라졌다. 그로부터 2년 만에 노희경 작가의 이름을 단 '노희경의 빨강 사탕'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2년 전 <드라마시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막극이 특성화됐다는 것. KBS는 이를 두고 '브랜드화 된 드라마'라고 말했다.

<드라마스페셜>은 '노희경의 빨강 사탕'을 시작으로, '박연선의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이재상의 끝내주는 커피', '이선균의 조금 야한 우리 연애' 등 작가, 배우, PD의 이름을 수식어처럼 쓰며 단막극의 변화된 스타일을 내세웠다. <드라마스페셜> 제작진은 참신함이라는 모토 아래 "만드는 사람의 이름을 건다는 건 작품의 진정성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전문가 평가단'과 '네티즌 평가단'이 드라마를 본 후 점수를 책정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특히 내부평가단과 외부평가단 8명의 전문가가 20자평과 함께 평점을 집계했다. 식상함을 벗어난 신선한 작품을 위해 새롭게 시도되는 방식이다. 단순히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시청자와 교감하고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그 동안 출생의 비밀, 복수, 삼각관계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스토리를 벗어난 신선한 줄거리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양택조와 김진태가 열연한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는 노인들의 느와르 장르를 개척하며 그 의미를 더했다. 또한 몇몇 스타급 배우들에 의존적인 드라마 제작 환경도 참신한 신인배우나 탄탄한 연기력의 중견배우들을 기용함으로써 드라마의 완성도에 더욱 기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두 중견 배우의 등장만으로 단막극의 신선한 도전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막극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모습이기도 하다"며 "단막극이 오래갈 수 있는 것도 차별화된 전략 하에 완성도 있는 작품성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CP와 프로듀서, 작가 간의 유기적인 결속력이 더욱 강조된 시스템을 낳았다. 이런 시스템이 드라마 발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MBC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
그러나 8월 28일 방송된 '윤성식의 여름이야기'는 3%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신인 작가와 젊은 프로듀서의 발굴, 신인 배우의 등용문 역할을 담당해야 할 단막극의 막중한 의무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스페셜>이 시작될 즈음에 TV드라마PD협회(회장 이은규)는 MBC와 SBS의 단막극 부활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TV드라마PD협회는 "드라마의 공익성은 소재와 표현의 다양성을 통해 담보된다. 드라마를 시청률과 상업성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면 단막극은 즉각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막장 드라마의 범람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즉각 단막극 부활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며 단막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KBS드라마국의 한 PD는 "단막극이 활성화돼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차별화된 콘텐츠의 계속적인 발전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면서도 "그러나 시청률의 저조와 열악한 제작환경은 단막극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지도 같이 고민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전략의 단막극 시대 준비

MBC도 9월 중 주말 시간대에 단막극을 편성할 예정이다. 이미 6편의 단막극이 사전제작 형식으로 촬영돼 방영될 방침이다. 그러나 MBC는 장기적인 단막극의 편성이 아닌 한 달 정도의 예비편성이라는 점을 못박았다. KBS의 <드라마스페셜>이 오는 11월까지 6개월간 24편의 단막극을 방영한다는 점에서 MBC와 차이를 보인다.

그간 한국방송작가협회와 드라마PD협회 등은 단막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활을 외쳐왔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수익성 문제에 부딪히면서 제작을 기피하는 현상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SBS가 단막극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인 것도 이해가 간다. 시청률이 낮으니 광고 수익이 적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뻔히 보이는 손실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제작에 뛰어들 이유가 없는 셈이다. SBS는 추석 특집 등 일회성이 짙은 단막극은 제작하되 본격적인 단막극 부활의 시기는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MBC가 단막극에 대한 제작에 돌입한 건 정부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 초 우수한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을 활성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에서 기획, 창작되는 방송콘텐츠에 대해 약 60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다. 전년에 비해 60%가량 증가한 규모. 특히 지원 분야 중 드라마부문의 미니시리즈, 다큐멘터리 등 장르별로 지원이 확대된 것은 물론 단막극에 대한 지원이 신설돼 방송사의 단막극 제작을 위한 불씨를 제공하게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6월 단막극 지원에 대한 명단을 발표했다. 그중 MBC가 제작하는 단막극 <닉네임 김광자의 제3활동>, <사랑을 가르쳐 드립니다>, <나야 할머니>,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도시락> 등이 선정돼 제작되는 중이다. MBC는 지난 2007년 <베스트극장>이 막을 내리면서 3년여간 단막극이 폐지됐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지원 하에 단막극이 전파를 탈 수 있게 됐다.

단막극의 부활은 젊은 PD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젊은 한류드라마로 각광받고 있는 KBS <추노>와 MBC <커피프린스 1호점>. 이 두 드라마는 공교롭게도 단막극으로 인정받았던 두 PD의 작품이다. KBS 8부작 <한성별곡>을 연출했던 KBS 곽정환 PD는 드라마국 내에서 '사극을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이미 이름을 올렸다. 이후 2년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추노>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은정PD도 2005년 MBC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으로 발랄하고 솔직한 드라마를 만들며 '명품 단막극'의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이 PD도 <커피프린스 1호점>을 성공시키며 단막극의 실험적 도전을 미니시리즈로 발전시키는 역량을 보여줬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재웅 원장은 "방송콘텐츠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므로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며 "제작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지원방식을 개선하고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전략 콘텐츠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