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조선시대에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만큼이나 불가능했던 것은 여성들끼리의 공식적인 연대였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이라는 말은 있어도 모녀유의, 모녀유친, 자매유신이라는 말은 없었으니 말이다.

남성들의 공식 윤리가 천하의 질서를 아우르는 삼강오륜이었다면 여성들에게는 오직 가정 안의 정절만이 최고의 생존 노하우였다. 붕우유신도 철저히 남성들끼리의 공인된 사회적 우정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여성들끼리의 회합이나 공적 연대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고작 여성들'끼리'의 관계에서 중시되는 원칙이 있다면 첩실들끼리 '투기'하지 말라는 것 정도였을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철저히 남성적 유대관계 속에 내던져진 '남장 여성'의 모험담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남성 동료끼리의 형제애(brotherhood)는 사회적으로 권장되었지만 여성들끼리의 자매애(sisterhood)는 좀처럼 용납되지 않았던 조선후기. 몰락한 남인 가문의 여성 김윤희(박민영)는 병든 남동생의 약값을 벌기 위해 각종 서적의 필사꾼 노릇을 도맡는다. 윤희는 필사꾼으로 행세할 때는 늘 '남장'을 하고 다녀야 한다.

'계집에게 글공부는 독이다'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에 겨울에도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장지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글공부를 '필사'하며 학문을 익힌 윤희.

그녀는 동생의 병구완을 위해 빌린 돈 100냥을 갚지 못해 늙수그레한 병조참판의 후실로 들어갈 위기에 처한다. 윤희가 여자인 것을 모르는 서적상 주인은 그녀에게 달콤한 유혹의 미끼를 던진다. '거벽'(과거시험을 대리로 쳐주는 일)을 하면 거액의 웃돈을 챙겨주겠다는 것.

이 위험한 유혹을 한사코 거부하던 윤희는 '너를 반드시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병조참판의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거벽을 선택한다. 남동생의 이름(김윤식)을 빌려 대리시험을 치러 간 시험장에서 만난 이선준(박유천). 그는 거벽으로 썩기에는 아까운 그녀의 글재주를 알아보고 더 이상 거벽을 일삼지 말고 직접 과거 시험을 보라고 권한다.

남장을 하고 대리시험이라도 보지 않으면 돈 100냥에 팔려갈 처지에 몰린 윤희. 그녀는 이날 과거시험이 친림시(임금이 직접 참관한 과거시험)인지도 모른 채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시험지를 '무효'로 처리할 요량으로 엉뚱한 답안지를 낸다. 임금의 눈에 직접 발각된 이 시험지의 내용은 임금은 물론 조정의 운영질서 전체를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고문을 욀 만큼 글은 제법 아나 그 재주로 거벽을 하려 과장에 들었나이다.

지엄한 국법 아래 뜻을 접었으니 법을 어긴 죄인은 아니나 관원이 될 만큼 어질지 못하기에 출사할 자격이 없나이다." 이러한 '발칙한' 답안지에 숨겨진 가냘픈 진의를 알아본 임금의 눈에 들어 파격적으로 성균관에 입학하게 된 윤희는 이제 김윤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실 그녀의 목적은 병조판서에게 100냥에 팔려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성균관 유생에게 지급되는 혜택으로 동생의 약값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성균관 유생들 속에서 여자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살얼음을 딛던 그녀는 '생존' 이상의 가치를 배워가며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그녀는 '독학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누구의 인정을 받아본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요, 누구와 '함께' 공부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던 그녀는 처음으로 함께 공부하는 기쁨을 온몸으로 체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지독한 독학으로 각종 지식을 섭렵했고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지만, 자신의 지식과 재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잔돈푼이나 벌어 가솔을 책임지는 데 급급했던 윤희는 처음으로 자신이 '사람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성균관에 가서 그녀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질문, '나의 학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할 스승과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저 가솔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만이 지상목표였던 윤희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회적 관계, 남성적 유대의 네트워크 속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처음이었거든. 수업이란 것도, 스승님도, 함께 공부하는 동학들도. 논어가 그렇게 재미있는 책인지 정말 처음 알았소."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존경하는 스승 정약용에게 여자임을 들키고 만 그녀는 변명을 한다. "살아야 했습니다. 그저 살고자 했을 뿐입니다. 어머니와 아픈 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가솔들을 위해 과장에 선 것이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약용은 군왕을 속이고 종묘사직을 능멸한 죄를 용서할 수 없으니 죽음으로 그 죄를 묻겠다고 그녀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윤희는 이제 막 알기 시작한 학문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자신의 과녁' 앞에 선 감동을 버릴 수가 없다. "학문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계집은 백성이 아닙니까." 가솔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만큼이나 절실한 문제, '나의 지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윤희는 꼭 풀고 싶은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고통이었던 윤희는 처음으로 학문을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기 위해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녀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한다. 임금이 참석한 대사례에서 장원을 하면, 내가 '남성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저에게도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살아 처음입니다.

학문이란 무엇인지 난생 처음 질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제 재주를 알아봐 주는 이도 만났고 난생 처음 제 편이 되어주는 이도 만났습니다. 이런 제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새로운 세상을 꿈꿀 기회를 저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가 김윤식이라는 남성의 호패 없이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되는 날. 그날이 지금은 왔다. '새로운 세상을 꿈꿀 기회'가, '남성들처럼'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펼칠 수 있는 기회자체는 보장되니까. 하지만 이제는 여성이 예전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예전보다 더 나은 사회적 '실천의 컨텐츠'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때도 온 것 같다.

자기수양과 독학을 통해서 세상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다는 지극히 남성적인 성공신화가 아니라, 남성들이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연대의 정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남성들만의 배타적인 마초형 의리가 아니라, 오직 여성들끼리의 유대만을 강조하는 아마조네스형 우정도 아니라, 언제든 '타인의 자리'를 마련하는 새로운 여성적 관계의 윤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상대를 짓밟아 나를 빛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자가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의 여백을 만들어내는 여성적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성균관스캔들>에서 김윤식으로 살아가는 김윤희가 단지 '남성들처럼'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가 가진 진정한 여성적 매력을 한껏 발산하여, 여성적 연대와 우정의 윤리를 창조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녀가 성균관 유생들과 동고동락하며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남성적 우정'보다도 오히려 양반가의 딸 하효은(서효림)과의 우정라인이 형성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한 남자(이선준)를 사이에 둔 여자끼리도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 신분과 처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자들끼리도 오성과 한음 못지않은 감동적인 관포지교가 가능하다는 걸, 그녀들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그런 우정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친구고 뭐고 없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고,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황당한 모함에도 굴하지 않고, 친구가 잘 될수록 내가 더 행복해지는 통 큰 우정의 연대가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다른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그런 삶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