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육상효 감독의 <방가? 방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우리사회의 견고한 차별의 벽 유머러스하게 고발

언제인가부터 추석이나 설날 같은 전통명절이 찾아오면, TV에서 '외국인 노래자랑'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국적도, 인종도 각기 다른 이들이 하나같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한국인 뺨치는 '뽕필'로 구수하게 트로트를 부르면 사회자들은 "이젠 한국사람 다됐다"는 칭찬 아닌 칭찬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그것은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인다는 일종의 '제스처'였을 것이다. 물론 좋은 취지였겠지만, 그 포용의 내면엔 견고하고 강압적인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한국 사람처럼 놀아야 한다는 것. 다양한 문화의 공존이 아닌, 한국 문화로의 흡수가 우리 식의 '다문화 해법'이었다.

한 때는 국사시간에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했던 시절도 있지만, 이젠 엄연한 다문화 사회다. 이주노동자의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 지방의 경우 다문화 가족의 비율이 10%를 웃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가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인가?"라는 물음엔 쭈뼛거리게 된다.

여전히 이주자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 문제에 대해 정색하고 "개선을 촉구한다!"며 구호를 외치겠지만, <아이언 팜> <달마야, 서울가자>를 연출했던 육상효 감독은 "함께 웃고, 함께 울어보자"고 제안한다. <방가? 방가!>는 휴먼 코미디라는 장르의 힘을 빌려 이주 노동자 차별 문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영화.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다. 더 칭찬할 만한 부분은 감독의 의도만큼 '재미있다'는 점이다.

<방가? 방가!>의 주인공은 '부탄에서 온 방가' 아니 충청도 금산 출신의 6년차 청년 백수 '방태식'(김인권)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겐 "서울에서 출세했다"고 큰소리 떵떵 쳤지만, 실은 몇 년째 취업을 못하고 죽마고우 고향친구 용철(김정태)의 노래방에 빌붙어 사는 처지다. 대규모 청년 실업시대에, 태식의 경쟁력은 바로 '남다른 외모'. 어린 시절부터 '동남아'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이국적인 생김새를 타고난 태식에게 용철이 "외국인 노동자 행세로 위장취업"을 하라고 부추긴 것이다.

용철의 황당한 아이디어는 의외로 적중했다. 동남아 출신 행세를 하는 태식은 어렵지 않게 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대부분 몸은 고되고 임금은 낮은 3D 업종인데다,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게 정체가 탄로 나는 통에 쫓겨나기 일쑤. 거의 모든 동남아를 돌고 돌아, 태식은 이주자가 거의 없는 '부탄 출신 방가'로 위장해 소규모 가구공장에 취직한다.

하지만 잘 하는 거라곤 사고치는 게 전부인 '방가'에게 공장생활이 쉬울 리 없다. 그는 실수로 공장의 최고 미인 장미(신현빈)의 성추행범으로 몰리면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자, 친구 용철과 함께 단속반 자작극을 벌인다. 불법체류자 동료들을 단속반으로부터 구해내는 '쇼'를 벌인 끝에, 동료들은 방가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은 천천히 친구가 되어 간다.

<방가? 방가!>의 재미는 역지사지에 있다. 한국인 '방태식'이 아닌 부탄 출신 '방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웃기고도 슬프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동네 꼬맹이 녀석들의 시비에 시달려야 하고, "이미그레이션~!(불법체류자 단속이 떴다)" 경고는 공습 사이렌만큼이나 무섭다. 얼결에 이주노동자 단체 회장이 된 방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씨방새는 새 이름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욕 강의'에선 웃음과 함께 씁쓸함이 밀려온다.

쏟아지는 폭언이 무슨 뜻인지 몰라 듣고만 있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스쳐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기준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 장면이다. 취직한 방태식이 고향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고 말할 때, 일차적으론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곧 '외국인 회사'에 담긴 견고한 차별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주노동자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 점에선 <방가? 방가!>는 꽤 성공적이다. 주인공 방태식에게 부탄 출신 '방가'의 정체성을 입힘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5년 째 집에도 못가고 한국에서 일하느라 전화로 결혼한 새 신부에게 매일 전화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성실한 로맨티스트 알 반장(칸)의 사연, 짠돌이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집으로 번 돈을 꼬박꼬박 부치는 기러기 아빠 마이클(팔비스)의 사연, 베트남 말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아들 단풍에게 한국인 국적을 주기위해 애쓰는 싱글 맘 장미(신현빈)의 사연은 고향에 아픈 홀어머니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도시 빈민 생활을 하는 태식의 사연과 그리 다르지 않다. 비루하고 외롭긴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방가'를 통해 구축된 공감은 차별문제로 넘어갈 때도 힘을 발휘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들과는 한 상에서 밥 먹기를 거부하고, 야근도 이주노동자들의 몫으로만 미루고, 월급은 한국인 절반 밖에 안주는 불평등에 방가가 분개할 때, 관객들도 함께 차별의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공감의 힘을 이끌어내는 데는 배우들이 공이 크다. 분장이 전혀 필요 없었을 '이국적인 외모'의 김인권은 페이소스의 코미디로 한 편의 영화를 무리없이 지고 간다. 트로트 '찬찬찬' 한 줄 한 줄에 담긴 의미를 100퍼센트 이해하게 만든 김정태의 연기도 압권.

알 반장 역의 칸은 '전국노래자랑 외국인 첫 수상자'의 진가를 클라이맥스에서 발휘하고, 인심 좋은 라자 역의 나자루딘, 마이클 역의 팔비스, 찰리 역의 피터 홀밴 역시 자연스럽게 제 몫을 다해낸다. 주목할 만한 신인은 장미 역의 신현빈이다. 데뷔작에서 외국인 연기라는 쉽지 않은 미션을 능청스레 소화하는데, 크레디트를 보기 전엔 그녀가 한국 배우라는 걸 모를 뻔 했다.

따뜻한 시선과 풍자적인 유머로 달려가던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잠시 주춤한다. 용철의 신고로 강제 추방당하게 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방가와 영화는 무리수를 둔다. 지금껏 잘 쌓아온 현실감을 깨뜨리는 엔딩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판타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해가 간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두 시간의 따뜻한 웃음으로 명쾌한 답을 낼 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세아 브라더스'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찬찬찬'과 절절한 '카밀라 송'이 아쉬움을 다 덮고도 남는다. <방가? 방가!>의 엔딩을 통해 그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봐 왔던 '한복 일색의 트로트' 외국인 노래자랑이 얼마나 강압적인 '화합'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