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드라마 , 이문열의 각색 백제역사 바로 세우기

KBS <근초고왕> 제작발표회 현장
2006년 유행 코드는 '고구려'였다. 고구려의 열풍은 TV를 타고 드라마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사극으로 만들어져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간 조선시대를 그리던 TV 드라마들은 고구려를 등에 업고 활보했다.

2007년 MBC <태왕사신기>, 2008년 KBS <바람의 나라>, 2009년 SBS <자명고> 등의 드라마는 고구려의 기운을 잊지 않으려는 듯 만주 벌판을 뛰어다녔다.

이제 고구려 시대를 한번 쭉 훑은 것일까. 고구려를 되살리려던 기운은 사라지고 역사 속에서도 희미한 백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밝지'를 아십니까?

지난 9~10월 충청권은 백제를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충남 부여와 공주 일대에선 백제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1400년 전 대백제의 부활'를 내건 <2010 세계 대백제전>이 개최됐기 때문이다.

SBS <서동요>
이번 축제에 370만 명의 관람객이 온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백제 역사문화에 대한 관람객들의 응어리를 어느 정도 풀어줬다는 점이다. 그간 백제 역사문화에 대한 왜곡과 훼손, '패망'에만 집중된 부정적 역사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축제의 뜻이었다.

단지 역사 속에서 패망한 나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400여 년의 오랜 세월 속에서 문화적 저력이 살아 숨쉬는 백제를 370만 명의 관람객들이 공감하고 돌아갔다. 백제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한 담론이 확대되고, 고대 백제사에 대한 고증과 복원을 통해 왜곡되고 훼손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번 대백제전을 통해 높아질 수 있었다.

이번 축제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하는 듯 방송계에선 백제에 대한 발자취를 밟았다. EBS는 <다큐프라임>을 통해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를 3부작으로 방영했다. MBC와 KBS도 각각 백제를 테마로 한 방송물을 제작할 예정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백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TV 드라마도 빠질 수 없다. '百濟到來之王(백제도래지왕)', '環西大百濟(환서대백제)'를 내세우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을 모셨다. 백제의 13대왕 근초고왕(346~375년)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보다 약 60여 년이나 앞서 중국의 요서지방을 경락하고 지배했던 왕이다.

중국의 요서지방을 수중에 넣고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서백제를 건설했으며, 50여 개국으로 할거돼 있던 마한의 군소왕국을 통일해 삼한통일을 이뤘다. 야만의 시대였던 왜국을 경제, 문화의 한 체제 속에 편입시켜 야마토(大和) 시대를 연 사람도 그다. 요서, 한반도, 일본을 잇는 거대한 고리인 환서의 대제국을 완성한 것이다.

KBS는 6일부터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을 통해 그 백제의 역사 여정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고구려사를 다룬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요동, 만주, 간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러진 영토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초고왕을 계기로 백제를 거론하고 다시 한 번 요동지방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초고왕>의 윤창범PD는 "드라마 <근초고왕>은 대한민국의 뿌리찾기 드라마"라며 "백제라는 뿌리를 아직 찾아보지 못했는데 드라마를 통해 백제를 알고, 현시대가 어떤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지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외돼 있던 백제의 문화, 왜곡돼 있던 백제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 즉 근초고왕의 업적을 그리는 작업이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근초고왕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는 근초고왕 즉위부터 20년 간 기록이 빠져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근초고왕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에 나타난 근초고왕의 발자취를 따라 갈 뿐이다.

고구려 역사 드라마가 활개를 치던 시점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였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동북공정에 의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드라마 <주몽>이었다. <주몽>은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없는 고구려 건국의 명분을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충분히 채워 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몽>은 등장인물 위주로 역사를 묘사했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고구려 건국사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워갔다. 역사적 개연성을 끌어내며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근초고왕>도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작가적 상상력이 역사적 개연성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가 숙제인 셈이다. <근초고왕>의 배우 감우성조차 "근초고왕에 대해 알려진 것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 궁금증을 자아내 출연하게 됐다"며 "근초고왕에 대해 알아간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를 위해 <근초고왕>은 이문열의 소설 <대륙의 한>을 각색해 담아낸다. 이문열은 이미 1982년 <그 찬란한 여명>의 세 권짜리 소설을 펴내며 백제를 다뤘다. 이후 <요서지>를 통해 역시 '백제의 혼', '대륙의 한', '웅비' 등을 펴냈다. 그 중 백제의 요서 진출사를 소재로 한 <대륙의 한>을 5권으로 엮어 출간했다.

백제의 전성기였던 근초고왕의 업적을 따라가는 여정이 담긴 책의 내용은 드라마틱한 설정과 사건, 인물 캐릭터 등이 더 탄탄해져 드라마에 담길 예정이다.

지난 2005년 백제를 배경으로 30대왕 무왕의 이야기를 그린 가 방영된 적이 있다. <서동요>는 국내 최초의 4구체 향가로 무왕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다. 구체적인 역사적 서술보다는 인물 중심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근초고왕>와 비교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드라마 <근초고왕>이 그리는 백제의 시작은 어떨까. 드라마는 고구려 시조 주몽과 소서노의 갈등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서노는 주몽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온 힘을 다했지만, 결국 주몽은 고구려의 2대왕을 소서노의 소생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린다.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지금의 한강 유역을 내려와 백제를 건국한다. 이때 소서노가 지은 나라 이름이 '밝지', 즉 백제라는 것이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에서부터 비류왕과 근초고왕에 이르기까지 백제와 고구려의 끈질긴 인연을 소재로 총 70부작을 엮는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