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극단적 위계질서와 도덕 강박이 낳은 부작용

"자, 다음은 보아 선배님의 노래입니다. 허리케인 비너스!"

요즘 TV 앞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연예계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자신이 처하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강호동 선배님께서 저에게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이번에는 이경규 선생님 차례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말과 행동에 노련함이 묻어나는 원로급(?) 연예인에게 붙여지는 깍듯한 존칭은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보아 선배님", "샤이니 선배님" 1개월만 먼저 데뷔해도 칼 같이 존대를 붙이는 어린 연예인들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앉아 있다 보면 그만 어이가 없어지고 만다. 나는 보아의 후배가 아니다. 당연히 강호동의 후배도 아니다.

박명수 씨? 명수 형님? 명수야?

바야흐로 존칭 과잉의 시대다. 주차장은 이쪽이시고, 저 옷은 2만 5000원이시고, 카드는 한도가 초과되셨다. 여기에 최근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과잉 존칭이 있으니 바로 TV와 라디오 속 존댓말이다. "다음 노래 듣고 가죠. 빅뱅 선배님들의 '집에 가지마'."

국어의 경어법은 복잡하다. 주체를 높이는 것도 있고, 객체를 높이는 것도 있고, 청자를 높이는 것도 있다. 이 중 누군가를 지칭할 때, 그것이 공적인 방송을 타고 나가는 말일 경우 화자와 청자 사이에는 시청자라는 불특정 다수의 '제 3의 청자'가 끼게 된다.

이 때에는 제 3의 청자를 의식해서 둘 사이의 사적인 연결고리는 잠시 잊고 지칭에 대한 존대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연예인 박명수가, 배철수에게는 '박명수', 노홍철에게는 '명수 형님', 이금희에게는 '박명수 씨'라는 각각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해도, 방송에서는 공적 매체라는 성격과 청취자를 고려해 일반적 존칭인 '~씨'라고 불려야 한다. 그러나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고 사적 관계에 집중한 나머지 대기실에서나 오고 가야 할 극존칭이 가감 없이 전파를 타고 있다.

덕분에 전국민은 TV를 틀 때마다 팔자에도 없는 연예계 후배가 되어야 한다.

'무릎팍 도사' 중 노주현
얼마 전에는 MBC 오락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서 배우 노주현의 반말이 잠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호동의 까마득한 선배로서 반말로 이야기했고, 시청자들은 "TV를 보는 사람 중 노주현 씨보다 훨씬 어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입장과 "편안하게 방송하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좀 쉬고 싶어서 TV를 트는 순간까지도 연예계의 극단적 위계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풍토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사실 이는 의무 사항이 아닌 권장 사항이다. 높임법은 정오(正誤)로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높임법은 철자를 틀리게 쓴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국립국어원의 김한샘 연구원은 방송 속 사적인 존칭에 대해 이야기했다.

"높임법은 '맞다, 틀리다' 보다는 '더 좋겠다'의 개념이죠. 예를 들면 '아버님께서 나이를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가 나이를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 라고 했다고 해서 틀린 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아버님께서라고 하면 더 좋겠다'라고는 할 수 있죠. 이전에는 방송을 공식적 채널로 생각하는 경향이 컸고 시청자를 고려해서 존대의 정도를 조정했다면, 요즘에는 방송의 공적 성격에 대한 출연자들의 의식이 약해져 사적인 관계에 따라 존칭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법적으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요. 방송은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고 시청자들은 그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니 이를 감안하는 것이 '좋겠다' 정도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적입니다."

여기에는 최근의 바뀐 방송 환경도 한 몫 한다. 일명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시청자와 출연자 간의 직접적 소통이라기보다는 출연자들끼리 이야기하고 놀고 그 가운데서 웃음을 끌어내는 성격이 강하다. 여기서 시청자를 의식하는 순간 '리얼'은 깨진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1박2일>, 종영된 <패밀리가 떴다> 등이 모두 그런 예다. 이런 경우 "왜 조권은 시청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여기저기 반말을 쓰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무리다. 방송의 공적 성격을 일부러 무시함으로써 재미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크쇼인 <세바퀴>나 <무릎팍 도사>, 엄연히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뮤직뱅크> 등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약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갖다 붙여지는 '선생님', '선배님'은 안방 시청자들을 여전히 짜증나게 만든다. 여기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인 '연예인에 대한 도덕 강박'이라는 문제가 다시 들먹여진다.

대한민국에 날라리가 없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에요. 연예인은 광대죠."

군 입대 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가수 성시경은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도덕적 잣대에 대해 시원하게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연예인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는 호시탐탐 그를 쓰러뜨리려는 사람들에 의해 예의 주시당하고 있는데, 그 기준은 주로 도덕적 청결함이다.

국방의 의무(그것도 현역으로)를 제대로 마쳤는지, 중고등학교 시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선배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지, 미니홈피에 욕설이 들어간 방명록을 남기지는 않았는지, 팬들에게 비싼 선물을 요구하는 발언을 흘리지는 않는지 등등.

노래는 못 해도 되지만 그룹 안에서 멤버들끼리 분쟁이 일어나면 그 순간 가수 생명이 끝나는, 희한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연예인들은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몸가짐을 단장한다.

대중의 심술궂은 강박의 발로로, 언제 책 잡힐지 알 수 없는 연예인들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아예 모든 말을 극존칭으로 뒤덮어 버렸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혹시나 실수할까 봐 "2500원이십니다"를 외치는 맥도날드 직원의 심정으로.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의 질시와 감시는 그 대중을 도리어 연예계의 새까만 후배로 만들어 버리는 웃기는 상황을 낳았지만, 사실 더 큰 손실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에 '날라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흠잡을 데 없는 과거를 가진, 한국사회의 요구에 한 치도 어긋난 적 없는 사람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잘 노는 것이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인 연예인은 필연적으로 일반인보다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 그들이 겪는 평균 이상의 감정의 고저는 대중이 즐기는 각종 문화예술 콘텐츠의 원동력이다.

'엄친아' 이승기의 노래와 사고뭉치 DJ. DOC의 노래 중 어느 쪽이 이 나라의 가요계를 바꿔 놓았나? 쓸데 없는 감시관 역할은 그만 두고 진짜 도덕적 잣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로 그 엄격한 기준을 돌려 놓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우리도 연예계 피라미드의 최하위에서 벗어나자.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