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올랐다하면 10곡 앙코르 기본[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이금희 '키다리 미스터 김' 下 (1966년 콜롬비아레코드)1967년 MBC 10대 가수 등극… '인상파 미스터 김' 연타석 히트

얼마 전 인터넷에서 댄스가수의 가창력에 대한 논쟁을 본 적이 있다. 사실 한 시대를 풍미한 댄스가수들의 가창력은 만만치 않다. 최초의 댄스가수 이금희도 원래 서울대 음대 진학을 꿈꿨던 성악도였다.

50줄에 들어선 마돈나도 2시간 라이브 내내 열정적인 춤을 쉼 없이 계속하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던가. 1950년대에 춤바람을 사회적 화두로 불러온 화제의 영화 <자유부인>을 보면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화끈하게 춤을 추는 무희가 등장한다.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전문 춤꾼의 역사는 반세기가 넘었다는 증명이다.

사실 이금희 등장 이전인 1950년대 미8군 무대에는 미스K(혹은 먼로K)라는 걸출한 여성 댄스가수가 있었다. 당시 국내가수로는 상상하기 힘든 무대 위에 드러누워 춤을 추고 노래하는 파격적인 무대매너를 선보여 미군들의 넋을 빼놓았다는 전설적인 댄스가수다.

하지만 일반무대 진출 전 미군 장교와 결혼하고 은퇴를 해버려 일반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70년대 초에는 '와일드 캐츠'라는 3인조 여성 댄싱그룹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동명의 록그룹 와일드 캐츠(들고양이) 탄생 이전에 등장했던, 안무를 전문으로 했던 국내 최초의 여성 댄싱그룹이다.

월남파병이 본격화한 1965년, 이금희는 첫 파월 장병 위문공연단에 뽑혀 열정적인 춤과 노래로 파병군인들을 열광시켰다. 또한 월남 장교와 트위스트를 추는 그녀의 파격적인 사진이 외신을 타고 타전되어 국제적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이에 제작자 황우루가 음반 취입을 제안해 왔다.

신나는 외국 팝송을 즐겨 부르고 팝송 번안 곡을 주로 취입했던 그녀는 가요 곡 취입이 달갑지 않았지만 2달에 걸친 황우루의 집요한 제의에 항복했다. 그때 취입한 노래가 바로 그녀의 대표곡이 된 '키다리 미스터 김'이다.

1966년 황우루 작곡집으로 발표된 '키다리 미스터김'은 이금희의 독집이 아닌 당대의 인기가수 조애희와 이정민과 함께 한 소위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이금희는 2면에 수록된 노래 6곡을 취입했다.

노래취입 날 이금희는 심한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 음반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키다리 미스터김'은 발표 이후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며 이듬해인 1967년 이금희를 MBC 10대가수로 떠올리며 최정상의 인기가수로 등극시켰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전쟁의 포화를 딛고 경제재건 의욕이 탱천했던 당대 국민에게 큰 용기와 즐거움을 선사한 60년대의 경쾌한 댄스 명곡이다.

전작의 빅히트에 힘 입어 1968년 연작 개념의 '인상파 미스터 김'이 발표되어 연타석 히트를 기록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트렌드가 형성되었다. 노래 제목에 '미스터 김', '미스 리' 같은 영어 호칭이 들어간 노래들이 양산되며 각광을 받았던 것. 당시 댄스가수 이금희의 인기는 대단했다.

무대에 올랐다하면 10곡의 앙코르는 기본인지라 노래가 끝나면 목이 쉬고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을 이뤘고 심지어 '무대화장 속눈썹이 얼굴 사방에 흩어지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댄스가수로서의 그녀의 진정한 진가를 맛보려면 '싱싱싱', '바나나 버트송', ' 비빠빠 룰라' 같은 팝송 번안 곡들을 들어봐야 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한국 최초의 댄스가수로 기록된 이금희 이후 여성 댄스가수의 계보는 배인순, 배인숙 자매로 구성된 펄시스터즈로 이어졌다. 훤칠한 키와 미모까지 겸비한 노래 잘 하는 대학생 자매 댄스듀엣의 등장은 오디오 시대에서 비디오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된 터닝 포인트로 평가받는다.

이후 섹시 댄스가수 김추자가 뒤를 이었고 바니걸스, 인순이, 김완선 , 김현정 그리고 최근의 걸그룹 원더걸스까지 여성 댄스가수들의 등장은 끝없는 퍼레이드를 이루고 있다. 남성 댄스가수들의 경우, 보수적인 시각 때문에 60년대 트위스트 김 이후 70년대에는 남진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클론, 소방차, 박남정,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박진영, 비 등 거의 모든 가수들이 노래와 춤을 병행하는 댄스가수 전성시대가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