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심한 밤 비밀스런 이야기 보따리 풀어 놓는다

SBS ETV<철퍼덕 하우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미국의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와 <타이라 쇼>는 호스트가 여자다. 오프라 윈프리와 타이라 뱅크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토크쇼를 진행하며 장기집권 중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주제들을 펼쳐 놓으며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안(성폭력, 미혼모, 집단 따돌림 등)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도 나눈다.

<타이라 쇼>는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연애, 패션, 미용 등을 풀어내며 미국 여성들에게 생활의 멘토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무 가벼운 주제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가족에게 고백하지 못한 동성애자의 고민을 같이 들어주고,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여성의 아픔을 보듬는다. 두 토크쇼의 성격을 다르지만 여성 진행자가 진정어린 눈으로 시청자와 교류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MBC에브리원 <미인도>
이들의 토크쇼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이유는 올 하반기 우리도 여자들을 내세운 토크쇼가 쏙쏙 생겼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이 전하는 여성들의 토크쇼가 이제 시작됐다.

진행자와 게스트는 모두 여자

"여성시대잖아요. 요즘은 여성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어요. 이들이 한 장소에서 펼쳐놓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즐겁고 다양합니다. 여성들이 주도하는 토크쇼는 감동이라는 교류까지 양산할 수 있어요."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선 SBS ETV <더 퀸>의 첫 녹화가 진행됐다. 네 명의 여자 호스트가 진행하는 <더 퀸>은 토크와 버라이어티가 공존하는 종합선물세트다.

이날 게스트는 가수 박선주. Mnet <슈퍼스타K 2>에서 TOP11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아 화제가 된 인물이다. "선생님은···" 큰 화면에 <슈퍼스타K 2>의 스타인 허각, 존박, 장재인 등이 풀어 놓는 박선주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현영, 신봉선, 정시아, 백보람은 진행자로서 박선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SBS ETV<더 퀸>
<더 퀸>은 개그우먼 이경실과 정선희가 진행했던 <철퍼덕 하우스>의 후속 토크쇼다. 전작에서 이경실과 정선희는 화제의 여성들과 함께 8개월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게스트들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이 4~6개월이라는 짧은 생명력에 비하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철퍼덕 하우스>와 <더 퀸>의 김경남 PD는 "여성시대라는 말을 실감한다"며 "여성들은 게스트의 그날 컨디션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토크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여성들이 호스트인 토크쇼의 장점을 열거했다.

<더 퀸>은 <철퍼덕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여성 게스트만 초대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유롭게 풀어낸다. 여성 진행자와 게스트가 혼연일체가 돼 여자끼리 느끼는 공감대들을 펼쳐놓는다는 게 기획의도다. 제작진은 '지구상의 기막힌 사연들을 가진 대한민국 1% 주인공'을 출연시킨다고 설명했다. "여자들을 위한 특별한 페스티벌"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더 퀸>의 여자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트위터나 미투데이에 사진을 올리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다. 상품이 구두나 액세서리라는 점이 '여성만 허용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더 퀸>이 여자 4명의 호스트가 화려한 의상과 입담으로 쉴 새 없는 토크를 잇는다면 는 '한(恨) 풀이' 토크쇼를 지향한다.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고 털어놓지 못했던 게스트들의 한풀이 마당을 벌인다는 점에서 <더 퀸>과는 조금 다른 콘셉트다.

<미인도>가 한풀이를 들먹이는 이유는 MBC의 간판 아나운서들이 대거 출연하다는 점이다. 김지은, 방현주, 나경은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들이 갖는 편견에 맞서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직설적인 발언들을 내뿜을 예정이다.

이미 김지은 아나운서는 <미인도>에서 "아나운서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 때문에 아파도 티를 내지 못했다"며 이혼에 대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지은 아나운서의 이 같은 발언은 <미인도>의 콘셉트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미인도>는 '한 많은 사대부 집 마님들의 은밀한 아지트인 미인각'에서 펼쳐지는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미인도> 또한 <더 퀸>과 같이 '21세기 현대여성'을 게스트로 들인다는 점을 부각했다.

여자들의 감성 어린 속내가 어떻게 드러날지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개그우먼 이영자의 거침없는 입담에 이은 화끈한 토크와 세 명의 아나운서가 풀어낼 강도 높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개그우먼과 아나운서라는 정 반대 이미지의 진행자가 이끄는 토크쇼는 시도된 적이 없기에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 여성들로만 이뤄진 버라이어티 쇼는 많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채널에는 5명 이상의 여자 스타들이 짝을 이뤄 미션에 도전하거나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순수하게 게스트와의 호흡을 요하는 여성 전용 토크쇼는 이제 발동이 걸렸다.

<더 퀸>과 <미인도> 모두 심야 시간대에 편성돼 비밀스러운 보따리를 풀어헤칠 계획이다. 그렇다면 어떤 매력이 여성 전용 토크쇼를 제작하게 하는 걸까.

"언어적 표현력과 배려 있는 진행력이 여성 호스트의 토크쇼가 갖는 묘미"라고 지상파에서 남성 MC가 진행하는 토크쇼와 케이블 채널 여성 토크쇼를 동시에 구성하는 메인 작가의 말이다.

기분 나쁜 질문도 풍성한 감성을 담은 언어로 부드럽게 물어보고, 게스트와의 유대감을 이끌어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해내는 게 여성들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오프라 윈프리 쇼>나 <타이라 쇼>가 장수하는 이유일 것이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