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는 로맨스, 주옥같은 대사, 배우들의 유체 이탈적 연기 상승작용

윤상현, 하지원, 현빈(왼쪽부터) - 여주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 기자간담회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올 법한 집에 사는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이것들은 무슨 말만 하면 다 지들 것이래."

남자와 여자, 부유와 가난, 그리고 생과 사.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들이 있다. 입만 열면 호텔급 집과 럭셔리한 제품들을 두고 "모두 내 것"이라고 눈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 또 다친 부위를 간신히 옷으로 가리고 뜯어진 가방을 옷핀으로 여미며 "어쩔 건데?"라며 눈을 치켜 뜨는 사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이 만나 애틋한 로맨스가 탄생했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다.

우리는 이미 재벌 2세와의 달콤한 사랑 방정식을 많이 봐왔고 익숙하다. 여기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스틱한 설정을 넣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반영하는 건지 최근에는 <시크릿 가든> 결말에 대해 네티즌의 설왕설래가 김은숙 작가가 직접 해명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극중 길라임(하지원 분)과 김주원(현빈 분)의 영혼이 바뀐 현상을 두고 극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물론 현재는 둘의 영혼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11월 13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17.2%(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로 출발해 8회인 5일 22.3%를 기록하며 그 인기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이 뻔한 공식의 드라마를 성공가도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로맨스잖아요"

12월 8일 경기도 여주 마임 비전빌리지에선 <시크릿 가든>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전이 벌어졌다. 그 설전이라 함은 바로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듣는 인기 요인. 하지원과 현빈, 윤상현은 시종일관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한 듯 한껏 웃어 보이며 여유롭게 그 비결에 대해 풀어 보였다.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건 "두근거림의 설렘"이다. 설렘이 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제가 다니는 피트니스와 사우나에서 50~60대 아주머니들을 자주 만나요. 저를 볼 때마다 '너무 설렌다', '생활의 활력이 됐다'고 말씀을 하세요. 기분이 좋아요. '우리 드라마에 푹 빠지셨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하지원은 중년여성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큰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고 답했다. 재벌 2세 김주원이 내뿜는 속사포 언변과 한류스타 오스카(윤상현 분)의 따뜻한 여성 대응법이야말로 중년 여성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윤상현도 한 몫 거들었다. "남녀 간의 두근거림을 잘 짚은" 감독의 촬영 기법이 돋보인다고 했다. 그는 캐릭터의 명확한 설정과 구도가 드라마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재미를 배가한다고 밝혔다. 특히 "설레고 첫사랑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드라마의 전개가 압권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댁 완전히 이상한 여자야. 근데 바로 그게 문제다. 너무 이상하니까 난 그런 댁이 얼떨떨하고 신기해. 그래서 나는 딱 미친놈이야", "내 평생 제일 어렵게 밥 한 끼 먹는 여자입니다. 성질 있는 여자라서 그냥 가 버릴까봐 조마조마 해서요", "내가 진짜 열 받는 게 뭔지 알아? 그 쪽은 나에 대해 단 5분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 등 주원의 대사는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의 전매특허다. 특히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이라는 별칭을 받은 까다로운 주원의 입에서 쏟아지는 '주옥 같은' 말들은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세상 편하게 사는 남자. 저랑 놀 주제 못 됩니다", "동화에서 보면 꼭 그러잖아.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다 키스해서 사람으로 돌아오잖아" 등 라임의 차분하면서도 사회 풍자적 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주원이 핏대를 세우며 통통 튕기는 대사를 칠라치면, 라임은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와 변화 없는 표정으로 지지 않는다. 여기에 배우들의 철저한 유체이탈적 연기 변신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원과 현빈은 영혼이 바뀌는 뻔한 설정을 연기력으로 커버하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현빈은 "한 쪽 입꼬리가 무의식 중에 올라가곤 하는데 그걸 표현하더라"며 하지원의 눈썰미에 극찬을 보냈다. 하지원 또한 "본 방송을 할 때 주원이 위주로 연기를 본다"며 서로의 관찰에서 나오는 말투, 행동, 표정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드라마에 그대로 녹이고 있다.

하지원은 특히 촬영 내내 꿈속에서조차 매번 남자로 바뀐다고 하니 리얼리티의 연장선이 따로 없다. '이거 내 행동인데···'하면서 웃곤 한다던 두 남녀배우의 발언은 꼼꼼하고 명확하게 캐릭터를 파악하고 현실적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있다. 즉 가슴 설레는 진정성 있는 로맨스는 대사와 캐릭터, 배우들이 연출한 최대의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성균관 스캔들>에 이은 중년여성들의 로망

"<성균관 스캔들> 끝나고 무슨 낙으로 사나 했더니···. 요새는 <시크릿 가든> 보는 낙으로 살아요."

한 기업의 마케팅기획실에 근무하는 정경희(38)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초에 종영한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시청자였다. 이름하여 '성스 폐인'이다.

<성균관 스캔들>에 등장하는 문재신(유아인 분)에 반해 근 2개월간 '걸오앓이'로 살아왔다고 한다. 남장 여자 윤희(박민영 분)를 지키는 걸오에 반해 세 살 박이 아이가 있는 유부녀지만 TV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성균관 스캔들>은 유생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터치한 젊은 사극 드라마로, 10% 초반대의 시청률을 보였지만 마니아 층을 형성하며 20~40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근육질 몸매의 걸오, 섬세한 선준(박유천 분), 귀여운 용하(송중기 분) 등 '꽃미남' 유생들의 '윤희 지키기' 임무는 회사원이나 기혼녀들에게 회식 등을 미루며 '10시 땡!'이라는 말과 함께 TV 앞에 앉게 했다. 마니아 층이 두텁게 형성되면서 <성균관 스캔들>은 누나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로 유명세를 치렀다. 심지어 케이블 채널 Q채널에선 <성균관 스캔들>의 온종일 특집 방송이 편성돼 방영되기도 했다.

이 '누나'들의 기운이 고스란히 <시크릿 가든>으로 옮겨온 것일까? 최근 <시크릿 가든>의 상승세는 30대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고 있다. 남자와의 영혼이 바뀌면서 '쩍벌녀(다리를 쩍 벌려 앉는 여자)'가 되어버린 라임과 까칠한 말투로 언성을 높이다가 이내 서류 결재에 하트 사인을 그려 넣는 주원의 움직임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또 한번 여성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소재들이 여성들을 TV 앞으로 유혹하는 셈이다.

<시크릿 가든>의 관계자는 "30~40대 여성들이 <성균관 스캔들>의 '꽃미남'들이 한 여자를 지켜내는 모습에 반했다면 <시크릿 가든>에선 까다롭고 냉정해 보이는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음은 배우들에게 통한 것일까. 하지원과 현빈도 뻣뻣하지만 달콤한 주원의 말투와 행동에 설렛다는 입장을 함께 했다. 주원이 윗몸일으키기를 하기 위해 라임에게 발을 잡게 하고는 하는 사랑 고백 말이다. 이 사랑 고백 장면은 네티즌에 의해 동영상과 사진으로 급속하게 퍼지면서 '시크릿 가든 폐인'을 만들고 있다.

"몇 살부터 그렇게 예뻤나? 자꾸 떠오르고 안 봐도 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나는 지금 딱 미친놈이야."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