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년대 주옥같은 옛 노래[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말로 '동백아가씨' 上 2010 JHN 뮤직중장년층 강력한 공감대, 젊은 재즈 애호가들 호평 받아

대중음악의 리메이크 역사는 장구하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휘몰아친 리메이크 열풍의 핵심은 음반 속에 1~2곡 정도 수록된 수준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앨범 개념으로 볼륨이 확대된 점에 있다.

음악적으로도 과거의 작업이 단순한 재탕의 수준이었다면, 최근의 그것은 오리지널과 완벽하게 다른 옷을 입히는 새로운 개념의 창작 작업으로 진보하고 있다.

대중가요가 명곡으로 인증받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에는 과거의 히트 여부, 대중적 인지도, 뛰어난 음악성 등 무수한 필터링 요인이 존재한다. 그 중 후대의 무수한 리메이크 작업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팩트'로 작용한다.

리메이크는 숨겨진 노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발굴의 개념도 일부 포함되지만, 대부분 대중적 인지도와 음악적 콘텐츠가 검증된 과거의 빅히트 곡이 대상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창작곡으로 승부를 거는 앨범보다 위험부담이 적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리지널과 냉정하게 비교된다는 치명적이고 숙명적인 리스크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고 김광석은 리메이크를 '다시 부르기'로 규정하며 처음으로 앨범개념을 도입했던 이 분야의 선구자다. 그는 90년대 초반 두 번에 걸쳐 음반에 수록된 모든 곡을 자신이 좋아했거나 존경을 바치고 싶은 과거의 명곡들로 포진시킨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그를 리메이크 앨범 분야의 선구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원곡을 능가하는 자신만의 음악적 재해석을 통해 마치 그가 오리지널 가수로 인식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탁월한 음악적 재해석과 동시대 대중이 공감할 정서적 요인을 담보했다면 리메이크는 창작에 비견되는 가치 있는 작업임을 최근의 리메이크 앨범 열풍이 입증하고 있다.

오랜만에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에 필적할 눈물이 찔끔 나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리메이크 명반이 등장했다. 50~70년대에 각광받았던 옛 가요들을 고품격의 재즈어법으로 덧칠한 말로(본명 정수월)의 프로젝트 앨범 <동백아가씨>다.

말로는 이미 3집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발표되어 한국 여성의 극한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한 백설희의 명곡 '봄날은 간다'를, 5집에선 30년대 한국 대중가요시대를 진두지휘한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를 현대적 어법으로 재해석했다. 중장년층의 폭발적 반응을 통해 이 2곡이 그녀의 공연 필창 레터토리가 된 지 오래다.

흥미로운 점은 말로의 음악적 야심이 아닌 한국 전통가요에 호응한 중장년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앨범이 기획된 '착한' 앨범이라는 점이다.

말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와 정갈하고 섬세한 허스키 보컬을 통해 나윤선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디바'다. 그가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로 불리는 이유는 청자를 압도하는 화려한 스캣을 통해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K-스탠더드'라는 부제를 단 이 앨범에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현인의 '신라의 달밤'과 '서울 야곡' 등 60년대 이전 가요에서부터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 그리고 패티김의 '구월의 노래', 김정호의 '하얀 나비', 김소월 작사의 '개여울' '산유화' 등 60~70년대를 관통한 총 11곡이 수록되었다.

직접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말로는 곧 터질 듯하면서도 이를 악무는 감정의 절제를 통해 전통적인 극한의 슬픈 미학을 계승하면서 때로는 원곡의 정서를 보존하고 때로는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한국 재즈 스탠더드의 전형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제덕(하모니카), 박주원(기타), 민경인(피아노)이라는 탁월한 연주가들과의 앙상블은 이 앨범의 음악적 성과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로의 주옥 같은 옛 노래의 고품격 부활작업은 신세대 가수들의 앨범과 어깨를 견주는 의외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 결과, 문화사각지대에서 부유하던 중장년층 대중의 강력한 공감대와 함께 젊은 재즈 애호가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뽕짝'으로 폄하된 아름다운 옛 가요들에게 명곡의 지위를 복원시키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