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의 성인 문턱에 선 세 주인공의 성장통ㆍ공포를 현실적으로 녹여낸 판타지

해마다, 특정한 시즌을 알려주는 '알람' 영화들이 있다. '학교' 시스템에서 발을 뺀 지 꽤 오래 지났지만, 작은 지팡이를 든 '김구 안경'을 쓴 소년이 여기저기 도배되는 걸 보니 '겨울방학'이 시작됐나 보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다.

2001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매 겨울방학마다 쑥쑥 커가는 해리를 보며, 기숙학교에 입학시켜놓은 조카 보듯 대견해 했던 것도 이젠 마지막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최종장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이 드디어 공개됐다.

아마 전 세계 관객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특히 '해리포터'의 어머니 조앤 롤링이 매해 한 권씩 찔끔찔끔 내놓는 후속작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해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갔던 동세대의 팬들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 대한 감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마치 자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처럼, 시원하고 흥분되고 섭섭하고 두려움 마음. 덕분에 한국보다 약 한 달 일찍 개봉한 북미 시장에서는 '첫 주 3일 만에 1억 2510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역대 6위의 오프닝 기록을 새로 썼다.

판타지 영화에 꽤 점수가 짠 한국에서도 개봉 첫 주 예매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니, '해리'와 관객들의 친밀도는 여타의 '시리즈' 영화와 차원이 다른 듯하다.

아이들은 자랐다. 안타깝게도, 이제 호그와트와도 안녕이다. 성년을 문턱에 둔,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론(루퍼트 그린트), 헤르미온느(엠마 왓슨)은 더 이상 '판타지'의 세계에 머물 수 없다.

사고를 쳐도 따끔하게 혼내면서도 푸근히 안아 줄 품도 없고,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았던 친구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 모든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의 화살은 내게로 돌아온다.

이젠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내 실수의 대가는 다른 이의 목숨일지도 모른다. 이 냉혹한 살얼음판에 비하면, 그간 온갖 사건이 벌어졌던 호그와트는 '놀이공원'에 불과하다. 이곳의 이름은 '현실'이다.

이제 어려운 마법 주문을 술술 읊는 해리와 친구들이라도, 현실은 두렵고 무겁고 슬프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는 전작의 시리즈와 비교할 때 이 공포와 슬픔이 가장 두드러진다.

전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에서 해리의 스승이자 정신적 아버지였던 덤블도어 교장이 해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직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덤블도어의 죽음은 해리에게 보호막의 소실을 의미한다. 어린 마법사들을 지켜주던 수호 마법도 더 이상 해리와 친구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내 자신뿐인 상황. 덤블도어가 죽고 볼드모트(랄프 파인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시켜 마법부를 습격한다. 거의 모든 마법세계가 볼드모트의 손에 떨어지자,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은 최후의 숙적 볼드모트(랄프 파인즈)를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모험을 떠난다.

볼드모트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영혼이 담겼다고 알려진 '죽음의 성물' 호크룩스를 찾아서 파괴하는 것인데, 이조차 쉽지 않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볼드모트는 해리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호크룩스를 파괴하면 해리에게도 어떤 피해가 올지 모른다.

게다가 갓 호그와트를 졸업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실전경험이 부족한 해리와 친구들은 볼드보트의 '죽음을 먹는 자'들의 공격을 막기에도 허덕인다. 덤블도어가 남긴 유품이 해리와 친구들이 볼드보트를 제거할 유일한 단서지만, 과연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도 모호할 뿐이다. 미소가 사라지고 두려움이 깃든 얼굴, 붉은 피가 묻은 손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낯설고, 처연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마법 판타지' 영화라기보다는 '마법 스릴러'에 가깝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현실이라는 배경과 동심을 잃은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다. 모든 일이 결국은 좋게 해결될 것이라는 아이들의 낙관론 대신,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청춘의 비관론이 짙게 깔린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건 해리와 론이다.

해리는 결국 볼드모트의 손에 자신이 먼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초초함에 분노하고, 해리와 헤르미온느 사이의 묘한 기운을 느낀 론이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는 장면은 그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격렬함이 느껴진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부터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거쳐, 최종장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 2>의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은 성인을 문턱에 둔 세 주인공이 느낄 법한 성장통의 공포를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해 영화 곳곳에 채워 넣는다. 모든 주인공이 해리의 얼굴을 갖게 되는 기묘한 코미디가 종종 눈에 띄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힐 만큼 많지 않다.

감독의 이런 선택은 원작을 최대한 영화에 담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5편과 6편에서 원작의 디테일을 과감히 줄이고, 줄거리의 흐름에 신경을 썼던 것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아마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통해, 상상했던 바로 그 장면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해석이 없다는 것은 감독에겐 일종의 '직무유기'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원작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외우듯 새기고 있는 '독자 관객'이 대부분인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그리 흠잡을 만한 이유가 못 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최종장의 엔딩을 보기 위해 다시 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 2011년 7월 개봉을 앞 둔 2편과 함께 4시간 분량의 완성본으로 개봉했어도 아마 '해리'의 관객들은 군말 없이 극장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