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에서 록까지 탁월한 보컬리스트[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이은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1986년 한국음반남자친구와 이별의 슬픔 담은 노래, 세대초월 강력한 흡입력

아마도 가슴 속 깊숙하게 파고들었던 이은하의 애절한 노래에 자유로웠던 7080세대는 없을 것이다.

장르를 넘나든 넓고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과 무대를 압도하던 카리스마,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맛깔났던 허스키 보컬, 그리고 가슴 먹먹하게 했던 애절한 울림은 모두 그녀만이 구현했던 차별적 어법이었다.

이은하는 고정된 틀 안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며 트로트에서 록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장르적 특성에 맞는 창법으로 소화해낸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또한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우수에 젖은 허스키 창법과 다이내믹한 율동으로 인기 정점에 오른 가수이면서, 연기자의 영역을 넘나들며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만능 여성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빠른 템포의 훵키한 곡들인 그녀의 '밤차'와 '아리송해'는 '제3한강교' '새벽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혜은이와 쌍벽을 이루며 디스코 시대를 주도했던 그녀의 대표곡들이다.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 위로 '동서남북'을 찌르며 육감적으로 춤추던 모습은 왜 이은하가 70년대의 디스코 디바로 불리는지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13세 나이에 데뷔한 그녀는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 힘든 애절한 허스키 음색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곧 '제2의 정훈희', '제2의 김추자'가 될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데뷔 때부터 방송에 적합한 외모가 아니라는 황당한 이유로 최정상권의 가수로 각광받기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976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 TBC 가요 톱 텐과 MBC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5회 연속 정상에 오르면서 히트 퍼레이드는 시작되었다.

그 중 처음으로 자신이 작사한 1979년 작 '아리송해'는 KBS 가수왕이란 희열을 안겨주었지만 어수선했던 당대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노래로 오해를 받아 작곡가 이승대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고난을 동시에 준 노래다.

사실 이 노래는 1979년의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가사가 아니라 '밤차'처럼 유행어를 염두에 두고 재미있게 쓴 단순한 가사였다.

1980년에 들어서도 이은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85년까지 '봄비', '한순간', '네가 좋아',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등으로 10대 가수상 단골 수상자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인기의 분기점은 1986년 자신이 작사하고 요절가수 장덕이 작곡한 리듬&블루스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다. 이 노래는 영화 <반칙왕>, 고 최진실 다큐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조성모, 신수경, 4인조 혼성그룹 투투, JK김동욱, 웅산 등 많은 후배가수들에 의해 수없이 리메이크된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의 최고 명곡이지만 처음으로 인기정상에서 멀어지게 한 사연 많은 곡이다.

"가수는 자신의 노래에 따라 인생이 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 이은하의 모든 노래에는 일관된 정서가 흐르고 있다. 떠나간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슬픈 정서다.

실제로 데뷔곡 '임마중'은 돌아오지 않는 옛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겨울장미',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아리송해' 등등 그녀의 모든 히트곡들은 하나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 아프게 노래하고 있다.

그녀가 앞으로는 슬픈 노래보다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밝고 건강한 노래를 부르기를 열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노래가사를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싱글 이은하는 결혼할 뻔 했던 남자친구가 딱 한번 있었다. 1985년 그룹 <이은하와 호랑이들>을 결성했을 때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혼약속을 받아내려 했지만 재떨이로 머리를 맞아 피가 낭자한 모습에 스스로 이별을 결심했다.

이듬해 발표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당시 남자친구와의 이별했던 슬픈 감정을 절절하게 담아낸 자작시였다.

비록 인기 정상에서 멀어진 곡이지만 이 노래가 오랫동안 강력한 대중적 흡입력을 발휘하는 그녀의 최고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한 치의 거짓 없는 절절한 진정성이 발휘한 세대초월적인 공감대일 것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