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콘서트 7080' 300회 특집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는 그 말/ 차라리 듣지 말 것을 애당초 믿지 말 것을/ 사랑한다는 그 말에 모든 것 다 버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너와 내가 맹세하던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 따라 흘렀네~"

6일 저녁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 공개홀. 20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난 듯 무척이나 반갑게 이 노래를 열창했다. 노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 윤항기씨. 그는 블랙 코트와 머플러로 중후한 멋을 내며 <이거야 정말>, <다 그런 가지 뭐>, <친구야> 등을 연이어 부르며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뽐냈다. 그의 동생 윤복희도 빠질 수 없었다. 그녀도 <여러분>,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으로 관객들과 호흡했다. 이들이 30여 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선 건 중·장년층, 즉 7080세대들을 위한 음악회였기 때문이다. KBS <콘서트 7080>의 300회 특집무대이다.

이날 70~80년대를 장식했던 가수 구창모는 <희나리>, <방황>, <모두 다 사랑하리>, <처음 본 순간>,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으로 가수로의 복귀 무대를 가졌다. 양희은은 <아침 이슬>, <작은 연못>, <한 사람>, <아름다운 것들>, <인생의 선물>을, 김수철은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 <젊은 그대>로 흥을 돋웠다.

2004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7년째를 맞은 <콘서트 7080>이 내놓은 상차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300회라는 숫자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 세대 간 문화의 단절시대

"처음 할 때는 6개월에서 1년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7년째 하고 있죠. 이건 우리 세대들이 문화에 얼마나 굶주리고, 방송에서 얼마나 소외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콘서트 7080>의 MC 배철수는 이 프로그램이 300회를 맞은 이유에 대해 씁쓸한 답변을 했다. 한 프로그램이 7년의 세월을 거쳐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했다는 것에 기쁨을 표하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섞인 소감이었다. 그는 이어 "늦은 시간 눈을 비벼가며 잠과 싸우며 TV를 봐주신 시청자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7080세대들이 즐길 만한 문화의 장이 없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이들이 향유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으니 <콘서트 7080>이 장기간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목요일 오후면 여의도 KBS 별관은 중년들의 긴 줄로 장관을 이룬다. 녹화 시작 전 좌석표를 바꾸기 위해 1~2시간 이상은 줄을 선 중장년층의 행렬은 <콘서트 7080>의 인기를 증명한다. 젊은 시절 문화를 대표했던 반가운 대중가수들과의 만남은 이들에게 가슴 설렌 첫 사랑처럼 다가온다.

문제는 이렇듯 중장년층이 제대로 즐길 만한 문화의 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각 지상파 방송 3사에는 10~20대 초반 시청자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들이 즐비하지만, 정작 40~60대 중장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은 찾기 힘들다. 배철수조차도 "나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나의 우상이었던 가수 선배들을 방송을 통해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일들은 기쁘다"고 말했다. 과거 문화를 공유했던 사람들과의 조우가 추억을 되살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양희은도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면 노래보다는 이야기가 더 남는다. 얘기 속에는 세월이 담겨져 있다"며 그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간 <콘서트 7080>에서는 1977년 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샌드페블즈를 비롯해 <꿈의 대화>의 이범용과 한명훈, <화>의 사월과 오월, <눈이 큰 아이> 김만수, <바람아 멈추어다오>의 이지연 등 반가운 얼굴과 노래를 20~30년 만에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추억의 팝 스타 나나무스꾸리, 멜라니 사프카, 보니 엠 등도 출연해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7080세대의 대표 가수인 홍서범도 "우리들이 불렀던 그 노래들은 당시(80년대)에 힘들었던 상황을 살아온, 젊은 시절 탈출구가 없던 곳에 안식처가 됐었다. 노래는 힘든 시기에 대항할 수 있었던 무기였다"며 "이런 것들이 단순히 유행가로 치부되기에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고 <콘서트 7080>이 중장년층에 어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배철수 인터뷰

"우리 세대를 포괄할 만한 프로그램들이 많았으면..."

<콘서트 7080>에는 7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MC 배철수가 있다. 그는 <콘서트 7080>이 단순한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7080세대들이 향유할 만한 '고유의 그 무엇'이라 말한다.

-<콘서트 7080>이 300회를 맞았는데, MC로서 노하우가 있나?

"70~80년대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분들을 최선을 다해 예우해드리고,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나의 역할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MC가 주인공인 것 같다. 출연한 가수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생각하더라. 나는 그런 것에 아주 기분 나쁜 감정을 갖고 있어서 <콘서트 7080>에 출연한 분들께는 최대한 대우해 드리려고 애쓴다."

-문화적으로 소외계층을 끌어안았다는 점에서 <콘서트 7080>의 의미가 특별한 것 같은데.

"특히 KBS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발전시키고 계승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유지하는 것은 잘 시행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우리 세대를 포괄할 만한 프로그램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회가 거듭될수록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은 없나?

"70~80년대 활동했던 우리네 가수들은 <콘서트 7080>에 출연하면 되고, 우리보다 위 선배들은 <가요무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활동했던 젊은 후배들은 출연할 음악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다. 10대 위주의 프로그램에 섞여 있어도 애매한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을 <콘서트 7090> 식으로 그 세대 간의 범위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7080세대로서 젊은 세대들과 음악적 교류를 한다면?

"젊은 PD나 작가 등 20, 30대 친구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보고 '멜로디들이 다들 귀에 익숙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멜로디보다 더 놀라운 건 가사다. 그 시절 노래들을 들으면 어쩌면 이렇게 시처럼 아름다운 가사를 썼을까 싶다. 요즘 가요들은 춤과 함께 들으면 봐줄 만하지만, 가사만 따로 들어보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유치할 때도 있다. 그것에 비하면 7080세대 가요들은 아래 세대들에게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문화를 일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통을 세워야 한다. 미국의 어린 학생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에 나와서 비틀즈나 밥 딜런 등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도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아침이슬>이나 <친구야> 등의 주옥 같은 노래들을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강은영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