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웹 감독의 '내 친구의 소원''죽기 아니면 어른되기'로 성에 매달리는 소년들의 몽정기 소동

15세, 이 시기의 소년들을 장악하는 건, 뜬 구름 잡는 '꿈' 따위가 아닌 펄펄 끓는 '몸'이다. 호기심은 왕성하고, 에너지는 끓어 넘치는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는 주로 '섹스 코미디'라는 장르와 궁합이 잘 맞았다.

대표적인 영화로 할리우드의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 한국에는 <몽정기>를 떠올릴 수 있다. 두 편 모두, "다른 일을 저렇게 열심히 했으면, 아마 나라를 구했을" 만큼 성적 욕망에 대한, 덜 여문 소년들의 집중도와 절박함은 엄청나다.

호르몬과 몸의 영역인 탓에, 유사경험 없이 사춘기를 보낸 여성들은 영화 속 소년들의 갈증을 도통 잘 믿지 못한다. "실제로도 정말 저렇게까지?" 하지만 15세를 거쳐 온 주변의 어른 남자들에게 물으면 하나 같이 비슷한 답이 나온다.

"약간 코믹하게 과장된 면은 있지만, 대부분은 진실"이라는 것. 좀 더 캐물으면, '따끈한 사과 파이'와 '약간 불은 사발면'을 뛰어넘는 엄청난 경험담들이 튀어나온다.

아마 <카핑 베토벤>의 제작자이자 <내 친구의 소원>으로 감독 데뷔에 나선 부르스 웹 감독도 비슷한 열 다섯 살을 거친 게 분명하다. '섹스'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혈기방장한 15세. 감독은 이 뜨거운 시절 위에 죽음의 무게를 얹어 사랑스러운 성장영화 한 편을 내놓았다.

<내 친구의 소원>은 영국의 리버풀을 배경으로 "죽기 아니면 총각 딱지 떼기"를 결심한 한 소년과 그의 단짝 친구가 벌이는 유쾌하고 코끝 찡한 '성인식'을 담아낸다.

리버풀의 15세 소년 로비(조시 볼트)와 지기(유진 번)는 형제보다 가까운 단짝 친구.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지기는 나이에 비해 의젓한 소년이고, 얼핏 보면 지기의 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로비는 외모와는 달리 "한 살만 더 먹으면(16세) 잘 나가는 클럽에서 총각딱지를 떼고 말리라" 벼르는 귀여운 악동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로비의 가족여행에 지기가 동참하고, 소년들은 여름캠프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예쁜 소녀 소피를 만나 정신을 못 차린다. 독한 술을 꺼내들고 짐짓 어른 행세를 하며 소피에게 다가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덜 여문 소년들은 알코올 도수를 이기지 못하고, '어른 되기' 도전에 실패한다. 그렇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 다른 소년들처럼, 어른이 될 내일은 무한할 테니까.

하지만 로비와 지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로비의 예상은 틀렸다. 캠프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쓰러진 로비는 병원으로 실려 간다. 아직 16세가 못 된 탓에 꼬마들과 함께 소아 병동에 입원한 로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로비의 부모님은 입을 닫아버리고, 아무도 로비의 '내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자 그는 지기에게 병원 기록을 훔쳐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엔 뭔지 모르지만, 두려운 글자들이 빼곡하다. 이 글자들이 말하고 있는 건, 로비가 아마 16세 생일을 맞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제 소년들은 절박해진다.

돌이켜보면 사춘기엔 만사가 '절박'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사소한 사건들, 예를 들면 친구와의 다툼, 성적 하락, 지각, 풋사랑 등에 일희일비하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하물며 이 소년들은 눈물 나게 절박할 수밖에.

'어른이 되면'으로 시작하는 모든 상상을 하루아침에 빼앗겨버린 로비와 하나뿐인 친구와 함께 할 시간이 겨우 손에 꼽을 만큼 짧아진 지기. 상상조차 힘든 '죽음'의 무게에 잠시 눌려있던 소년들은 금세 주저 않아 울 시간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마음이 급한 로비는 '소원 목록'을 다시 쓴다. 리스트의 0번은 '총각딱지 떼기'다.

<내 친구의 소원>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섹스에 매달리는 소년들의 몽정기 소동극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이어간다. 병원에 있는 로비 대신, 지기는 학교를 돌며 "내 친구 지기가 죽어가는데 하룻밤만 자 주면 안 될까?"라고 '구인광고'를 하고 다닌다.

물론 돌아오는 건 욕설과 주먹질뿐이지만. 로비의 소원성취는 요원하기만 하고, 지기에게 주어진 하루는 짧기만 하다. 그러던 중, 로비보다 생일이 빠른 지기는 미안하게도 먼저 16세 생일을 맞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60파운드라는 거금을 선물했다.

영국에서 최초로 성매매가 합법화된 리버풀에서 60파운드면, 로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하룻밤을 선물할 수 있는 금액이다. 동시에 밑창이 다 떨어진 낡은 운동화를 버리고 새 운동화를 살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다.

지기는 "나 죽으면 내 운동화 신어"라는 로비의 툭 던지는 말에, 운동화 대신 소원을 택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이뤄지면 '소원'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원 해프닝'은 결국, 촛불로 불을 밝힌 로비의 로맨틱한 병실에서 마무리 된다.

<내 친구의 소원>은 소년들의 성적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삶과 죽음, 어른과 아이,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힘겹게 외줄을 타고 있는 소년들의 내면을 그리는 데 소홀하지 않다. 반대로 죽음이라는 거대한 소재에 눌려, 기껏 쌓아 놓은 유쾌함을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죽기살기로 섹스에 매달리는 소년들의 사랑스러운 몽정기를 보며 함께 웃다가도, 소년들의 솟구치는 에너지 뒤에 깔린 내일을 향한 열망이 슬쩍 들킬 때는 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브루스 웹 감독의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는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영화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드는 건, 막대기를 부러뜨리는 것 같은 툭툭한 리버풀 사투리로 쉴 새 없이 '섹스'를 읊어대는 조시 볼트와 유진 번의 공이 크다. 감독이 "진짜 리버풀의 소년들을 보여주기 위해 3년간 리버풀을 뒤져 찾아낸 신인"들의 얼굴을 주목할 것. 곧 '할리우드를 점령한 영국의 뉴 페이스' 등의 기사에서 그들을 보게 될 듯하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