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맥그라스 감독의 '메가마인드'] 꼬리에 꼬리 무는 패러디와 한층 높아진 3D 기술력… 내공 엿보여

할리우드가 '바른생활 슈퍼히어로'들에게 흥미를 잃은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최근의 가장 인상적인 슈퍼히어로의 면면을 떠올려 보면 이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낮엔 부잣집 망나니 도련님 행세를 하다가 밤에는 자경단으로 돌변하는 배트맨, 아예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이 철갑옷을 두르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아이언맨 혹은 술주정뱅이 사고뭉치 핸콕, 인간의 손에 자란 악마의 후예 헬보이 등등 다들 한 성질 하는 삐딱이들이다.

건실한 영웅의 대표주자 슈퍼맨이 오랜만에 2:8 가리마를 곱게 빗어 넘기고 컴백했지만, 안티 히어로들의 경쟁상대가 되진 못했다. 애니메이션 쪽도 대세는 비슷하다. 오죽하면 '착한 애니메이션'의 성지 '디즈니 & 픽사'조차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를 살짝 비튼 <인크레더블>을 만들었을까. 하지만 부동의 애니메이션 강자 '디즈니 & 픽사'에게도 흔치 않은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태생적인 삐딱이 기질이다. 이 분야에선 단연 드림웍스가 승자다.

오랫동안 '디즈니 & 픽사'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2인자 취급을 받았던 드림웍스의 자존심을 세워준 이가 바로 초록괴물 슈렉이었다.

2001년 <슈렉>으로 '삐딱이 히어로'의 가능성을 확인한 드림웍스는 <슈렉> 시리즈와 함께 <마다가스카> <쿵푸팬더> <몬스터 vs 에이리언> <드래곤 길들이기> 등 영웅이 되기엔 한참 부족한 '하자 히어로'들에게 사랑을 쏟아왔다. 1월 13일 개봉한 <메가마인드>는 드림웍스의 귀여운 삐딱이 기질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메가마인드>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한 명은 정통 슈퍼맨의 DNA를 타고난 '메트로 맨'(브래드 피트), 또 한 명은 덜 떨어진 카메라맨이었다가 얼결에 능력을 갖게 된 '타잇탄'(조나 힐) 그리고 역삼각형 대두와 빼빼 마른 푸른 몸의 소유자로 딱 보기에도 악당 같은 '메가마인드'(윌 페럴)이다.

보통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면 당연히 메트로 맨이 타잇탄과 협공으로 메가마인드를 무찔렀겠지만, 이건 드림웍스의 영화다. 그러니 진짜 주연은 '메가마인드'일밖에. 사실 '메가마인드'도 악당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고향 행성에 갑작스레 위기가 찾아오고, 부모는 어린 그를 살리기 위해 물고기 친구 '미니온'(데이비드 크로스)과 함께 캡슐에 넣어 안전한 푸른 별 지구로 보낸다. 문제는 그와 똑같은 이유로 지구로 보내진 외계인 '아기 메트로 맨'이 훨씬 호감형이라는 사실. 운 없는 녀석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가뜩이나 비호감 외모의 아기 메가마인드는 흉악범 감옥에 떨어져, 조기 악당교육을 받는다.

비상한 두뇌의 메가마인드는 수많은 '범죄자 아빠'들에게 나쁜 짓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우수한 악당으로 성장한다. 그림자가 있으면 빛도 있어야 하는 법. 좋은 집안에서 착하게 자란 메트로 맨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슈퍼히어로로 자라 사사건건 메가마인드와 시비가 붙는다.

이미 캐릭터 설정만으로도 드림웍스의 패러디가 불을 뿜는다. 메가마인드는 착한 영웅의 대표주자 '슈퍼맨'의 탄생과정을 고스란히 빼다 박았지만, 외모가 <화성침공>의 우주인인 탓에 외롭고 삐딱한 악당이 된다. 빨간 머리에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카메라맨에서 타의에 의해 초능력을 얻은 '타잇탄'에게선 '스파이더 맨'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초강력 왁스를 바른 양 흐트러짐 없는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메트로 맨은 딱 봐도 '생각 없는 슈퍼맨'이다. 기존의 슈퍼히어로 설정에서 작정하고 하나씩 나사를 풀어버린 듯한 캐릭터들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패러디 코미디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계기로 메트로 맨이 엉뚱한 자아 찾기에 몰두하면서, 메가마인드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싸워야 할 영웅이 사라진 악당만큼 할 일 없는 인물이 또 있을까.

역할을 상실한 메가마인드의 묘책은 자신과 싸워 줄 또 다른 '착한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그의 계획은 보기 좋게 엇나간다. 착한 영웅이 되라고 능력을 주자마자, 자격지심 덩어리였던 타잇탄이 "나를 두목으로 모셔야 한다"며 메트로시티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 졸지에 악당 역을 빼앗긴 메가마인드는 은둔한 메트로 맨을 찾아가 "제발 착한 영웅으로 돌아와 달라"고 사정하지만, 남은 평생을 '음악인'으로 살고 싶다는 메트로 맨의 굳은 심지를 꺾지 못한다. 메가마인드는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착한 짓을 해야만 한다.

이미 선배 '슈렉'이 보여줬던 것처럼, 메가마인드 역시 태생이 나쁜 녀석이 못 된다. 외면의 괴팍함 때문에 내면의 선함을 조금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삐딱이'의 대단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익숙한 전개에 살짝 실망할 수도 있지만, <메가마인드>는 잠시도 비틀기와 패러디를 멈추지 않는다.

슈퍼히어로 영화팬들이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패러디의 흔적을 발견하며 킬킬거리다가 엔딩을 맞이할 것이다. 이 정도면 드림웍스의 비틀기 내공을 인정할 만하다.

3D 기술력도 한층 내공이 깊어졌다. "우리도 3D 실력은 누구에게도(아마 픽사겠지만) 뒤지지 않는다"고 외치는 듯한 공중전 3D 기술을 선보였던 <드래곤 길들이기>에 비하면 <메가마인드>의 3D는 꽤 점잖은 편이다.

오르락내리락 관객을 롤러코스터 태워야 할 지점에선 확실하게 서비스하면서도, 두드러지는 3D 보다는 공간의 깊이와 질감에 공을 들였다. 캐릭터에 꼭 맞아 떨어지는 목소리 연기도 <메가마인드>의 강점이다. 심통 난 어린애 같으면서도 의외로 다정다감한 윌 패럴의 목소리는 애정결핍 안티히어로 메가마인드에게 맞춤 옷 같다.

특히 단단하고도 어딘지 맹한 브래드 피트의 목소리는 한량 히어로 메트로 맨과 환상궁합이다. 전반적으로 드림웍스의 내공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머지않은 언젠가 애니메이션 세계에 대역전극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