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앓이', '라임앓이', '시가앓이'. 온라인 세상에 '00앓이' 열풍을 일으킨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 그런데 이 드라마가 심상치 않다. 끝맺음의 시간이 다가오자(잡지 발간 시점에는 드라마는 종영) '결말 궁금증'으로 또 한 번 인터넷이 시끄럽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는 궁금증은 알 권리를 앞세운 언론의 스포일러식 기사들을 양산해내며 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시청자나 네티즌이 원하는 결말은 바로 해피엔딩. 그러나 지난 8일 <시크릿 가든> 17회에서 길라임이 스턴트 연기 중 자동차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자 '길라임이 결국 죽는 아니냐'며 드라마 홈페이지는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와 네티즌의 관심이 낳은 결과였다.

'사태'가 이쯤 되니 온라인 영화사이트 맥스무비는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시크릿 가든>, 당신이 원하는 결말은?'이라는 설문조사까지 실시했다. 그 결과 '해피엔딩'이라고 응답한 네티즌이 전체의 87.5%(2293명)였다. 제작진에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달라",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새드엔딩일 것 같은 조짐조차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대중의 반응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마치 새드엔딩에 대해선 본능적으로 '결사반대'를 외치는 듯하다. 왜 우리는 드라마의 새드엔딩에 겁을 내는 것일까. 드라마는 드라마인데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가.

모두 다 해피엔딩?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총 21개이다. 한 방송사에서 1년 동안 방영하는 드라마만 15~20개다. 일주일 동안 미니시리즈와 아침, 일일, 주말 드라마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방송된다. 그야말로 우리는 드라마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들의 공통점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해피엔딩, 즉 행복한 결말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0~40% 이상의 시청률을 보이는 인기드라마들에 대한 결말은 더욱 높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새드엔딩이 예상되기라도 한다면, 네티즌의 '참여의식'은 최고조에 달해 해당 드라마의 홈페이지 등을 다운시키기 다반사다.

<시크릿 가든>의 경우도 마찬가지. 회를 거듭할수록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배가됐다. 자칫 주인공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내비칠라치면 홈페이지 게시판은 물론 미투데이나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고리들은 드라마를 가만 놔두지 않고 사정없이 공격한다. '해피엔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몇몇 제작사와 작가, 연출자들이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며 해피엔딩으로 타협한다.

세경(사진 왼쪽)과 지훈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뒷이야기를 남겼다.
실제로 몇몇 드라마들이 초기 기획의도와 달리 결말을 수정하거나 변경했다. MBC <원더풀 라이프>(2005년)는 극중 아역 신비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결말이었으나, 네티즌의 '신비 살리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골수기증자를 찾아 생명을 구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의 저자이자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한국문학연구소의 박노현 연구원은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 개인은 이런 기대가 무너진다면 드라마 흐름에 참여하는 형태인 '정서적 저항'을 표출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많은 TV드라마가 새드엔딩보다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해피엔딩에 목을 맬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인기드라마들이 '철통보안'이라는 이름으로 결말을 비밀에 부치는 전례가 생겨버렸다. 결국 많은 드라마가 해피엔딩을 보이고 있지만, 대중은 새드엔딩 강박증 환자처럼 날을 세운다.

박 연구원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인물에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등장인물의 행복을 '기원'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시청자 자신의 현실적 삶이 고될지언정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등장인물의 상상적 삶은 아름답게 형상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시청자는 드라마를 통해 일종의 정서적 위로를 받길 원한다는 의미다. 자칫 동경의 대상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해를 입기라도 한다면 심리적 기대가 달성되지 못한 불안한 상태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해피엔딩에 대한 욕구가 새드엔딩을 훨씬 앞질러 가기 때문이다. 새드엔딩의 아쉬움은 대중의 현실적 도피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때문에 간접 세상(드라마)의 해피엔딩은 분명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래도 새드엔딩이 있어 즐겁다?

"결말은 우선 간결해야 한다. 엔딩에 가서 질척거리면 감동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 결말은 인상적이며 여운이 남아야 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은 언제까지 그 드라마의 테마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심지어 드라마 내용은 다 잊어버려도 엔딩만큼은 선명히 각인되는 경우도 많다."

(장기오 저)에는 엔딩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운이 없는 결말은 죽은 드라마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의 결말은 예측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에도 우리는 결말에 대해 먼저 알고 싶어 하고,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뜻밖의 결말이 도출됐을 땐 강한 여운 속에 작품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지난해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은 새드엔딩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코믹적인 설정과 웃음을 담보로 한 시트콤에서 슬픈 결말을 냈다는 것은 TV와 시청자에 대한 도전이었다.

극중 식모였던 세경(신세경 분)이 짝사랑했던 지훈(최다니엘 분)에게 차로 공항까지 배웅을 받으며 끝이 난다. "다 왔나요? 아쉽네요. 이렇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라는 세경의 대사. 이들은 빗길 교통사고로 사망한 듯한 여운을 남기며 시청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또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의 무혁과 은채, MBC <다모>(2003년)에서 채옥, 성백, 윤, MBC <하얀 거탑>(2007년)의 준혁, SBS <발리에서 생긴 일>(2004년)에선 수정, 인욱, 재민 등 주인공들의 죽음은 비극적인 결말을 맺음으로써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계기가 됐다.

이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정서적 저항 즉 해피엔딩을 요구하는 저항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 그러나 대중은 새드엔딩의 차분한 여운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외친다. 해피엔딩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박 연구원은 "TV드라마의 멜로드라마적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한 결말은 TV라는 매체가 지닌 '공공'과 '공익'에 대한 강박과 평균적 시청자의 '행복'과 '웃음'에 대한 선호가 결합하여 고착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TV가 공공을 위한 윤리적 측면과 시청자 개인을 위한 정서적 측면에 모두 부응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TV의 이런 관습이 우리에게 행복한 결말을 자주 선보임으로써 익숙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TV드라마의 해피엔딩에 대한 고집은 장르적 다양성의 부재를 낳을 수 있다"며 "드라마도 예술작품 중 하나다. 무분별한 해피엔딩이 창조적인 실험정신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