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한 날것 그대로의 젊은 감성[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넬(NELL) 1집 Reflection of Nell (2001년)CD가 음반 경매에서 30만원에 팔려

디지털 음원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음반을 소장하던 시대에서 소비하는 시대로 변했다. 최근 발매되는 CD들은 과거와는 달리 500~1000장, 때론 200장 정도의 소량 발매가 대세다. 그래서 짧게는 몇 개월 만에 신보가 절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CD는 발매 후 구매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해야만 소장할 수 있는 초스피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무료 디지털 음원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버글대는 시대에 거금을 들여서라도 좋은 음반을 소장하려는 젊은 애호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최근 온라인 음반경매의 뜨거운 감자는 LP에서 CD로 옮겨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생성된 LP경매의 뜨거운 열기는 신중현 사단의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 음반을 무려 280만 원에 낙찰시켰다.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인 LP는 오랜 세월의 때가 끼어있으니 그렇다 쳐도 상대적으로 발매 연도가 얼마 되지 않은 CD까지 경매의 대상이 될 줄은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

최근 한 인터넷 음반포털에서 운영하고 있는 CD경매에서 모던록 밴드 NELL(넬)의 1집 미개봉 음반이 30만 원에 낙찰된 사실도 경악스럽다. 지금까지 온라인 CD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음반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5만~10만 원을 넘는 희귀고가 CD의 숫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발매된 NELL 1집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 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으로 회자되어온 희귀음반이다. 이 앨범은 재발매가 되지 않아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초희귀 국내 대중가요 CD들 중 하나다.

사실 1집 수록곡 중 '믿어선 안될 말', '어차피 그런 거' 같은 노래는 3집에 더욱 하드하고 깔끔한 사운드로 재 편곡버전이 수록되어 폭넓은 대중성을 담보했다. 솔직히 1집보다 최근 음반의 수록곡들이 녹음 질감이나 편곡 자체가 훨씬 더 세련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왜 인디밴드 시절의 미완의 사운드가 담긴 NELL 1집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NELL 1집은 국내 대중음악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가 앨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인상적인 트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대중에게 딱히 기억되는 히트곡도 없고 녹음도 최상이 아니다. 리더 김종완이 창작한 총 10곡의 수록곡도 젊은 날의 상처받은 사랑, 이별, 슬픔, 불신, 시련, 두려움, 아픔, 두려움, 외로움, 괴로움, 좌절, 눈물로 온통 우울하게 덧칠되어 있다.

도대체 밝은 기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 앨범은 일부 애호가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상업적 실패는 결국 소량 제작에 머물게 했다. 하지만 인기를 의식한 과잉적인 감정표현이 아닌 절제의 미학을 구사하는 맑고 아름다운 미성의 보컬은 그 자체로 더욱 슬프고 중독성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진중하게 음악을 듣는 청자들을 깊은 상념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고교 동창생 스쿨밴드로 음악을 함께 시작한 김종완과 이재경, 이정훈, 정재원으로 구성된 4인조 라인업의 모던 록밴드 NELL은 세기말인 1999년에 태동했다. 이후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3집부터 서태지컴퍼니에 둥지를 틀며 전기를 마련했다.

2008년 발표한 4집 'Separation Anxiety'는 대중적 입지를 굳힌 결정체다. 특히 중독성 강한 감성적 멜로디가 압권인 수록곡 '기억을 걷는 시간'이 들려주는 놀라운 감성은 평단과 청자들로부터 공히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해 제23회 골든디스크상 록상, Mnet KM 뮤직페스티벌 록 음악상 수상은 그 결과물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디밴드에서 음악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유명 밴드로 성장하자 전혀 조명도 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1집은 뒤늦게 재평가되며 수요가 급증한 케이스다.

앨범 자체가 희귀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CD가격을 넘어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이들의 칙칙하지만 투명한 날 것 그대로의 젊은 감성은 2000년대가 배출한 한국 대중음악의 저주받은 걸작으로 대접받는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