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대중의 보상심리… 연예인은 셀러브리티가 아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현빈
21세기 한국은 바야흐로 셀러브리티의 시대다. 셀러브리티는 말 그대로 유명인사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20세기에 비하면 셀러브리티의 의미망은 한층 광범위해졌다. 그들의 전문분야인 연기, 노래, 춤 등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될 뿐만 아니라 셀러브리티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까지 당당히 요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김주원의 폭발적인 유명세로 인해 김주원이라는 캐릭터가 각인시킨 사회지도층의 윤리는 그를 연기한 배우 현빈의 실제 캐릭터로 절묘하게 전이되었다.

해병대 입대라는 그의 개인적 선택은 곧바로 진정한 사회지도층의 모범으로 해석되었고, 유명배우가 셀러브리티의 역할은 물론 사회지도층의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의 해병대 자원 입대 결심이 9시 뉴스에서까지 대서특필되면서 대중은 그동안 유명인사의 각종 군입대 비리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한 기이한 환상을 체험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배우 현빈은 드라마 속 완벽한 CEO 김주원이 아니고 셀러브리티는 사회지도층의 역할까지 굳이 자임할 필요가 없다. 21세기 한국 대중문화에서 셀러브리티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셀러브리티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대중 심리에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기존에 일반적인 사회지도층으로 불려왔던 계층-정치인, 교육자, 고위층 인사 등등-이 대중에게 안겨준 분노와 실망에 대한 어긋난 보상심리가 셀러브리티에게 투사된 측면이 강하다.

셀러브리티의 신변잡기를 소재로 삼는 예능 프로그램
우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한 설명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그토록 아름다운 사회지도층의 윤리를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

유명인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데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르지만, 최근에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마치 셀러브리티가 '나도 한 마디'쯤은 해야 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들의 발언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해당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을 제치고 셀러브리티가 단지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발언권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저널리즘에는 문제가 많다. 강력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이슈는 대부분 해당 문제에 대해서 몇 십 년 동안 전문가로서 활동해온 사람들에게도 풀리기 어려운 난제가 아닌가.

너도 나도 셀러브리티가 되고자 하는 과열된 욕망의 도가니 속에서는 셀러브리티가 단 한 번이라도 개인적 실수를 했을 경우에는 그가 받은 대중의 사랑보다 더욱 치열한 '안티'가 생성되는 엄청난 부작용이 따른다. 스캔들, 악플, 안티팬 등은 셀러브리티가 감내해야 할 너무 커다란 기회비용이다.

레드 카펫을 밟을 때마다 워스트 드레서로 꼽히는 불운을 겪지 않기 위해 매번 신경이 곤두서는 일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 자유 자체를 박탈당하는 것 자체가 셀러브리티의 고통일 것이다. '민낯'을 거의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졸업사진은 물론 가족사진까지 낱낱이 공개됨으로써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첫사랑 찾기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한 예능 프로그램
무엇보다도 셀러브리티 중심의 대중문화로 인해 대중매체의 문화컨텐츠 자체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예능'이라는 새로운 장르구분법이 생겨났고, 모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중심에 '예능'이 자리잡게 되었다.

'예능감'으로 지칭되는 셀러브리티의 대중흡입력은 성공한 오락 프로그램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자신의 집 인테리어까지 속속들이 공개하는 연예인이 연일 화제가 되는가 하면, 특별한 화젯거리가 없어도 단지 유명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가 검색어 순위에 랭크된다.

게다가 연예인이 아닌 유명인사들까지도 일종의 '예능감'을 요구받고 '화면발'이 잘 받는 '비주얼용' 이미지를 요구받게 되었다. 동안(童顔) 콤플렉스가 셀러브리티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급속하게 유포되었다. 게다가 신입사원이나 취업준비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 1위가 '외모 콤플렉스'가 될 정도로 사람들의 눈높이는 연예인'스러운' 얼굴 크기와 연예인'다운' S라인 바디에 맞춰지게 되었다.

셀러브리티 중심의 사회에서는 '일반인이 일반인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변화시켜버린 것이다.

셀러브리티가 본의 아니게 대중을 향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여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방송인 모씨가 어린 시절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 그녀를 찾는다는 이유로 그녀의 여동생의 사생활까지 침해받고 홈피가 폐쇄된 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명인의 개인적 관심이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도 문제다.

도박이나 군입대 비리, 마약 흡입, 학력 위조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에게 과도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 또한 '정의로운'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의 잘못은 크지만, 그들에게 무턱대고 사회지도층의 윤리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셀러브리티에게 과도한 대중의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 그럼으로써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그 중에서도 스캔들을 비롯한 각종 부정적인 사안에 이목이 집중되도록 만드는 저널리즘의 보도 관행이 유지되는 한 대중의 무한 파파라치화를 막을 길은 없다.

무엇보다도 셀러브리티에 대한 과잉된 열정이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상처는 바로 평범한 삶의 의미를 초라하게 퇴색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유명인'과 '일반인'으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유명인사들은 평범한 삶의 소박함을 누리기 어려워졌고, 보통 사람들은 유명인사가 누리는 화려한 삶의 겉모습만 우러러보느라 자신이 가진 진정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망각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명인사들이 어떤 값비싼 아이템을 소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대중들에게 곧바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소비를 외칠 수 있겠는가.

유명인사들도 자유롭게 거리에서 연애를 하고, 까페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할 수 있는 사회. 사람들이 스타들의의 집이나 자동차나 인테리어를 보고 한숨짓지 않는 사회. 스타가 되는 것이나 유명해지는 것이 인생 목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더욱 열심히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꿈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사회. 그런 사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세상은 어느 때보다도 소란스럽게 셀러브리티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삶을 꿈꾸지는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유명해진다는 것의 달콤한 유혹만큼이나 유명해진다는 것의 위험을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회. 유명함의 가치가 평범함의 가치를 갉아먹지 않는 사회. 대단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인정받는 사회. 그런 사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