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 된 '연속극 만능주의' 속 단막극 활성화 시급해

'한국 드라마 발전을 위한 단막극 활성화 방한' 토론회
"드라마는 문화산업의 핵심이다."

한류 바람과 더불어 이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드라마가 갖는 부가가치는 이제 '두 말 하면 잔소리'인 시대가 됐다. 드라마는 우리네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일상의 연속이다. 드라마 없이 하루를 보내라면 환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지금 TV 드라마의 구조는 너무 획일화돼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지적에 드라마가 근본찾기에 나섰다. 미니시리즈와 일일극 등의 모태와 뿌리에 해당하는 단막극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에서다.

단막극은 드라마의 '고향'이자 '어머니'라고 한다. 방송사와 작가, PD, 외주제작사 등은 단막극을 만드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사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막장'으로 얼룩진 드라마의 현실을 보듬어 줄 곳도 단막극이다. 이제 단막극이 설 자리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차례다.

왜, TV단막극은 찬밥신세가 됐나

KBS 드라마 스페셜 <특별수사대 MMS>
"이게 모두 연속극의 만능주의 탓이다."

2월 2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선 한국 드라마와 단막극에 대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KBS와 MBC에서 각각 24편(드라마스페셜)과 5편(일요드라마극장)이 방영된 이후 단막극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한국방송작가협회와 한국PD연합회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후원해 마련한 <한국드라마 발전을 위한 단막극 활성화 방안>의 토론회 자리에서다.

발표자로 나선 송담대(방송영상학부) 오명환 교수는 "지상파 드라마의 생산구조는 '연속극 패권주의'로 통일되고 있다. 많은 횟수와 시간에 비해 품종이 적은 이른바 '소품종 장시간'이라는 시장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막극은 실종된 채 '연속극 만능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는 "'연속극 양산'과 '연속극 편식'은 드라마 공급원의 다원성을 저해한다"며 "이는 제작환경의 질서를 교란하고 왜곡하며 결국에는 단막극의 자리를 탈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MBC 베스트 극장 <달수시리즈>
오 교수는 '단막극의 새로운 3적(敵)'이 등장해 방송사가 단막극을 등한시했다고 꼬집었다. 몸집이 불어난 자체 연속극, 단막극 운용에 있어서 '구습과 재래'로의 퇴행, 드라마 전문채널의 범람이다.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는 일일극 40분, 주간극 80분 체제이다. 미니시리즈가 '미디시리즈'이자 '롱 시리즈'가 된 지 오래이고 연속극 길이와 횟수의 비만증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주간 연속극 한 회당 7분씩만 할애하면 단막극 한편이 생긴다"는 오 교수의 말은 괜한 게 아니다.

또 지금의 단막극은 '신예, 신형, 신개념'보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단막극이 아니라면 그 어떤 누구도 만들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드라마 전문채널이 많아지면서 채널 간의 치열한 경쟁이 지상파를 위축하고 단막극의 희소가치를 소멸시킨다. 미드(미국드라마)와 일드(일본드라마)의 등장은 더욱 단막극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현실적으로 단막극이 찬밥 신세가 된 건 '3저(低) 현상'이 심화되면서다. 지난 2007년 MBC <베스트극장>이 사라지고 그 이듬해는 KBS <드라마시티>까지 폐지됐다. 이유는 시청률, 판매율, 수익률이 모두 낮아서다. 돈은 들어가는 데 효율이 없으니 생산을 중단한다는 건 당연한 논리이다. 하지만 단막극이 없는 방송현실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각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단막극은 신인 작가와 PD, 배우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무대이자, 인재를 발굴·육성할 수 있는 초석이다. 그러나 이를 차지하고라도 지금 범람하는 연속극 드라마 내용의 문제를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막장' 코드가 전 드라마에 감염돼 수술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충남대(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예전 MBC <달수 시리즈> 같은 좋은 단막극이 절실하다"며 "모든 지상파 드라마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면서 드라마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있다. 드라마의 다양화가 시급하다. 그래서 더 단막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막극의 정기 편성 및 활성화 방안은 없나

한국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각각 20억 원과 10억 원을 단막극 육성사업에 투자한다. 단막극의 필요성에 대해 정부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단막극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나마 KBS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뿐이다.

한국드라마PD협회 간사이자 KBS 드라마국 이강현 EP는 "6월쯤 단막극을 방영할 예정"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단막극을 위해 3명의 전담 프로듀서까지 두었다고 한다. KBS는 올 초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로 4부작짜리 <특별수사대 MMS>와 8부작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속방영했다. 하지만 아직 편성 확정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단막극을 단편적으로 편성할 게 아니라, 꾸준하게 볼 수 있는 장치는 없을까?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금림 부이사장과 단막극제작사 브로드스톰 이교욱 대표 등은 "방송사들이 시청률 위주의 편성에 너무 목매지 말고 단막극 시간대를 내어달라"고 요구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단막극 편성시간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에서 단막극을 방영하면 타 방송사에선 '킬러 콘텐츠'를 내세우는 식의 경쟁구도를 접고, 서로 타협해 단막극 편성에 무게를 실어달라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이기도 한 이금림 부이사장은 "최근까지 단막극은 주로 심야 시간에 편성됐다. 그러면서 방송사들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청률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시청자에게도 '막장'이 아닌 다양한 드라마를 시청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도 단막극 활성화에 대한 '오픈 시스템'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오픈 드라마의 시도, 공모의 활성화, 다매체 롱 테일 유통 확장, SNS의 활용, 단막 페스티벌 활성화 등이다. 또 '그린존'과 '블루존'을 설정해 주1회 방영하자는 것이다. 순수 단막극을 위한 '그린존'과 주간 단막극의 '블루존'을 설치해 드라마 생태계를 유지하자는 발상이다.

주간 단막극은 <수사반장>이나 <종합병원> 등과 같은 '시추에이션 드라마'를 만들어 연속극과 단막극 형식의 장점을 융합하면 된다. 현재 미국은 시추에이션 극과 시즌제를, 일본은 주간 단발물과 연부작이 주축이다. 그러나 우리 드라마는 70분 이상의 연속극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시대에 퇴보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잘 만들어진', '작품성 있는' 단막극이 절실하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CP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며 "단막극 활성화는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드라마를 만드는 데 400여 명이 필요하다면 3개월간 12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