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이 쓴 출간… 기성 사회와 교차점 모색

미국 게이들의 연애와 라이프스타일을 유쾌한 감성으로 풀어낸 드라마 <윌 앤 그레이스>
한국에서 게이(gay)는 실체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선정적 언론의 가십성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이들은 이성애가 지배하는 사회에 하나의 판타지로서 오랫동안 독특한 성 문화의 자양분이 됐다.

'호모'라는 부정적 단어로만 존재하던 이들이 현실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체현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최근 몇 년간 게이문화는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산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패션계를 이끌어온 게이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미드'를 통해 자연스레 시청자의 인식 안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트렌드세터의 자격 기준에 '게이 친구'라는 항목이 등장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일부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게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 지난해 한 보수단체가 일으킨 '게이 나오는 드라마 보면 게이 된다' 소동은 이 같은 사회 내부의 지체된 인식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의 대중문화에서 보이는 게이들이 단지 하나의 성적 기호로서 얕게 소비되는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사회에서 게이는 여전히 종이나 화면 안에 머물 때만 용납되는 존재다. 물론 이를 주관하는 것은 이성애자들이다.

이성애자들의 이 같은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대개 게이들에 대한 무지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오해들을 만들어낸 것 역시 이성애자들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무지와 오해로 풀고 두 성적 커뮤니티가 공존할 수 있을까.

드랙퀸을 능가하는 과도한 스타일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게이들의 아이콘이 된 셰어
최근에 발간된 <게이컬처홀릭>(씨네21북스)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게이문화 안내서이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무엇보다 게이들 자신이 쓴 게이문화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멤버들이 주축이 된 편집위원회는 2년간의 취재와 자료 조사, 회의를 통해 다양한 게이문화 상식들과 인권, 라이프 스타일을 망라하는 책을 만들었다. 편집위원회 관계자는 "상상과 짐작에 의해 왜곡된 모습으로 다루어지는 게이와 게이문화가 아니라 현실의 게이문화를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책은 처음부터 게이문화가 종로3가의 뒷골목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며 기성사회와 교차점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게이문화에 대한 담론은 대개 '동성애의 역사와 오해'나 '성 소수자 제 몫 찾기' 등의 인권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반면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이성애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누려왔던 동성애적 예술과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 각 분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책에 참여한 외부 필진들은 엄정화와 김추자의 노래를 한국의 게이 음악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왕년의 뮤지컬스타 주디 갈란드를 비롯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카일리 미노그, 마돈나 등을 '게이 아이콘'으로, 안소니 퀸을 영화사 최초의 '게이 카우보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들은 <퀴어 애즈 포크>나 , <윌 앤 그레이스> 등 '미드'에서 시청자를 유쾌하게 했던 캐릭터들은 모두 게이였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돌체와 가바나, 마크 제이콥스 등 현대 패션계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사례를 들며 세련되고 멋스러운 게이문화를 일별한다.

전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역시 게이들이 이야기하는 게이들의 문화에 관한 부분이다. '자경궁 박씨', '기즈베', '몽', '성치', '마님' 등 다양한 연령층의 게이들이 가감없이 나누는 대화는 게이들의 생각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책에서 따로 정리해두긴 했지만 게이들이 쓰는 은어와 관련 이슈들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적절히 묘사되고 설명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게이컬처홀릭>을 통해 편집진이 바라는 것은 이성애자들이 다양한 만큼 동성애자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다양성'에 대한 희망이다. '언론이 본 게이'를 역으로 해석한 '게이가 본 언론'에서는 언론이 그동안 게이들의 일면을 부각시켜 어떻게 왜곡시켰나를 잘 드러내준다.

화려하고 멋진 유명인사 게이도 있지만 현실세상에는 장애인 게이, 지방 거주 게이, 이주 외국인 게이, 그냥 못생긴 게이 등 커뮤니티 안에서도 소수자인 게이들이 더 많다.

편집진은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게이들의 모습은 또 하나의 전형성을 만들어내며 오히려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퍼뜨리고 있는 것 같다"며 "차이가 차별이 아닌 다양성으로 인식될 때 게이로서의 삶과 문화는 보다 풍성해질 것"이라고 제안한다.


동성애적 감성이 최초로 전면에 드러난 영화 <워락(Warlock)>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