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방송 3번 만에 PD경질, 김건모 '자진 하차'선언, 프로그램 잠정 중단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도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 원래 성경의 한 구절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문구다. 그런데 최근 세간의 도마에 오른 MBC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를 보면 이해가 될 터.

지난 6일 첫 전파를 탄 이후 방송 세 번 만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것도 이 프로그램을 만든 MBC 김영희 책임프로듀서(CP)의 경질과 구력 20년 가수 김건모의 '자진하차' 선언, 프로그램의 잠정 중단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시작은 너무도 거창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바람에 가장 먼저 편승한 MBC가 야심 차게 내놓은 밥상은 '나는 가수다'였다. 김영희 CP가 단독으로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고, 그 이후 충남 예산까지 가서 가수 이소라와 함께 또 한 번 간담회를 치렀다.

언론을 이용한 마케팅은 '나는 가수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더욱이 실력파 가수 김건모를 비롯해 이소라,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 백지영, 정엽 등 실력파 가수들이 '탈락'이라는 쓴 잔을 기울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MBC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
"그 가수들의 '대단한' 자존심을 공개적으로 꺾는다고?"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한 예능 작가. 그의 말은 적중했다. 그 자존심은 규칙(7위를 한 가수는 탈락)을 위반하는 구실을 만들었고, 청중평가단 500명의 뜻을 무시했으며, 더 나아가 시청자들을 우롱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이로써 '김영희CP의 천하'는 3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런데 여전히 그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용감했다, 그러나 소심했다

"단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바란 MBC의 기획은 오래가지 못할 것"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주창윤 교수는 MBC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장식하자, 이 같은 경고를 한 적이 있다. 주 교수는 안전주의에 입각한 창작 프로그램의 이기주의는 결국 폐망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MBC가 검증된 시스템에만 안주하려 한다면 드라마, 쇼ㆍ오락, 뉴스 등이 다 무너질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서바이벌과 오디션이 대세라고 하자 지상파 방송에서 MBC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MBC <위대한 탄생>과 <우리들의 일밤>(이하 일밤)에는 '나는 가수다'와 '신입사원'을 편성했다. 아주 노골적인 처사였다.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 '1박2일'과 SBS <일요일이 좋다-러닝맨>에 맞서 빠른 성과를 올려야 했다. <일밤>은 근 2년간 시청률이 평균 시청률이 한자릿수였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지 않으면 <일밤>의 존폐 자체가 위험했으니까.

'오늘을 즐겨라'와 '뜨거운 형제들'로 재기를 노렸던 <일밤>과 김영희CP는 결국 서버이벌 오디션을 선택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다. 4~5%대의 시청률이었던 두 코너였지만 새로운 시도는 박수를 받을 만했다. 현재 <일밤>이 10% 내외로 선전했지만 그나마도 어렵게 됐다.

MBC는 한 달간 '나는 가수다'를 잠정 중단을 선언했으며, 출연 가수들도 선뜻 다음 출연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3주 만에 두 배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말이다. 단기적 안목으로 안일한 기획을 하지 않았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주)큐브 엔터테인먼트의 홍승성 대표는 "기획 초반부터 가수들에게 제대로 된 뜻을 전달했는지가 궁금하다"며 역시 그 첫 단추에 대해 언급했다.

"이소라, 세 번의 눈물과 세 번의 녹화 중단이 있었다."

이 때부터 문제는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지난 3일 충남 예산에서 진행한 '나는 가수다' 두 번째 간담회 자리에서 김영희CP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인즉, 이소라는 첫 녹화부터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과 그로 인한 스튜디오 이탈 등 감정의 기복으로 녹화를 중단시키기도 했다는 것. 사전에 공지했을 탈락이 가수들에게 이토록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김CP는 프로그램 제작 두 달여 전부터 가수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설득 아닌 설득을 펼쳤다. 출연 가수들의 기획사들은 대부분 "기획의도가 참신했고, 가요계를 위해 필요"하다며 출연을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에 반영된 출연 가수들의 반응을 보면 사전 공지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아하다. 탈락한다는 시스템을 알면서도 자존심의 날을 세웠다. 김영희CP가 김건모에게 재도전을 준 이유를 "시청자 역시 충격을 받을까봐"라고 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은 의연했다.

김건모의 탈락이 다분히 가요계의 탈락이 아님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의 행운과 무대 매너가 중요한 변수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알 일이었다. 자존심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수들의 행동이 시청자들에겐 더 불편하게 보였으리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작진의 '큰' 실수였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말한 한 지상파 방송 예능PD의 말처럼 내로라하는 가수들로 채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그럴싸했다. TV화면에서 들려주는 이소라, 박정현, 김범수, 백지영 등 일곱 명 가수들의 무대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감동을 이어가는 방법이 구식이었다.

감동을 차단하는 개그맨들의 등장, 잦은 대기실 화면, 출연자들의 독백 메시지 등은 불필요한 장치였다. 너무나 많이 봐왔고 지루한 설정이었다. "차라리 노래만 들려주지..."라며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여기에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뼈아픈 실수가 '나는 가수다'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다. 500명 청중평가단이 내린 결정에 불이행 한 것, 7위는 탈락한다는 룰을 깬 것은 시청자에게 오히려 충격이었을 터.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국민들을 상대로 한 규칙을 제작진 스스로가 어긴 것이다. 김건모가 재도전 기회를 받아들인 점도 문제가 됐다. 제작진의 실수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영희CP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긴 전력(前歷)이 있다. '오늘을 즐기라'가 방송되기 전 제작발표회에서 "1년 후에 책을 내겠다"며 호언장담했었다.

예능국에서 1년의 유예기간을 얻어가며 획득한 기회였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코너를 닫으며 책 출간의 꿈도 사라졌다. 김CP가 말한 출간에 대한 배짱과 열정은 불신으로 남겨졌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쉽게 저버린 제작진. 어쩌면 '나는 가수다'가 당연한 결과를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능TV, 음악시장 쥐락펴락

"음악시장을 넓혔다는 긍정적인 결과는 무시할 수 없다."

역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는 남달랐다. '나는 가수다'도 온라인 음원시장에선 그 지지도가 상당했다. 김영희CP조차 "음원 계약만 타 방송의 5,6배 이상"이라며 싱글벙글 했으니까.

이 같은 기운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tvN <슈퍼스타 K> 시즌2가 시청률 20%에 육박하며 예사롭지 않은 연기를 피우더니, 온라인 음원시장에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출연자들이 미션으로 불렀던 곡들이 높은 상위권을 차지하며 대이변을 일으킨 것. MBC <놀러와>도 그 이변에 합류했다. '세시봉 친구들'인 가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을 출연시켜 '세시봉 열풍'을 일으켰다. 그 결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앨범, 콘서트)시장에서 <슈퍼스타 K>에 버금가는 엄청난 파장을 이어갔다.

올 초에는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인 MBC <위대한 탄생>의 분발이 돋보였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렀던 곡들이 음원 사이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가수 김태원, 신승훈, 이은미, 김윤아 등의 곡도 덩달아 네티즌들의 손가락을 바쁘게 했다.

'나는 가수다'가 이들 프로그램의 영광에 합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형급 실력파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다가 이들이 부르는 미션 곡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나 박정현의 <꿈에>뿐만 아니라 윤도현이 부른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과 이소라가 부른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등도 음원시장에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이선희와 변진섭의 앨범을 찾아보는 이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자 가요계의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방송 한 번 제대로 타지 못한 신인들은 죽고 있다"며 "간신히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데뷔 앨범을 올렸더니 대형가수들의 곡들과 경쟁하게 됐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요기획사나 제작자, 가수들은 방송에 좌지우지 되는 음반시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결국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재미있는 건 정작 정통 음악프로그램이 해야 할 일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말 프라임 시간대를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하면서 가요계의 지각변동까지 진두지휘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KBS <뮤직뱅크>나 MBC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은 평균 시청률이 10%도 넘지 못한다. 이들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아도 피부로 전해지는 체감 시청률이 높기 때문에 그 여파는 남다르다. '나는 가수다'가 10% 내외의 적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음악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체 언제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가요계의 운명을 맡겨야 할 것인가?

'나는 가수다'는 최근 <놀러와>의 신정수PD로 교체되면서 색다른 포맷을 구상 중이다. 신정수PD가 '세시봉 열풍'을 만들어냈던 장본인인 만큼 주위에는 기대의 시선이 넘쳐난다.

홍승성 대표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면서 음악시장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인정한다"면서도 "너무 경쟁에 치우친 대결구도가 '나는 가수다'를 절벽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재정비된 '나는 가수다'가 초반부터 탈락 등에 치우친 대결구도, 서열화를 보여주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력파 가수들이 탈락한다는 결과는 아직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것. "그 좋은 가수들을 데려다가 초반부터 화면 밖으로 내칠 이유가 어디 있나"며 "프로그램이 너무 초반부터 승부를 걸지 않았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90년대 인기를 모았던 한 남자가수도 "콘셉트형 음악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며 대형기획사와 대중음악의 홍보매체인 TV가 안고 있는 가요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TV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만큼 대형기획사의 가수(아이돌 그룹)들이 더 많이 비춰지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는 인디나 언더밴드들이 사장되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다.

"방송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이상 빛도 보지 못하는 가수들은 더 많아질 것"이라며 "적당한 기간을 두고 발라드, 록, 인디밴드, 댄스 등을 기간별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한다. 그것이 국내 가요시장을 발전시키는 일이 아닐까"라는 그의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