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바나나걸 4집 '꽃'(2008년)발라드풍 노래, 반복되는 가사의 놀라운 중독성

한동안 인터넷과 클럽을 강타했던 이색 프로젝트 밴드 바나나걸(Banana girl)의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바나나걸은 지난 2003년 댄스곡 '엉덩이'가 각종 벨소리, 컬러링 차트를 석권하며 얼굴 없는 사이버가수로 명성을 날렸다. 야릇한 밴드 이름은 강하고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대 여성상을 지칭하며, 이는 곧 문화의 변화과정을 상징한다.

바나나걸은 테크노의 본고장 유럽에서 인정받은 프로듀서인 가재발(본명 이진원)의 프로젝트 밴드다. 가재발은 미국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한 이력을 지녔다.

'테크노제왕',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선구자'로 명성이 쟁쟁한 그는 박지윤, 샾, god, 이박사, 이윤정 등의 음반에 리믹서와 편곡자로 참여해 가수가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마니아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탁월한 아티스트다.

가수의 앨범이 아닌 프로듀서의 앨범 <바나나걸>은 종종 오해를 산다. 활동범위가 TV가 아닌 라디오와 인터넷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방송에서는 노래만 듣고 섹시한 여가수로 여겨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

공동 프로듀서인 가재발과 작곡가 방시혁의 작품인 대표곡 '부비부비'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일렉트로니카 곡이다. 만화 '시민쾌걸'의 작가 김진태가 인터넷 포털에 연재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동명의 만화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에는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의 윤은혜가 가수 J, 개그우먼 김신영이 출연해 섹시한 춤을 선보였다. 플래쉬 애니메이션으로 화제가 된 '엉덩이'도 특이한 가사와 신나는 리듬으로 주목받았던 노래다.

프로젝트 밴드 바나나걸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4장의 정규앨범을 포함, 총 8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곡 분위기에 맞는 여성 보컬을 새로 기용하는 기발한 콘셉트로 주목을 받았다. 1,2대 바나나걸 아가(본명 안수지)는 국내 클럽의 춤꾼들을 사로잡았던 댄스음악계의 전설격으로 회자되는 '엉덩이'와 '부비부비'를 부른 가수로 SBS '도전 1000곡'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3대 바나나걸 이현지는 '초콜릿'으로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4대는 CF모델 출신으로 귀여운 목소리에 깜찍한 외모를 겸비한 김상미다. 특이하게도 동덕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녀가 노래한 '미쳐미쳐미쳐'는 가볍고 경쾌한 댄스곡으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섹시에서 퓨어, 엘레강스, 큐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력을 과시한 바나나걸의 4집에는 총 6곡이 수록돼있다. 모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신나는 댄스곡이지만 발라드풍의 노래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타이틀인 댄스곡 '미쳐미쳐미쳐'만이 각광받았지만 이 앨범의 숨은 명곡은 따로 있다.

기존에 발표된 바나나걸 특유의 재기발랄한 댄스곡들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노래 '꽃'이다. 반복적으로 중첩되는 가사는 놀라운 중독성을 발휘하고 테크노 특유의 리듬감에 더해진 가슴 서늘한 김상미의 매력적인 보컬은 청자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사실 팝과 테크노를 혼합해 대중적인 테크노를 추구하는 가재발의 바나나걸은 많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일종의 상업적인 프로젝트 앨범이다.

그러니까 클럽용 음악이며 장르음악인 테크노를 대중가요로 해석한 것인데 유럽에서는 '테크하우스'라 불리는 장르로, 거친 테크노와 말랑말랑한 하우스의 중간 형태다. 테크노 (Techno)는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디자인한 기계음을 중심으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리듬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다.

세기말 이정현에 의해 널리 소개된 테크노는 국내에서는 춤추기 좋은 '도리도리' 음악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지만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진지한 장르 음악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바나나걸은 비록 테크노 음악의 국내 보급을 위해 상업적으로 외도한 버전이지만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낸 성과를 넘어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명곡 '꽃'을 통해 테크노 가요의 가능성과 장르적 우수성을 조용하게 제시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