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미녀', '내게 거짓말을…'등 비슷한 색깔의 로맨틱 코미디

MBC '최고의 사랑'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라고?'

5월.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이 봄의 기운을 청명하게 전한다. 계절 때문인지 이맘때쯤이면 로맨틱한 이야기들이 안방을 점령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4월과 5월은 지상파 방송 3사가 드라마 제작발표회로 열을 올렸다. 아침드라마, 평일 미니시리즈,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평일 미니시리즈다. 지상파 방송들은 새 미니시리즈의 대부분을 로맨틱 코미디로 채웠다. 물론 삼각, 사각관계는 기본이고 직업군도 다양하다. 의류 디자이너에서 공무원, 가정부, 연예인 등 소재의 식상함을 벗으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그 작전들은 여전하다.

'로맨틱'한 감정에 빠지기도 전에 '코미디'처럼 그 흐름을 다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
'삼순이'의 저주를 아직도 풀지 못했다고?

여전히 노처녀 김삼순이 드라마 노선에 버티고 서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드라마들이 '김삼순표' 노처녀와 엉뚱녀 성격이 가미된 여성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6년 전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여운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코드인가 보다.

월화 미니시리즈 KBS <동안미녀>,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수목 미니시리즈 KBS <로맨틱 타운>, MBC <최고의 사랑>은 김삼순표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동안미녀>는 34세 노처녀 이소영(장나라 분)이 일곱 살이나 나이를 속이고 의류회사에 들어가 사랑을 찾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덜렁대는 5급 공무원 공아정(윤은혜 분)의 어설픈 거짓말이 로맨틱한 상황을 만든다. <로맨스 타운>은 100억 로또를 맞은 가정부 노순금(성유리 분)의 얼렁뚱땅 사랑찾기이고, <최고의 사랑>은 한물 간 비호감 여자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네 작품의 공통점은 여주인공이 드라마의 중심이라는 것과 엉뚱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 김삼순이 그러했듯 여주인공들은 소탈한 성격에 낯이 두껍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일에 연루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MBC '리플리'
상대 남자들은 어떨까. 역시 비슷하다. 삼순이가 사랑한 캐릭터와 닮았다. 네 작품 속 여주인공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까칠남'에 '차도남', '재벌남', '완벽남'들이다. SBS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 분)이 되살아난 듯하다. <동안미녀>의 지승일(류진 분)은 젠틀함과 냉정함을 지닌 재벌남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현기준(강지환 분)은 호텔경영인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까칠남이다. <로맨스 타운>의 강건우(정겨운 분)는 상류층의 자제로 뉴욕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차도남이다.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 분)도 국민적 톱스타로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까칠남이자 완벽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른 살의 '엽기발랄 노처녀 뚱녀' 파티셰 김삼순과 까칠하고 차가운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현빈 분) 커플의 조화가 <시크릿 가든>의 무덤덤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과 재벌가의 '차도남' 김주원의 계보로 이어진다. 여자 주인공의 성격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비슷한 로맨틱 코미디 구도를 보인다.

하지만 현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인상이다. 무덤덤하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길라임의 캐릭터는 다시 엉뚱하고 발랄한 김삼순으로 변해있다. 각기 의류회사, 문화체육관광부와 호텔, 재벌가, 연예계 등 그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사랑을 풀어가는 방식은 모두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내 이름의 김삼순> 속 김삼순과 현진헌, 유희진(정려원 분)과 헨리 킴(다니엘 헤니 분)의 '사각관계'가 기본 인간관계다. <시크릿 가든>도 마찬가지. 길라임과 김주원, 오스카와 윤슬의 구도다. 남녀주인공 4명이 갈등의 중심이 되고 극을 이끌어 간다. 다양한 배경과 소재로 드라마가 구성된 것은 맞지만, 스토리 라인은 예전의 드라마가 가진 로맨틱 구도를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배우 강지환과 윤은혜도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주자로서 비슷한 드라마들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강지환은 "그간 드라마들의 남자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드라마 초반에는 코믹스러운 요소를 배제하고 정극톤의 발성과 대사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은혜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부응하는 연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KBS 드라마국의 한 PD는 "비슷한 주기에 미니시리즈들이 대폭 교체되면서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로맨틱 코미디는 타 장르의 드라마에 비해 제작비 면에서 유리하다. 또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높아 시청률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 왔다"고 말했다.

자극적 소재와 리메이크가 자구책?

드라마를 얘기하는 데 '신정아 사건'이 오르내린다. 어떤 발 빠른 이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드라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MBC는 <짝패> 후속으로 30일부터 <리플리>를 방영한다. <리플리>는 '신정아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참조해 제작하는 드라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판을 치며 TV를 장악한 마당에 새로운 버전의 드라마는 환영받을 만하다. 그런데 그 내용은 심상치 않다. <리플리>는 한 여자가 뜻하지 않게 던진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으면서 끊임없이 그 수렁에 빠지고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신정아의 학력파문 등과 맞물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스토리다. 극중 배우 이다해가 한 번의 거짓말로 나락으로 빠져드는 장미리 역을 소화한다. 또한 팜므 파탈 매력까지 선보인다.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신정아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자극적인 내용일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살 것이 분명하다. <리플리>는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입소문을 탔다.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에 홍보효과를 누린 것이다.

신정아가 자서전 <4001>까지 출간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가고 있다. MBC측은 신정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탐욕스런 욕망을 가진 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과 파멸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스토리 라인은 어쩐지 섬뜩하다.

로맨틱 코미디들과의 경쟁에서 정통 멜로물이라는 차별화를 두긴 했지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이 담길 수도 있다는 점에선 뻔한 드라마로 전락할 수도 있다.

SBS도 25일 방영될 <시티헌터>를 준비하고 있다. <시티헌터>는 일본 호조 츠카사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 원작은 도시의 해결사 사에바 료가 1980년대 후반 도쿄를 배경으로 의뢰인이 맡긴 사건들을 해결하는 액션물이다. 한국판 <시티헌터>에선 사에바 료가 MIT 박사 출신 청와대 국가지도통신망팀의 이윤성(이민호 분)으로 변신한다.

<시티헌터>는 최초로 드라마로 리메이크된다는 점에서 원작을 좋아했던 마니아층에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리메이크작의 안전주의 노선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MBC <궁>, KBS <메리는 외박중>, SBS <미스터 큐>, <타짜>, <식객> 등의 드라마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

<시티헌터>의 주인공 이민호는 KBS <꽃보다 남자>와 MBC <개인의 취향> 등 동명 원작이 있는 만화와 소설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온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다. 역시 '안전주의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