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복] 윤태규 4집 '마이웨이' 上 (2001년)인터넷 커뮤니티 타고 놀라운 파급력

인기차트 1위에 오른 빅히트곡일지라도 시류에 편승해 반짝 조명을 받은 후 사라진 트렌드 음악을 명곡이라고 말할 대중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인기차트 근처에도 간 적이 없고 금지까지 당한 곡일지라도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면 누구나 명곡으로 인정할 것이다. 이처럼 대중가요에 있어 명곡의 기준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촌스럽고 상투적이고 유치한 가사가 대부분인 성인가요 중에 명곡의 자격을 부여받을 노래가 있을까? 아마도 대중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젊은 애호가라면 대부분 부정적일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상업성은 떨어지지만 수준 높은 음악성을 담보한 실험적인 음악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가요 명곡의 가치 기준은 더욱 혼란스럽고 복잡해진다. 기본적으로 대중음악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음악이지만, 명곡의 자격 기준은 대중성과 수준 높은 음악성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의 요지는 당대 대중에게 위로의 소임을 다했고 시대를 초월적으로 사랑받고 있는지 여부다. 전국노래자랑 출신 트로트 가수 박상철의 '자옥아'는 성인가요 노래 중 자타가 공인하는 빅히트곡이다. '가사가 유치하다'는 일부 반응에 대해 그는 "나는 재즈처럼 수준 높은 음악성을 추구하는 가수가 절대 아니다.

그저 어머니, 아버지 같은 어른 세대들이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면 만족한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내 노래를 좋아해 주시니 그것으로 감사하고 대중음악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실제로 평소에는 짜증 날 정도로 천박하고 유치하게 느껴졌던 성인가요의 가사가 탈출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어떤 고급스런 노래보다 절절하게 가슴을 치는 명곡으로 둔갑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위로와 용기를 심어주는 노래는 의외로 난해하고 고급스런 음악이 아닌 단순하고 유치한 노래일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 큰 감명을 안겨준 인생의 노래가 한 곡 정도는 있을 것이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실연의 아픔에 마음이 뻥 뚫린 듯 허전할 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 상처 받은 영혼을 달래주었던 노래들 말이다.

20년이 넘는 무명가수 기간 동안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수활동 포기를 무수하게 고민했을 윤태규에게 포크 질감의 성인가요 'My Way'는 터닝 포인트가 된 인생의 노래다.

지난 1984년 라이브카페 쉘부르에서 DJ 김종환에게 발탁되어 통기타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군 제대 후인 1989년 자작곡 '외로운 고백'이 수록된 데뷔앨범을 발표한 뒤 2집 '예감으로 느낀 너의 표정'으로 가요차트 10위권에 진입했던 기대주였다. 당시 미사리 카페 촌에서는 그를 '남자 김수희'로 호칭했을 정도로 특히 슬프고 애절한 노래에 강점을 보였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랩 댄스 위주로 재편된 대중음악계의 지형도는 그에게 오랜 기간 무명가수의 고단한 길을 강요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생업전선에 나서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결코 놓지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 7080음악이 부활되며 통기타 음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용기를 얻은 그는 2001년 추가열이 창작한 '애가'를 타이틀로 한 4집을 발표했다. 절치부심의 마음을 담았지만 미디음악으로 제작한 열악한 음반은 대중에게 전혀 어필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2002년 신곡 '너 때문에 살고 싶었어'가 수록된 음반을 다시 발표하며 라디오방송에 고정출연해 통기타 라이브로 가수로 제법 명성을 날리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보급이 급속도로 진행된 당시, 인터넷에 우후죽순처럼 생성되었던 각종 음악 커뮤니티들은 그의 재기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4집에 수록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얻지도 못하고 사장된 보너스 개념의 수록곡 'My Way'가 30~40대를 중심으로 놀라운 파급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긴 경제불황에 고통받던 직장인들과 중장년층들에게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자'는 가사는 위로의 기능을 발휘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