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40% 육박 불구 '막장코드', 진부한 극 전개 등 2% 부족

KBS <첫사랑>(1996년)과 MBC <사랑이 뭐길래>(1991년)를 두고 '국민드라마'라고 칭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두 드라마는 시청률 60%를 넘기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며 TV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획을 그었다.

시청률만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드라마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대중들의 공감을 끌어내며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전했기에 더 의미가 있다. 자극적인 스토리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내용들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국민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유다.

시청률만 높으면 국민드라마?

<첫사랑>과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될 당시 서울 거리는 한산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드라마'라는 칭호를 어찌 얻을 수 없으랴. 하지만 최근에는 60%대의 시청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다채널 방송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방송가에선 시청률 20% 이상이면 '잘 된 드라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 시청률 40%에 육박하며 선전한 드라마가 있다.

5월 첫째 주 주간시청률(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을 살펴보면, KBS <웃어라 동해야>가 38.8%로 1위다. 그 뒤를 이어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21.3%, KBS <사랑을 믿어요>가 20.6%, KBS <9시 뉴스>는 20.1%, MBC <반짝반짝 빛나는>이 17.8%, SBS <신기생뎐> 17.3%, MBC <내 마음이 들리니> 16.1%, MBC <짝패> 15.8%, SBS <마이더스> 15.7%, MBC <무한도전> 15.1% 순이다. 주간시청률 10위 안에는 드라마 7개, 예능 프로그램 2개, 뉴스 프로그램 1개가 각각 속해 있다.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1위인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이다. 지난해 12월 두 번이나 시청률 30%를 돌파하더니 올해 들어선 30% 후반대의 시청률을 보이며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무려 5개월 이상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청률 순위에서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웃어라 동해야>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국민드라마'라고 쓴 시청자들의 글들이 무성하다. 13일 159회, 마지막 회까지 시청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끝맺음을 했다. 그런데 어쩐지 석연치 않다. <첫사랑>이나 <사랑이 뭐길래> 등에서 맛봤던 소소한 재미와 감동이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웃어라 동해야>는 개연성 없는 캐릭터의 등장, 예상되는 반전의 반전 등이 전개됐다. 한국에서 입양된 미혼모, 그녀의 쇼트트랙 선수 출신 아들, 아들의 방송국 아나운서 애인, 그 애인의 배신, 아들의 친부 등장 등 말초적인 소재와 캐릭터들로 무장했다.

특히 빈번한 (교통)사고, 중년급 캐릭터의 병환 등 뻔한 사건들이 극적 장치로 이용돼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게 됐다. <첫사랑>과 <사랑이 뭐길래>가 당시 시대적 빈부 격차나 사랑에 대한 고찰 등을 매력적인 캐릭터와 대사들로 엮어갔던 것에 비하면, <웃어라 동해야>는 너무도 평범하고 단순하다.

대사의 즐거움이나 현 사회적 분위기의 긴장감 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은 오히려 재미와 감동을 반감시킨 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KBS - 2TV 일일연속극 '첫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라 동해야>는 승승장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상파 방송 한 드라마 PD는 "일일극은 가족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전혀 새로운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다"며 "하지만 높은 시청률을 내는 건 드라마 속 가족 코드가 대중의 삶과 다르지 않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적으로 시청률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적은 비용의 제작비로 성공적 결과를 이끄는 배신과 복수, 사랑 등은 일일극의 전형적인 방식이 됐다"고 털어놨다.

'막장'밖에는 해답이 없나

"'동해야' 봐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해."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주부 박정은(34)씨는 <웃어라 동해야>가 방영되는 오후 8시 25분부터 9시까지는 꼼짝하지 않고 TV앞에 앉아있다. 만약 이때 전화라도 온다면 "드라마 끝나고 통화하자"라는 말을 달고 산다. <웃어라 동해야>의 열혈 시청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드라마는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청하고 있다. 특히 안나(도지원 분)와 동해(지창욱 분) 모자의 호텔회장과의 재회, 호텔을 놓고 벌이는 경영권 다툼 등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답답한 전개와 진부한 진행방식이 거슬린다."

박 씨는 <웃어라 동해야>를 '본방사수'하면서도 눈에 띄는 어색한 장면들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카멜리아 호텔 조필용(김성원 분)회장의 갑작스런 쓰러짐, 동해의 친부인 김준(강석우 분) 국장의 뇌경색 진단 등은 전형적인 일일극 코스를 밟고 있다는 것.

끝맺음을 위해 극적 화해 장치를 마련해 해피엔딩의 결과를 도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봉이(오지은 분) 집안과 안나와 동해, 김도진(이장우 분) 집안과의 복잡미묘한 관계들이 한 순간에 정리되는 결과도 진부하다는 것.

이런 내용들은 초반부터 예상한 결과였다. 동해의 애인이었던 새와(박정아 분)가 배신을 하고 동해의 이복형제인 도진과 결혼한 것, 봉이의 삼촌을 두고 사돈지간인 변술녀(박혜미 분)와 안나가 삼각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도진이 동해를 호텔 경영권에서 밀어내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린다는 점 등이 불편한 '막장 코드'로 드라마를 전락시키고 말았다.

배우 박혜미조차 "<웃어라 동해야>에서 경박스러운 역할을 하다 보니 섭섭하고 서운한 느낌도 든다"며 "그분(작가)들의 펜대에 놀아나야 하나"라며 드라마의 전개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적이 있다.

'막장코드'의 전개가 결국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발생한 원리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방영되는 일일극 SBS <호박꽃 순정>과 MBC <남자를 믿었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재벌가의 등장과 배신, 복수 등이 적절히 어우러져 시청률을 올리려는 술수를 내비치고 있다.

<웃어라 동해야>의 후속작 <우리집 여자들>의 전창근 PD는 "<웃어라 동해야>는 인물들 간의 갈등 축이 강한 반면 <우리집 여자들>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그리는 데 집중해 한층 유쾌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며 "막장이라는 게 해석에 따라 다른 듯하다.

극중 갈등은 어차피 다 비슷한데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최대한 (막장을) 피하면서 갈등을 풀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