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헌터' 원작의 안정적 캐릭터ㆍ스토리 대신 모험 선택'광개토태왕' '왕중의 왕'으로 제목 바꾸며 이미지 변화

있던 것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쉬운 게 아니다. 기존의 것과 너무 똑같지도 판이하지도 않아야 한다. 이 때문에 창작자들은 언제나 고달프다. 그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몇 곱절의 노력과 수고가 투입된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두 드라마가 이를 증명한다. 대중이 이미 알고 접했던 이야기들을 새로운 버전으로 끌어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KBS <광개토태왕>과 SBS <시티헌터>다.

이들 드라마는 전혀 다른 성격의 드라마지만 그 내면을 보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대중에게 선보였던 작품들을 새로운 버전으로 각색해야 한다는 부담이다.

<시티헌터>는 1980년대 일본 호조 츠카사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버전이다.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는 최초로 국내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점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관심을 그저 관심으로만 끝낼 수는 없는 노릇. <시티헌터>의 김영섭CP도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전개될 것"이라며 '새로운'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

SBS '시티헌터'
<시티헌터> 제작진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영화에서나 적용할 법한 '프리퀄(prequel)' 전개법을 택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사에바 료가 어릴 때 비행기 사고를 당해 신분을 잃어버리고 반정부 게릴라들로부터 훈련받아 암살범과 보디가드, 탐정 등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드라마 <시티헌터>는 MIT 박사 출신 청와대 국가지도통신망팀의 이윤성(이민호 분)이 주인공으로 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1, 2회에 담았다. 그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접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원작과는 또 다른 인물이다. 주인공인 이민호조차 "드라마는 '시티헌터 비긴즈'로 불려야 할 것"이라며 원작과의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오죽했으면 '리메이크라는데 원작과 너무 다르다'며 원작의 스토리와 장면들을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시티헌터>는 1, 2회에 걸쳐 아웅산 묘소 폭발 사건을 담아냈다.

일본 만화 원작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우리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낸 것. 여기에 태국에서 진행된 촬영으로 사실적인 영상과 외국의 보조출연자 80여 명이 동원돼 스케일 면에서 만화적 상상력을 뛰어 넘으려 했다.

이 장면을 위해 5D-Mark2 카메라 3대, 6mm 카메라, ENG, 스테디캠 등이 사용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뚜껑을 연 <시티헌티>는 원작의 안정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라인 대신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KBS '광개토태왕'
사극 <광개토태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개토태왕>은 4일 첫 방송을 며칠 앞두고 제목부터 손질했다. 원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대왕'이 제목이었다. 하지만 2007년 방영됐던 MBC <태왕사신기>를 의식한 때문일까. 제작진은 결국 <광개토대왕>에서 한 글자인 '대'를 '태'로 바꾸고 기존의 광개토왕에 대한 이미지에 변화를 줬다.

<광개토태왕>의 김종선 PD는 "태왕은 수많은 종족들을 총괄하는 '왕중의 왕이라는 의미다"며 "광개토태왕이라는 이름처럼 20여 년간 영토를 넓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준 좋은 왕을 그려낼 것"이라며 제목을 바꾼 사연을 공개했다. 단순히 훌륭한 사람이 아닌 어려움을 극복해 영토를 넓히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애썼던 왕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광개토왕 '담덕'이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은 없다. 다만 1600년 전 사람이라 기록과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 역사고증에 대한 염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PD는 이에 대해 "모자란 부분은 반드시 채워 넣어서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만큼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그려 보이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KBS <왕과 비>, <태조 왕건>, <대조영> 등을 연출했던 김 PD의 저력을 믿어보는 수밖에.



강은영 기자 kiss@hk.co.kr